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마음의 힘 좀 빼세요.'

오늘의 나, 그 내가 지닌 감정은 무엇일까?

by 화몽

나는 주로 누군가를 도와주며 산다. 그리고 종종 도움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단수가 아닌 복수의 존재들로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에 서로 어울리며 지낸다. 돕는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무리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비스와 케어의 의미 사이에서 오고 가며 무엇이 더 가까운 단어일까 잠시 고민해본다. 대가의 유무 관계의 의미 등에 따라 빛의 스펙트럼처럼 의미가 넓어진다. 일단 이해가 쉽게 '서비스'라고 이름 붙여 본다. 우리는 바로 '서비스'의 대가로 금전을 지불 키도 한다. 물질을 주고 기분을 얻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러한 날이다.


‘엄마 머리에 나이가 나왔어. 미용실 다녀와. 젊어져야지.’


새치가 나왔다는 말이다. 오육 년 전부터 염색을 해 왔다. 두어 달 안 하고 지내도 크게 띄지 않았던 흰 줄들이 점점 많아져 지금은 농담 반 진담 반 반백이다. 어머님이 네 정수리를 볼 이가 식구들 중에 없는데 맘 상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지만, 늘어가는 흰머리를 경험해본 40대들은 내 맘을 알 것이다. 새치는 나이와 고민이 늘어가는 증표이기에.


엄마라면 아이들이 어릴 때 머리를 감겨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쉽게 머리를 감겨줄 수 있는 마술봉들이 많이 있지만, 큰아이를 키우던 그때, 그곳에는 노동과 애정만 있었다. '힘을 빼.'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뒤로 젖힌 아이의 목을 잡고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매만졌다.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자리마다 비누 거품은 커졌다. 그만큼 아이도 눈을 크게 떴다. '눈 감아야지, 아야 해.'라는 말에 언제 눈을 떴는가 싶을 정도의 속도로 눈꺼풀이 닫힌다. '엄마가 안 아프게 빨리 감겨줄게. 조금만 기다려.'라며 빠르게 물 온도를 맞추어 아이의 머리를 헹궜다.


염색을 마치자 미용사가 머리를 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한다. 익숙지 않은 곳에서 눈을 가리고 뒤로 눕는다는 일에는 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오늘의 나에게는 말이다. 꼿꼿한 목에 머리를 감겨주는 미용사가 편히 일을 못 하고 있다 느낌이 전해진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나를 그렇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그런데 그 왜?라는 질문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도 정확히 집어낼 수 없었다. 나 왜? 이렇게 열렬히 살지? 이 나이에? 무엇을 하려고?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생각의 거미줄들이 나를 조여 올 때쯤 미용사가 내게 말한다.


'손님, 힘 빼세요.'


서비스를 받으러 온 오늘, 머릿속은 1/4로 나뉘어 각자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간다. 한마디로 골머리가 터질 듯 아프다. 큰아이 학교 준비, 공심재에서 오픈할 오손도손 그리기, 대학원 기말 리포트 2개, 그리고 집안일들. 각 생각의 조각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서로에게 생각의 공을 튕겨가며 엎치락뒤치락한다. 사실 큰아이 걱정이 가장 크다. 다른 일들은 이를 좀 덜어내 보려고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시다발적인 생각 속에 마음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엄마가 더 안 아프게 빨리 해결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라 내게 다짐하듯 혼잣말을 전한다. 샴푸 의자에 누워 감긴 눈을 다시 한번 감는다. 머리끝은 조심히 내려놓는다. 미용사의 두 손에 내 머리를 맡긴다. 지금 나는 대체 무엇을 내려놓고 있을까? 머리인가? 가슴인가?


염색을 마치고 거울을 보며 귀걸이를 건다. 남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분명하게 보인다. 그래, 힘을 빼고 힘내자. 그래, 내려놓고 다시 가자. 큰아이 머리를 감겨주던 그 마음만 다시 잘 챙기고 집에 가서 저녁이나 준비하자. 애써 무거운 짐들을 서비스의 끝자락에 날린다. 찰랑거리는 머리끝이 더없이 행복하다며 마음의 주유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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