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따뜻해지는 나의 첫말
서늘해진 손끝이 가을의 끝자락을 놓쳤다. 들숨을 들이쉬자, 겨울이 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코끝에 스쳐가는 오후가 시리게 물든다.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에 가을이 급히 떠났음을 안다. 그 자리에 더 서둘러 단단해진 공기가 눌러붙은 버스 창에 얇은 얼음꽃이 가득 피었다.
손가락을 올려본다. 어릴땐 이런 장난 정말 많이 했는데, 발그래해지는 볼에 힘을 주고, 버스 엔진 소리에 ‘후~’하는 흩어지는 숨을 유리창에 던져놓는다.
뭘 그려볼까?
잠시 생각하다. 웃는 얼굴 하나 그려본다. 그 위로 겹쳐지는 얼굴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떠오르는 모습들에 햇살이 스며들고, 나도 따라 웃었다.
버스의 안내판에 다음 정거장이 떠오른다. 손끝에서 까슬거리는 붉은빛 스웨터의 감촉이 아직 낮설다. 식어가는 손잡이를 잡은 손이 기억하는 냄새가 있다. 나를 안아주던 엄마의 숨결이 뜨개의 구멍마다 맺혀있다. 여전히, 나는 따뜻할수 있다.
겨울에 내 목덜미를 내주기 전에 서둘러 내려 집으로 향했다. 공기가 서늘하게 스웨터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나도 모르게 두손을 모아 비빈다. 그리도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졌던 작은 골목은 이제 회색빛에 잠겨 있다. 의류폐기함 밑에서 낮게 우는 고양이도 겨울빛으로 털갈이를 한 모양이다. 몸을 동글게 말아 차가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고양이의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나는 흰 숨결과 마주 선다. 찰나의 온기가, 겨울의 문을 연다.
서리꽃이 번져가는 골목을 채운 공기들이 사각사각서린다. 마치 얼음위를 걷는듯 미끄러지는 바람이 심장을 움츠리게 한다. 11월의 문턱, 눈이 되어 내리기엔 아직 아쉬워 뱉어내는 한숨이 옷깃을 여미게한다.
옷장 속 서랍을 꺼냈다, 다시 밀어넣기를 반복한다. 더운 날은 길게 늘어지고, 겨울과의 사이를 이어주던 상념의 가을은 어느새 낙엽처럼 우수수 굴러떠났다. 울긋불긋 발길을 덮은 이불처럼, 우리도 따뜻한 외투를 준비해야 할 때다.
몸도 마음도, 미리 온도를 올려놓아야 잿빛의 날들을 견딜수 있다.
아이는 아직 문장을 모른다. 대신 눈빛으로 말하고, 숨으로 답한다. 이렇게 세상은 ‘말 없이도 말하는 존재들’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의 첫 대화는 이리도 떨린다. 아이는 눈으로 웃고, 울음소리로 애뜻함을 전한다. 잠든 아이의 숨결이 전하는 마음은 인류애의 원형이다. 우편배달부가 아닌 직설적 화자다. 아이의 입은 소리로 먼저 울린다.
나를 부르는 단 하나의 단어에는 사전적 의미 그 이상의 것들이 담겨있다. 그 한마디에 차디찬 문틈은 녹아 스르르 열린다. 서투르기에 투명하고, 조심스러워 숨이 맴도는 낱자들. 첫눈처럼 소복히 쌓여가는 순백의 세상에 아이의 숨결이 녹아든다. 그 맥박속에 서서히 타오르는 따스함이 있다.
말에는 온도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계절에 따라 귀에 감기는 온도가 달라진다. 붉은빛 벙어리장갑처럼 포근한 말, 얼어붙은 머리칼을 돌돌 말아 녹여주는 뜨개목도리 같은 말. 누군가의 어깨를 감싸는 온도, 소근소근 귀에 감기는 온도, 입술 끝에서 피어나는 한숨의 온도. 그 온도들이 모여, 말이 되고 손짓이 되어 우리의 결을 따뜻하게 이어준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그 물음 안에 관심과 애정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여기저기 긁혀 뭉뜽그려진 스웨터 자락이 그렇다. 익숙한 문장에 묻혀버린 온기. 잊혀진 그리움이 문든 고개를 들때면 마음속에서 불씨가 일어난다. 항상 나의 그림자를 쓰다듬어주고 계실 거칠어진 손길을.
그러나 어떤 말은 매서운 주먹 같다. 훅 하고 날아와 마음 곳곳을 때리고, 얼음장 위로 내던져버린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말을 건네네다는 건 늘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엘베레이터에서 만나는 18층의 노부부, 집앞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학생, 복잡한 사거리에서 길을 묻는 관광객, 낯설음을 이겨내고 눈빛을 나누고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넨다.
