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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Nov 06. 2021

대나무숲

캘리그래피 일기 045th Day.

관계가 중요한 오늘날의 세상. 촘촘한 거미줄에 엮인 사람들 틈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 어쩌면 나를 전혀 모르는 불특정 다수는 이런 숨 막히는 곳에서  나를 구원해 주는 루시퍼 일지도 모른다. 익명, 이는 나와 너 우리라는 존재를 지워 소통의 무게를 가벼이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잘못 다루게 되면 나를 향한 무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서로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무장을 해제한 채 마음을 터놓는 곳을 우리는 '대나무숲'이라 부른다.


'대나무숲'은 SNS 상에서 익명으로 소통하는 게시판으로,
하나의 계정으로 글을 남기기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특징이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경문왕 설화에서 한 복두장이 숨을 거두기 전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대나무 숲 속에 던져놓았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 '대나무 숲'이라는 명칭이다. 오늘날의 대나무 숲은 2021년 출판사 비리를 폭로해오던 '출판사 X'라는 트위터 계정이 사라지자 이를 기리기 위해 '출판사 옆 대나무 숲'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진 것이 시발점이 되어 이를 뒤따르는 수많은 아류 대나무 숲 계정들이 운영되고 있다. SNS 상에서 익명으로 소통하는 가상의 공간, 시초는 가벼운 공통분모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었으나 이제는 시시콜콜함을 넘어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터트리는 신문고의 역할까지 한다.


현대 사회를 건강하게 살아내기 위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말 못 할 사정들의 디톡스는 필수다. 나 역시 동시대에 걸쳐 사는 존재로 빡빡한 요즘을  어딘가에 내려놓지 못해 전전긍긍 중이다. 성향상 가슴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잘 지내는 편이나. 요즘은 맘속 대나무 숲이 터져버리기 일초 직전이라 모래바닥에라도 하소연을 긁어보고 싶기도 하다. 익명의 칼날이 두려워 허공에 속삭이는 편이기도 하고. 임금님 귀가 문제가 아니라 궁둥이가 짝 궁둥이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지만. 꾹 참아왔다. '대나무숲'을 좀 찾아보던 차에 쭈니의 온라인 동기 맘이라는 공식 명칭을 가진 이들과 만나 짝 궁둥이에 대한 하소연을 실컷 했다.


그래, 나는 '대나무숲'과는 안 어울린다. 나무의 그늘에 몸을 숨기고 내 목소리라도 알아챌까 입을 가린 채 웅얼웅얼 거리는 것은 내가 아니다. '대나무숲'에 숨지 말고 '소나무숲'을 향해가자.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분명히 다름이 존재할 듯. 이왕이면 멀리서도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있게 커다란 명찰을 붙인다. 눈을 마주하고 두 손을 잡은 채 온기를 나눠야지.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오늘의 일기는 '대나무숲'으로 시작해 결국 사람과 나눠야 한다니 나의 글이  우습긴 하다. , 그래도   맛에 살련다. 1 더하기 1 2 아닐 수도 있다고 우겨보면서. '소나무숲'으로 고고고!


온라인 캘리그라피 모임, '마음을 새기는 시간'에 대한 글 모음입니다. 곧 17기 모집이 있을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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