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얹은 진심 한스푼

관계와 성장을 잇는 작은 물음표

by 화몽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를 만들어가는 생명체다. 올바른 의사소통은 기본이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점점 중요해지는 요즘이지만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지독한 명제만큼은 결코 버릴수없다.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에 걸쳐 변화하던 세상이 며칠 만에도 뒤집어진다. 어릴 적 봤던 SF영화에 나올법한 풍경속에 우리의 현실이 있다. 급격한 전환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를 습득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잃은 채 방황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계 맺기의 어려움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의사 소통을 다룬 수많은 책이 서점 매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로를 알아가는 법을 글로 배워야 할 지경이라니 웃픈일이 아닐수 없다.


의사소통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로 눈을 마주하고 하는 대화다. 대화는 의사소통의 시작이다. 일방통행은 소통이 아니다. 오가는 말과 표정 속에 감정이 담길때 비로서 마음의 문을 열린다. 잠긴 문을 억지로 발로 차면 상대는 문을 더 꼭 닫을지 모른다. 나와 네가 우리가 되는 방법에 정답이란 없겠지만 상대를 진정한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가 기본이다.

대화 속에는 반드시 질문이 따라온다. 질문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정보를 얻기위한 질문, 사전적 의미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낭패다. 질문은 나와 너를 연결해 주는 고속도로다. 좋은 질문은 나를 성장시키고 너와의 고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요즘 질문 중에는 마침표가 찍혀있는 특이한 질문의 형태가 있다.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답정너‘이다. 질문이지만 너의 의사는 반영하지 않는 묘한 질문이다. 표현은 강압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인정받지 못할까봐.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무서움. 무시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넘쳐흐른다.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물음표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대한 정당화일수도 있다.


“두부조림 저녁 반찬으로 괜찮지?”라고 둘째에게 물으며 이미 나는 접시에 두부조림을 담고 있다. 큰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하며 은근히 강요하고 있는 나. “이번 여름엔 경주로 휴가 가는 건 어때?”라고 질문을 아이에게 던지는 나는 이미 경주에 숙소 예약을 마쳤다. 다른 식구들의 취향에 따라 고른 휴가지이다. 이 질문 역시 둘째 아이의 의사를 묻기 위함이 아니고 강제로 희생하라는 명령이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던지는 강요일뿐이다. “이미 정해진 걸 왜 물어봐?”라는 대꾸는 너무나 정당하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말끝을 흐리며 자리를 피하기에 바쁘다.


질문의 방향은 항상 밖을 향하는 것도 아니다. ‘답정너’라는 변질된 질문의 형태는 나를 향한 화살일 수도 있다. 질문에 진심을 두둑하게 올려 내게 향하면 반성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이가 밖으로 흘러간다면 자연스레 나는 무르익는다.


존중과 배려가 담겨있는 질문은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둘 사이의 경계를 흐려지게 만들어 서서히 물들어간다.


진심 어린 물음표는 닫힌 문을 열어젖히는 힘이 있다. “열공하고 온 우리 아들 주말에 뭐 해줄까?” 라는 열린 질문 하나가 가족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너와 나, 나와 사회, 사회와 국가, 국가를 넘어 서로의 간격을 좁혀준다. 질문은 대화의 시작이자 관계의 성장판이다. 그리고 진심을 뚝 떠서 얹은 질문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서로의 마음을 녹여주는 가장 따뜻한 노하우다.


질문은 대화의 시작이자 관계의 성장판이다.
그리고 진심을 뚝 떠서 얹은 질문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서로의 마음을 녹여주는 가장 따뜻한 노하우다.

8월 5일의 글감은 ‘답정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