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꾸꾸와 안안안 사이의 봄

분홍빛 청춘에서 노랑빛 오늘까지, 꽃 피울 우리

by 화몽


산처럼 솟은 앞머리는 스프레이로 단단히 고정한다. 혹여나 흩어질까 봐 핀으로 집고 화구를 펼친다. 오늘의 컬러는 보라. 여성스러움의 극대화가 포인트. 며칠 전, 홍대 앞 건널목 건너편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던 유명 여배우의 표정이 떠오른다. 퐁네프 다리의 곡선을 눈썹에 얹고, 꼬리는 별빛처럼 은은하게 흐른다. 은빛 별이 흩뿌린 듯한 마주앙 한 방울이 감은 두 눈 위로 흐른다. 초승달의 은은함을 두 볼에. 당신을 향한 심장을 짜낸다. 그 붉은빛으로 우리는 속삭이고. 타오르는 오늘을 봄밤에 새긴다.


삐삐가 울린다.

‘828210041004’, 빨리 와, 너의 천사.

수화기를 들어 메시지를 남긴다.

‘00111004’, 지금 곧 가, 너의 천사.


절정의 순간. 모든 숨을 내던지는 벚꽃처럼, 흩날리는 블라우스 자락을 허리춤에 넣는다.

햇살 속에 잠깐 설레다 사라질 분홍빛 구두. 찾아옴과 동시에 스러질 발그레함, 만발한 청춘의 봄.

그 시절의 우리. 지금의 별들이 스치면 책갈피 속에나 묻혀버릴 벚꽃.

그 봄, 청춘은 ’꾸꾸꾸‘였다.


그 시절엔 그랬다. 폴라로이드 속 화사한 미소가 지워지듯 흐릿흐릿. 기억 언저리로 넘어간 오후의 햇살이 되었다. 거울 앞에 선다. 오늘의 내가 그 안에 있다. 화사함과는 결이 다른 미소가 있다. 따스한 햇살에 쏟아져 나오던 분홍빛 꽃 꿈은 지고 무심히 골목 울타리들에 줄줄이 달린 개나리. 나를 향해 달려오는 노랑 병아리. 온 세상을 환히 밝히는 촛불. 너희들의 도시락을 싸고, 벗어놓은 땀 내음을 지우고, 집안에 그득한 개구진 웃음을 쓸어 담고, 들과 강으로 산에서 바다까지 뒹구르르. 알록달록한 크레파스를 꼭 쥐고 노래 부르는 너희들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풀뿌리 같은 내 머리칼. 바람에 씻긴 티셔츠, 꺼져가는 얼굴빛이 그 안에 있다. 너희들과 생을 나눈 내가 그 안에 있다. 노오랑 빛을 머금고 나직이 온기를 나눈다.


봄은 언제나 화려한 벚꽃만이 아니라, 담벼락 아래서 조용히 피어나는 제비꽃과 민들레를 품고 있다. 청춘의 ‘꾸꾸꾸’가 벚꽃이라면, 오늘의 나는 보랏빛일지도. 수수하여 들여다보는 이의 마음에 더 깊이 새겨질. 아이들 도시락에 넣은 노란 계란말이처럼, 매일 반복되는 작은 정이 모여 오늘을 만든다. 꾸밈은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피어나는 꽃일지도…

민들레는 바람에 홀씨로 흩날린다. 그 흩어짐 속에서도 다시 뿌리를 내린다. 꾸밈이 없어 보이는 ‘안안안’의 날들이라 해도, 결국 그 안에서 나를 닮은 꽃이 피어난다. 바람에 맡기듯 자연스럽게, 그러나 어디서든 살아내는 힘. 그것이 진짜 ‘꾸안꾸’ 아닐까.


화려한 ‘꾸꾸꾸’의 청춘은,

소박한 ‘안안안’의 오늘로,

어느새 ‘너와나’는 이렇게,

서로의 ‘봄의꽃’이 되었다.


봄은 새로운 생을 한결같이 꽃을 피우며 말을 건넨다.

발그레 붉게 물든 진달래는 너의 빰이다.

단아한 가슴 품고 하늘을 바라는 목련은 하얗게 외친다.

장난꾸러기들이 모여 까르르 웃는 소리, 개나리가 골목마다 가득 번진다.

봄의 절정은 푸른 하늘에 가득 흩날리는 분홍 꽃잎들로 터진다.

생의 색들이 모여, 내 청춘과 오늘을 잇는다. 싹이 움트는 계절, 이 봄에.

흐르며 모이고, 사라지듯 남는 순간들이 남아, 삶이 되어간다.


피어난 것은 꽃, 꽃이 떨구어 잎, 잎이 물들어 열매, 열매가 흙으로 씨앗, 이토록 열망해 온 우리는 우주로 이어진 끈이다. 모자라듯 넘쳐나는 모든 것들이 손을 잡고 발을 맞춘다. 봄의 꾸는 저물어가는 꾸, 오늘의 안은 행복은 안으로 그렇게 ‘꾸안꾸’는 외적인 특징만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 계절의 흐름도 반복되는 리듬 안에서 보이는 함께 추는 춤이듯. 내 삶이 흐르며 남긴 모래 위 흔적처럼. 흔들리는 꽃바람 안에서 마음을 비쳐내듯. 도돌이표를 찍고 돌아오는 빽빽한 음표들의 화음. 강약 조율 안에서 드러나는 ‘꾸안꾸’.


겨우 이만큼 살아보니 진정한 꾸밈은 내면의 항아리 안에서 나온다. 질퍽한 옹기가 빚어낸 술의 향이 코끝에 맺힐 때 당신은 알게 된다. 태도, 말투, 생각, 글, 표정에 드러나는 배려와 공감. 아끼는 마음에 한끝 더해진 진정성. 쉽게 툭 뱉은 ‘사랑해’가 아닌 수천 개의 학의 날갯짓이 전하는 아까운 한마디. 그런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이 한 방울 톡 떨궈진 봄이다. 겉에 드러난 것이 모두가 아님을 알아가기에. 단단한 내면이 먼저다. 그다음은 드러난다.


오늘의 나는 어떤 룩북을 열까?

오오티디는 내면의 ‘꾸안꾸’다.

겉으로 드러난 치장보다 더 오래 남는 건, 따스함이다.

결국 당신을 대하는 내 마음이다.


봄빛으로 물든 천 개의 학의 날갯짓으로 계절을 이어간다.

자연스러운 조화, 흐르는 음률에 맞춰 춤을 춘다.

따스함에서, 뜨거움으로

꽃이 진 자리, 뜨거운 계절이 움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