짧은 말 한마디가 지나가며 공기를 데운다. 뱉어내는 숨은 서로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며, 함께하는 세상을 안아준다. 등지고 있던 우리를 서로 마주하게 해주는 목소리가 공기중의 냉기를 천천히 누그러뜨린다.
현관밑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겨울의 아침은 특별하다. 동트기전 툭하고 던져진 택배상자는 얼어있지만, 누군가의 부지런함이 담겨있다. 먼 길을 돌아온 인사는 쉽게 식지 않는다. 극과 극으로 갈라져버릴지 모르는 우리를 다시 묶어주는 끈은 핸드폰 안에도 있다.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메시지를 타고 날아간다. 복실복실한 목도리를 챙겨주고 옷깃을 여며주는 손끝이 따라온다. 보이지 않는 틈마다 이런 말한마디가 꼭꼭 채워간다. 저 멀리로 날아가버리기 전에 잡아주는 라디오의 잡음 속에서 들려오는 첫인차사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손길에 단추구멍이 헐렁해진 외투,
보풀이 올라온 두툼한 손뜨개 니트 같은 말이다.
지친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말.
소근소근 다가와 마음을 덮어주는 말.
새로운 경험은 건강한 물음표로 가득하다.생경한 시간, 낯선 장소에서의 생활은 차가운 거리다. 내게 중국이란 그런 단어였다. 일상의 언어가 달라지니 온도의 간극은 더 멀어졌다. 거리에는 이름을 모를 소리들이 가득했다. 높고 낮음을 오가는 음성은, 처음엔 낯설고 거칠었다.
겨울바람처럼 쨍하게 부딪치고, 봄의 안개처럼 부드럽게 흩어졌다.
그들의 말에는 고저가 있었다. 스타카토를 튕기듯 사계절을 담고 있었다.
겨울을 머금은 햇살처럼 쨍하게 뻗치는 첫소리,
노곤히 피어오르는 봄의 아지랑이 같은 둘째 소리,
멀리서 달려왔다 발끝을 간지럽히고 도망가는 여름 파도 같은 셋째 소리,
마지막 소리는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가을 열매였다.
낯선 억양 속에서 나는 ‘말에도 리듬이 있다’는 걸 배웠다. 같은 문장이라도, 말끝이 조금만 올라가면 웃음이 되었고, 살짝 내려앉으면 서늘한 그림자가 되었다.
“你好?” — 짧은 인사 한마디에도 온도가 달라졌다. 억양 하나, 호흡 하나가 사막과 북극을 오가듯 변주됐다. 그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언어란 결국, 마음의 숨결이라는 것을.
소리에 마음을 더하면 관계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막 말문이 트인 서툼 같은 반말은 애정과 존중을 배우며 다채롭게 번져갔다. 놓일 곳에 놓여야 했다.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 입듯, 말도 그 자리에 맞게 따뜻해야 했다.
우리말에도 다른 언어에는 없는 미묘한 결이 있다. 툭 내던진 무뚝뚝한 반말은 끝이 울퉁불퉁한 돌멩이. 잘못 맞으면 아프다. 가볍지만 뼛속까지 서늘하다. 치근거리며 앵기는 반말은 봄볕이고, 새끼처럼 비비 꼬인 존댓말은 11월의 비처럼 깊다.
할머니의 체크무늬 숄은 36.5도를 지켜내는 존댓말이다.
눈이 내리는 저녁, 그 숄을 어깨에 둘러주는 한마디 —
그 짧은 말이 온 세상을 녹였다.
아이에게 건네는 말은 솜이불처럼 가볍게.
친구에게 전하는 말은 따스한 향을 전하는 한 잔의 차다.
오래된 외투의 묵직함을 나누는 든든함은 부모님과의 대화다.
누군가의 등을 토닥여주는 한마디, 지금의 외투다.
첫서리가 내려앉은 문턱에서 입안으로 말을 건넨다.
따뜻하자. 따뜻한 눈. 따뜻한 손길. 따뜻한 입으로 당신에게 가자.
존댓말의 정갈함과 반말의 다정함을 오가며 당신의 옷깃을 여며본다.
살그머니, 느리게, 긴 호흡으로.
짧아지는 날과 길어지는 그림자처럼 겨울의 달력을 본다.
이 한 장을 넘길 즈음에, 조금 더 포근해질 나를 기다리며
내게 다가올 너를 기다려 본다.
살그머니, 느리게, 긴 겨울의 호흡으로.
정갈함과 다정함을 오가며,
당신의 옷깃을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