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재. 신나는 글쓰기 2기' A01 _ 이어서 쓰기.
손 편지를 주고받은 지가 오래다. 가장 최근에 받은 편지는 지난봄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혼여행을 보내고 있던 새신랑에게서 온 것이었다. 사랑하는詩人께로 시작되어 “여기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있자니 그저 어디에서건 살아지는 게 답답하고 또 좋습니다. 여백이 많지 않습니다”로 끝맺는 짧은 편지였다.
그의 편지를 급히 접어 어제보다 더 어두워진 점퍼의 주머니 속에 던져버렸다. 이런 현실을 그가 상상이나 할까? 그도 지금은 돌아와 나와 같은 시각을 나누고 있을 터인데. 손편지라는 것의 희소성이 가지는 가치가 의미를 잃어버린 요즘이다. 빠르게 뱉어내고 더 무섭게 지워져 간다. 지금이라는 세상이 그렇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그는 잠시 시곗바늘에서 튕겨진 순간을 보냈을 뿐이다. 내게 사랑한다니. 그의 손끝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걸리게 되는 순간이 존재했음이 내겐 어색할 뿐이다. 다만 답답하다는 단어가 그와 나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았다. '그래 이런 것이 우리지. 사랑은 무슨... 시인인 대수라고' 조용한 식탁 위에서 뒹굴거리는 거친 빵 한 조각을 입에 던진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머쉰에 시인의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게 해 줄 지독한 캡슐 하나를 밀어 넣었다.
살아진다니. 그저 살아내고 있을 뿐이라는 그의 말이 나의 목구멍에 걸려 숨 쉴 때마다 까끌거린다. 나의 하루가 그의 날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숨만 겨우 붙어 쾡한 눈을 세상 밖으로 뻐금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닐 거라 애써 부정하며.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꾸역꾸역 생각의 끝을 뭉툭하게 라이터로 지져 그을음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일지도. 여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하루를 지내며 내일을 더 촘촘히 계획해나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환장할 노릇인가. 그의 편지를 읽는 내내 미간이 찌릿해 옴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커피 향 한 모금 들이킬 시간도 없이 냉동실 얼음을 털어 넣고 덜 깬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지옥철에 던지는 나. 이런 나를 사랑하는 시인이라 부르는 그. 그의 애정과 현실의 간극 속에 내 존재는 설 곳을 잃어간다. 세상이 시인인 나를 지워가는지. 시를 쓰는 내가 세상에 비벼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것만이 명백한 사실이다. 턱에 차오를 듯 헉헉거린다. 그 숨에 뿌옇게 타오르는 지하철 문 유리 너머로 백만 가지 표정을 한 그와 그녀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묘한 승리감을 느낀다. 여전히 가지런하지 못하는 숨결 너머로 비열함마저 느껴지는 내 얼굴이 속도감에 흩어지는 차장에 드리울 때면 오히려 내 존재가 허상인 듯 느껴진다.
오늘도 푸르른 지하철 2호선은 나를 싣고 덜컹거리며 한강을 건넌다. 푸른 하늘을 거둬가 버린 뿌연 3월의 하늘이 당연하다는 듯 하루의 시작을 희미하게 만들어 지금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을 맴돈다. 나의 체온이 계절을 녹여내야 하다니. 내쉰 숨에 담겨오는 것은 차가운 너다. 시리지도 않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내 온기라도 뒤져본다. '아, 그의 편지를 들고 나왔네.' 짧은 그의 손편지에 봄빛을 닮은 네가 떠오른다. 한 해가 지났음에도 그의 손편지에서 너의 내음이 난다. 시간이 흐르는구나. 세상은 아니라지만 계절은 변하나 보다. 너는 여전할까? 너의 여백의 한구석에 내 자리가 있기를 욕심내 본다. 바르지 않은 이 마음을 여전히 품고 있다니. 모두를 지워낸 줄만 알았는데. 이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한다 칭한 그의 편지 때문이다. 감히 그녀에게만 허락했던 단어를 그가 내게 다시 꺼내어 이리 흔든다. 이미 나의 것이 아닌 너이지만. 내 숨이 너의 젖가슴을 파고들던 그 새벽이 여전히 시리다. 오늘의 잿빛 하늘이 너의 눈물을 닮았다. 그래서 나는 네게 이방인이 되었고 우리는 반대 방향을 향할 수밖에 없었지. 나는 네가 사랑하는 시인이 아니었기에.
첫 단락은 박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편지'중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