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해외여행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했다. 어른도 오래 앉아있기 힘든 이코노미석에서 무려 11시간 15분을 보내야 한다니... 2019년 9월, 남편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리는 학회에 초대받았다. 해외로 가족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였다. 인스브루크는 내게 낯선 도시였다. 처음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동계 올림픽을 두 번이나 치렀던 곳이었다. 서유럽에서는 잘 알려진 관광지였다.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타면 누구나 쉽게 알프스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엄한 풍경 사진을 보니 마음이 설레었다. 오랜 비행시간은 21개월 아기와 유럽여행을 하기 위한 첫 관문이었다. 일단 비행기 표를 끊고 고민을 시작했다.
아기가 비행기 안에서 보채는 것이 제일 큰 걱정거리였다. 아기들은 귀의 압력을 조절하는 유스타키오관 기능이 미숙하다. 때문에 비행기 이착륙 시 압력 변화로 인해 귀 통증을 잘 느낀다. 1년 전 아기와 일본을 다녀올 때 아기는 배가 고팠는지 비행기를 타자마자 과자를 연거푸 먹었다. 과자 한 봉지가 금세 동이 났다. 아기는 먹는 것에 집중했다. 덕분에 비행기 이착륙 시 귀의 먹먹함이나 통증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과자를 충분히 가져갔다. 보챌 때를 대비해 꿀떡꿀떡 마실 수 있는 액상분유도 준비했다.
걱정대로 아기는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칭얼댔다. 낯선 사람들과 어수선한 환경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처음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으려고 했다. 비행기를 겨우 탄 뒤에도 내 품에 계속 안겨있었다. 뒷자리에 앉으신 할머니가 아기와 눈을 맞추며 달래주셨다. 승무원들도 장난감을 선물해 주며 아기를 웃게 만들었다. 아기는 주기적으로 나오는 식사와 수시로 나오는 간식을 보더니 예전의 안정감을 찾았다. 아기가 21개월쯤 되니 기내 이유식인 퓌레보다 비행기에서 성인에게 제공되는 식사를 더 좋아했다.
비행기 안에서 시간은 정말 천천히 흘렀다. 아기가 잠이 들면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진료실에서 보호자들은 종종 해외여행을 갈 때 콧물약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콧물이 없는데도 말이다.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인 졸림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아기가 많이 보챌 때를 생각해 준비하기는 했지만 실제 사용하지는 않았다. 아기가 좋아하는 동영상을 핸드폰에 저장했다가 틀어줬다. 소리를 작게 조절할 수 있는 장난감, 스티커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좌석은 창가 쪽 3자리가 붙어있는 자리였다. 베시넷을 달기 위해 특별히 배정된 자리였다. 만 두 돌이 안된 아기를 동반할 경우 예약할 수 있다. 앞에 좌석이 없고 공간이 있어 무릎은 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좁았다. 붙어있는 3 좌석 통로 쪽에 모르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남은 2자리에서 우리 세 식구가 앉고 그 위에 베시넷을 달았다. 답답해하는 아기랑 복도에 나와 서있기도 하고 통로를 걸어 다녔다. 아기라고 여러 사람들이 배려해 준 덕분에 다른 좌석에 앉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같은 좌석이었다. 하지만 통로좌석이 비어 3 좌석에 나란히 3명이 앉았다. 잠에 곯아떨어진 아기는 베시넷보다 바닥에 눕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나의 또 다른 걱정은 여행지에서 사 먹는 물이었다. 물이 바뀌어 아기가 배탈이 나는 것을 우려했다. 다행히 큰일은 없었다. 다만 유럽에서 흔히 하는 실수를 우리도 했다. 아기에게 먹일 일반 생수를 잘 고르려고 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탄산수와 일반 생수를 구분하는 법을 미리 알아뒀다. 자신 있게 샀는데 병뚜껑을 여니 '피식~'하며 탄산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호텔의 물병을 들고 마트에 가서 똑같은 것으로 골라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기를 위한 여행 상비약을 챙겼다. 해열제, 콧물 시럽, 가래 기침약, 지사제 등을 가져갔다.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응급 상황에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병원 진료실에서도 여행을 대비해서 상비약을 원하는 보호자들이 많다. 하지만 보험 진료가 안 되는 항목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비상약은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사야 하는 것들이다.
아기를 위해 마트에서 파는 진공포장 이유식을 챙겨갔다. 21개월 아기가 먹을 수 있는 것이 한국처럼 다양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아기가 좋아하는 돈가스의 나라였다. 지금도 아기와 함께 먹은 스파게티와 피자 맛은 잊을 수 없다. 아기는 호텔에서 먹는 아침식사도 좋아했다. 매일 똑같은 메뉴였지만 계란 프라이, 빵, 유제품 등을 맛있게 먹었다. 마트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은 즐겁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고 왔다. 21개월 아기와 여행에 앞서한 대부분의 걱정은 그냥 걱정일 뿐이었다. 사진을 보니 지금도 꿈만 같다. 어린 아기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실천해보라고 하고 싶다. 지금의 이 코로나 시대가 끝난다면... 꼭... (정말 여행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