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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Nov 22. 2021

이번 연은 여기까지

캘리그래피 일기 060thDay

십여 일 되었나? 저녁을 준비하다 청경채 잎 사이에서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민달팽이 한 마리가 초록 잎에 철썩 붙어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 어릴 적 추억에 젖어 당장 그릇 하나를 꺼내 편안하게 손님을 모셨다.  아이들을 불러 보여주니 쭈니도 유니도 성큼 다가가 뚫어져라 살폈다. 그렇게 먹이도 주고 물도 갈아주며 함께 지내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이사 갈 때 요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가야 하나 고민을 한참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달팽이는 비행기에 탈수 없다고. 그래도 우리 아이는 작으니 잎사귀와 함께 주머니에 쏙 넣어서 탑승하는 작전도 세운다. 새집에 가면 손님이 아니고 가족이니 그에게도 새로운 공간을 주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며. 민달팽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움직임이 없이 이상타 여긴 쭈니가 말한다. 같이 갈수 없을 것 같다며... 이미 죽은 것 같다고. 어제부터 이상했다고...

그래서 바람이 이렇게 서글프게 하루 종일 휘몰아친 걸까? 어둑해진 밤을 등지고 녀석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가볍게 안녕을 전하고. 애틋한 새벽을 지나 또 다른 연이 선물처럼 다가오기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연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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