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재, 신나는 글쓰기'_ 15. 당신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선물.
얼마 전 인터넷의 파도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오가다 뒷목을 딱 잡는 글이 있었습니다. 제 자신의 정체성과 성인으로서 맡고 있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항상 큰 숙제인 제게 불을 붙였어요. 전 땅속에 묻혀있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사람입니다. 평소에는 촉촉이 내린 봄비를 머금은 흙 같지만 가느다랗게 늘어져 있는 도화선을 건드리면 제 안의 다이너마이트가 펑하고 터집니다. 우리는 모두 취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큰 편인데요. 주부라는 제 위치가 이것을 항상 건드립니다. 주부가 직업이라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의 글을 만난 것이죠. 제 스스로라도 인정을 해주고 싶어 검색을 거듭해 봅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직업이라 한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보수를 받아야 직업이라 할 수 있다네요. 그럼 저는 무직인 걸까요? 통장 하나 개설하기 어려운 이 시점에 주부란 대체! 제가 하고 있는 가사와 육아는 전문적인 일이라 할 수 없는 걸까요? 가족이 아닌 타인을 돌봐야만 이를 직업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마음이 저와 비슷할 듯합니다.
저는 눈물 나게 순종적인 어머니 세대와 주저 없이 비혼과 출산에 대한 거부를 표현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 애매하게 끼여있어요. 위로보니 속 터지고 아래 로보니 나 역시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움찔합니다. 난 뭘까? 월급루팡이라는 직장인들 사이의 신조어가 있지요. 저는 그럼 무엇을 훔쳐오고 있는 걸까요? 연봉으로 계산되는 직장인들의 하루와 나의 그것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급 눈밑이 어두워지고 머리는 띵하며 생각의 바퀴가 멈춰 섭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이들은 돈으로 환산되는 하루에 염증을 느낀다지만 제 하루는 대체 얼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만 해요. 금전적 가치가 삶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주머니에 한 끼 해결할 돈이 없다면 그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 전 솔직히 자신이 없거든요. 대체 나의 하루는 얼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내가 지불할고 살 수 있는 최대의 사치는 무엇인지? 제가 달고 있는 가격표에 대해 고민을 해봅니다. 주머니를 털어도 나오는 것은 먼지뿐이고 저는 이 먼지를 청소하는 이 집안의 주부이네요.
길을 걸으며 마시고 싶은 커피 한잔, 솔직히 맘 편히 마셔본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왠지 내겐 너무 비싸 보였거든요. 아이들 간식으로 빵을 고르며 담았던 케이크 한 조각. 계산 전에 다시 내려놓곤 했죠. 가계부에 제 몫으로 지출되는 금액은 식비를 제하면 5%도 안되었던 건 같아요. 사실 기쁨의 크기는 가격과 비례하지 않는데 왜 이리 어렵게 느껴지는지. 순수히 나만을 위한 가치에 돈을 쓴다는 것은 사치라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 염치없다 생각이 들 때도 있었으니. 짠내 나는 글일지 몰라도 정말 그랬답니다.
오늘 저는 제게 기쁨을 선사해봅니다. 그때 마시고 싶었던 향과 달큼함. 코끝에 남는 여운과 입안에 퍼지는 부드러운 케이크들이 이렇게 훌륭한 순간을 만들어 주네요. 아! 하나 더. 슈퍼에 가면 항상 눈으로 먹곤 하던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도 제 입안에 하나 베어 물었습니다. 제가 이 정도 금액의 하루는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물음표만 던지며 타인에게 나를 인정해 달라 떼쓰지 말고 스스로 과감히 금액을 책정해봅니다. 쓰리샷 라테와 미니 타르트 4개, 하겐다즈 아이스바 하나. 와! 훌륭하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선물을 나에게 선사할 것을 다짐하며. 오늘도 알차게 하루를 보내봅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