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진행형의 계절

by 화몽

”띠링띠링…“

더위란 녀석이 지칠법도 한 9월로 넘어가는 새벽. 에어컨을 키면 춥고 끄면 끕끕하고 진퇴양난의 밤, 겨우 잠든 나를 흔드는 소리, 둔탁한 잔속 얼음덩이들이 엉켜내는 그런 불편한 소리. 결국 실눈을 뜨고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손을 더듬었다. 새벽에 폭우가 쏟아지니 주의를 요한다는 과한 안부 메세지다. 이렇게 격렬하게 나의 안녕을 바라는 국가의 마음을 ’따뜻하다‘ 여기자. 시계를 보니 곧 일어나야 할 시간. 애매한 틈을 끼어맞춘다.


싱크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와 빗소리가 겹친다. 여전히 뜨겁지만 스치는 바람에는 흙내가 묻어있다. 여름이 길었던 탓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맡을수 있었다. 낯설지만 몸이 기억하는 이 내음은 9월이다.


새해, 새달, 새날의 접두어 ’새’. 우리는 이 글자를 만나면 은근한 낯설음에 설렌다. 그러나 홀로는 완전한 의미를 가질수 없다. 새얼굴과 새눈빛을 마주하고 새숨을 나누고 새나눔을 함께하여 새인연으로 새빛을 비춘다. 그렇게 새로운 계절의 꼭지를 따는 새달, 9월의 새날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에는 항상 씨앗이 움튼다. 빛을 품은 바람이 움튼 싹을 자라게 한다. 이 씨앗을 우리는 ‘다짐’이라 부르곤 한다. 흔히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 하지 않던가? 아직 늦지 않앟다. ‘늦었다’ 생각할때가 가장 빠를때다. 오늘 이 ‘다짐’이라는 것을 해보자.


‘다짐’이라는 단어는 온 우주의 긍정적 에너지를 끌어모은다. 희망, 믿음, 용기, 밝음, 결심, 의지… 이런 어휘들을 잘게 다져 하나로 꼭꼭 눌러 뭉쳐놓은 하나의 원기옥이다. 상급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도덕 교과서 첫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는 낱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만만하던가.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다보면 원기옥은 한순간에 깨지고 만다. 불편한 진실앞에서 새날의 다짐은 그렇게 힘없이 무너져버린다. 매번 그렇다. 한번 두번 세번 이어지다보면 다짐은 그저 교과서속에 나오는 생경한 글자일뿐이다. 내게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도덕 교과서는 1등급 학생의 서랍속에 넣어버리고 내 결을 더듬어보자.


“흔들려도 괜찮다, 다짐은 바람 속에서도 뿌리 내린다.”


진짜 다짐은 세상의 모순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햇빛과 소나기가 이어지고 더위와 서늘함이 뒤섞여있는 오늘을 날씨가 그렇다. 마주해야한다. 응시해야한다. 도망치지말아야한다. 받아들여야한다. 불편함을 견디는 힘에서 새다짐을 할수있다. 앞뒤가 있는 동전을 하늘로 쏘아올리자. 낚아챘다면 내게 다짐이라는 주문을 걸어보자. 불편함에 꺽여진 다짐들은 다시 펼쳐보자.


“자~ 아해봐. 쭈니야. 니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이랑 새우야. 엄마가 먹기좋게 잘랐어.”


내 눈을 비껴 앉은 아이를 끌어 당겼다. 온갖 수로 입을 당겨보지만 꾹 다문 입을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또래 엄마들과 나눈다. 식탁위의 전쟁이다. 아이는 도망가고 엄마는 끝까지 쫒아간다. 너를 위한다며. 몸에 좋다며. 잘 먹어야 잘 자란다며. 시간과 다퉈가며 한그릇을 결국 비워낸다. 아이의 밥상은 보기 좋았다. 그러나 아이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스스로 숟가락을 잡고 먹고 싶은것을 먹게하면 흘리고 맛만 찾아간다고 생각한 엄마의 불편한 세상이었다. 이 숟가락에 다짐에 다짐을 올리고 쌓아 내 입안에 밀어붙인다. 꾹 다문 입을 두손으로 벌려가며 말이다.


마침표를 찍은 다짐은 죽는다. 불편한 세상과 손을 잡아버린 다짐은 작아진다. 쉼표와 물음표, 느낌표를 세상에 던져야한다. 보기좋게 포장된 다짐만 골라 먹는 나는 비겁자다. 어려움을 피한 나는 어른이 되기 힘들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외치면서 흔들거려야 한다. 여름과 가을의 불편한 공존처럼 흔들리며 용기를 내본다.


“다짐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이어지는 문장이다.“


오늘은 소중하다. 매일이 쌓여 내가 되는 과정에 마침표란 있을수 없다. 다짐은 지금도 이어가는 문장이다.


다짐은 진행형이다.

다짐은 과정이다.

다짐은 이어짐이다.


9월의 첫날, 바람이 내게 속삭인다.

“마침표의 때가 아니야. 너의 페이지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