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선 위에 꿈을 세우다
시계를 본다. 6시 10분 전이다. 서둘러야 한다. 곧 수업이 시작한다.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하루하루가 시험 같다. 늦게 들어가는 만큼 손해다. 수채화 반 친구들이 다 같은 학교를 준비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종이 크기도 다 다르다. 시간도 조금씩 마찬가지다. 내가 준비하는 학교는 시간도 정물도 쉽지 않다. 높은 완성도를 요하기 때문에 일 분 일 초가 금이다.
신호등이 도와준다. 빨간불이 깜빡이지만, 뛰어야 한다. 바로 계단을 뛰어올라 문을 열고 달려 들어가 사물함에서 팔레트와 필통, 붓을 꺼내고 물통에 깨끗한 물을 받는다. 앞치마 끈만 묶으면 준비는 끝난다.
“자 보자. 오늘의 정물은 항아리, 소화기, 라면, 콜라병, 야구모자, 두루마리 휴지… 음 뭐가 또 좋을까?”
선생님이 여기저기 물감 자국에 지저분해진 수많은 정물을 지휘봉으로 휘휘 휘휘 뒤집어보시면서 골똘히 생각 중이다.
“살아있는 것으로 한번 가볼까? 오랜만에 국화다.”
꺾어진 국화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뭐 신상이니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으로. 오늘 정물들은 편히 다가갈 것들이 하나도 없네. 크기도 다 크고 국화는 생화이니 이 표현이 중요할 듯하다. 휴지도 어려운데 어떻게 풀어서 구도를 짜야할까? 오래 고민하면 떨어진다. 구구단 외듯 이미 손은 사각거리며 종이 위에 흑심 자국을 빠르게 남기고 있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구도다. 커다란 덩어리를 조심히 옮겨, 납작한 흰 종이 위에 또 하나의 세상을 올린다. 기초 공사는 삼각형으로 잡힌 구도다. 그 위에 색감과 질감, 양감 등의 표현이 버무려져 개성까지 더해지면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렇게 18살 소녀는 물감으로 꿈을 물들였다. 물컹한 물감을 붓끝에 찍는다. 낡은 팔레트의 물비린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목안이 까실거렸다. ‘크흠.. 흠흠’, 짧은 마른기침이 고요를 비집고 나왔다. 실기실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작은 떨림마저 허락지 않는 곳, 내 숨을 들킬까 두려워 서둘러 삼켰다. 항아리 위에 꾹 찍어 칠한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내 안의 결이 눅눅히 일렁였다. 균형을 다잡고, 내 안에 조심스레 선을 그었다. 성적, 실기, 정신력이라는 3개의 꼭짓점을 연결해 또 다른 안정적인 삼각형을 만들어 그 크기를 키워갔다.
주변에서 다들 그랬다. 네가 아니면 누가 가겠냐고. 충분함을 넘었으니 아까우니 최고의 학교에 도전하라고….
이런 말들이 삼각형의 모양을 조금씩 찌그러지게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결과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기에. 쥴리앙의 목선 뒤, 오래 서있던 이젤에 내 수험번호가 박혀있었다. 치열한 연필소리가 사라지자 눈동자 하나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릴만큼 고요해졌다. 벽시계의 초침은 여전히 움직였지만, 내 시간은 그 자리에 멎었다. 떨군 고개가 창 밖을 향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엔, 짙은 회색 구름만 스며오듯 밀려들고 있었다. 교문을 나선 내 손에는 서늘한 바람만 잡혔다. 그렇게 나는 믿었다. 안정적인 삼각형이라고. 그러나 꼭짓점들이 이미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완벽하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완성이라는 마침표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도 무리수다. 우리는 순간을 무한으로 반복하며 걸어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상태는 가변적인 현실 위에 쌓아 올린 탑이다. 움직이는 땅 위에 서 있는 데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놀이동산의 어두운 집. 마구 흔들리는 바닥 위에서 귀신에게 잡혀가지 않으려면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내 몸의 무게중심을 낮추며 삼각형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화가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그리던 종이 위의 삼각형처럼. 균형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낭패다. 그러나 괜찮다. 다시 균형을 잡아가면 된다.
삶은 쓱쓱 그려내는 그림과는 다르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넘어지고, 뜻밖의 계단에서 자란다.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이 나라는 궤적을 만든다. 모든 것은 흐르듯 변하고,
균형점 또한 결 따라 스며든다.
중요한 건 완벽이 아니라 균형이다.
기울면 다시 세운다.
너무 곧으면, 잠시 지평선을 따라 눕는다.
그렇게 오늘의 삼각형을 맞춰가며,
비틀린 꼭짓점을 다시 펴고 꿈을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