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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화 Oct 27. 2020

언어발달지연이 의심되나요?

아기언어발달

"나 빠가 사가 조아(나는 빨간 사과가 좋아요)."


생후 32개월의 아기는 받침 발음이 서툴렀다. 말을 못 했던 아기와 같이 지낸 지 어느덧 3년째다. 나는 아기가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기는 상대방이 자기 말을 알아들을 때까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아기가 하고 싶은 말을 문법에 맞게 바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아기에게 들려줬다. 아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말을 배워나가는 중이다. 


"또래에 비해 말이 좀 늦게 트이는 것 같아요."

"집에서 많이 대화해 주세요."


생후 28개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같이 지내고 있는 친구들 대부분 말을 능숙하게 하는 반면 우리 아기는 그렇지 못했다. 아직 단어를 익히고 있는 수준이었다. 아기는 엄마, 아빠라는 말을 돌이 되기 전에 했다. 하지만 두 돌이 되어도 물, 맘마, 분유 등 익숙한 몇 단어만 입에 겨우 올렸다. 그래도 어른의 말을 알아듣고 간단한 심부름을 곧잘 했다. 듣는 것에 문제가 없으니 말이 트이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은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더 이상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 아기에게 우리말을 많이 들려줬다. 우리말 낱말카드를 사용했다. 아기에게 입모양을 보여주며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아기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말이나 단어를 말하면 쉬운 문장으로 만들어 들려주었다. 그동안 아기가 말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던 아빠도 같이 노력하였다. 아기는 자기 전 책을 꺼내어 엄마나 아빠 무릎 위에 앉아서 보는 것을 좋아했다. 책에 실린 그림을 보며 대화를 많이 하였다. 아기는 좋아하는 책을 보면 "또~또~"를 잇따라 말하며 밤이 늦도록 잠이 들 줄 몰랐다. 


진료실에서 영유아 건강검진을 하러 온 보호자들과 만난다. 그중에 언어영역이 또래에 비해 점수가 확연히 낮거나 아기가 말을 하지 않아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필요하면 대학병원에 진료의뢰서를 작성한다. 소아과 교과서에 따르면 만 2세가 되어서도 말을 하지 못하면 '언어 지연'이라고 한다. 다음의 경우에도 언어 발달 이상을 의심할 수 있다.  12개월에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거나 18개월에도 말보다는 몸짓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경우이다. 만 2세에도 간단한 두 단어 문장을 만들지 못하거나, 3세가 되어도 문장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면 언어 발달 이상을 의심한다.(안효섭·신희영, 『홍창의 소아과학』, 미래엔, P.21-22)


아기의 언어는 29개월부터 서서히 달라졌다. '싫다'라는 표현을 처음에는 고개를 돌리며 '시~'라고 말했다. 한 달간의 시간이 흐르자 '싫어'라고 말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두 '하'라고 불렀다가 점차 할머니는 '하' 할아버지는 '하지'라고  구분 지어 말했다. 아기는 33개월 된 어느 날, 할머니를 또렷한 발음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길가에 서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정확하게 '나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촌 오빠를 '오'라고만 말하다가 어느 날 '오빠'를 보고 오빠라는 단어를 불쑥 내뱉었다. 반면 기차라는 단어는 읊기까지 두어 달 걸렸다. 처음에는 '치치 포포'라고 하다가 '칙칙폭폭'이라고 말한 뒤에 '기차'라는 말이 나왔다. 


아기의 말은 내 말을 닮았다. 내가 자주 하는 말부터 배웠다. 아기는 특히 '빨리'라는 단어를 정말 빨리 배웠다. 


"엄마! 빨리!"

"아빠! 빨리!"


아기는 킥보드를 타고 달려가면서 뒤따라 오는 나에게 연신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아기는 일어났을 때 직장에 나간 아빠가 없으면 빨리 집에 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라는 단어라던데... 우리 아기도 한국인의 문화에 익숙해져 갔다. 


아기는 물건이 없어지거나 안 보일 때는 "OO가 치웠어."라는 말도 자주 했다. 어지른 물건을 치우자고 말하는 나를 보며 배운 것일까... 아기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선가 자주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아기가 하는 말은 내가 쓰는 말을 정말 닮아 있었다. 아기 덕분에 내 언어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부터 아름다운 언어로 말을 바르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아직 우리말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빠는 일하러 갔어."라고 내가 말하면 아이는 본인의 치아를 가리키며 "이~"라고 한다. 아빠는 늘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는 줄 아는 것 같다. 32개월의 아기는 어려운 단어를 말하지 못한다. '자동차'같이 세 음절 이상의 단어는 하나씩 따라 하긴 했지만 붙여서 말해보라고 하면 단어 대신 "네~"라는 대답과 함께 머쓱한 미소를 짓는다. 아기의 발음은 아직 불분명해서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다. '칸물'(찬물), 해미(개미), 아크(아이스크림) 외에도 "아빠 후박 자오라져."(아빠가 수박을 잘랐어요)라고 한다. 아기는 하고 싶은 말을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물건을 직접 가져오거나 행동으로 보여준다. 


아기는 32개월부터 동요를 따라 불렀다. '작은 별', '나무야'라는 동요 가사를 조금씩 따라 불렀다. 불과 한 달 전에는 노래를 옹알거리며 흥얼거리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니 아기는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듣게 노래를 한다. 정말 기특하다. 아기는 매달 성장하고 있다. 얼굴 생김새도 점점 어린이로 변하고 생각과 말도 달라졌다. 아기란 존재는 참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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