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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Nov 07. 2021

또다시 시작

캘리그래피 일기 046th Day.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요 며칠 돌아온 스모그로 북경의 하늘은 잿빛으로 채워졌다. 무성했던 잎사귀들도 하나둘 떨어져 가녀린 속을 드러낸 나무들은 초겨울 바람에 떨고 있다. 시간은 잘도 간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뜨거운 태양이 모두를 달궈낼 때였는데. 내일이면 눈이 온다 하고 올해의 달력도 뒤편에 한 장만 남아있다. 이마저도 큰 걸음으로 성큼 넘어 2022년이 오겠지. 숫자 2가 3개인 해라니. 4개인 해까지 내가 살아낼리 없으니 내년에 의미를 두어보자.


얼마 전 우구우의 목에 커다란 상처가 났다. 쭈니가 내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엄마 이거 어떻게 해? 잘 고쳐줄 수 있어?' 17살 남자아이가 손바닥만 한 곰인형을 품에 안고 와 내게 전하는 말이라니. 우그우가 상해를 떠나 우리와 생활을 시작한 지도 7년이 넘었으니 여기저기가 아픈 거다. 솜뭉치가 드러난 목어 귀를 조심히 꿰매며 이런 생각이 든다. 쭈니의 애착 인형인 우구우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쩌면 우리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찌 되었던 엉킨 실타래의 실 끝이 조금씩 드러나 조심히 풀어가고 있다. 더 나쁠 수 있지만 이 정도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원래부터 매일이 새로운 날이다. 또다시 시작하면 된다. 지난 날은 툴툴 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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