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삶의 결
판박이라는 말에서는 뭉뚝한 연필 꼭지의 향이 난다. 오래된 공책, 지난날이 빼곡히 적힌 일기장의 냄새다. 세대를 엮어 주는 새끼줄, 지성인은 그것을 유전이라 부른다. 몸에 새겨진 암호들은 태초의 땅에서 비롯되었다. 어머니의 항아리 안에서 익어 푸근해진 지도는 내게서 아이들에게로 이어진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붕어빵틀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그렇게 나오는 우리는 어딘가 다르면서 한결같다. “씨도둑질은 못 한다.”라고 했던가. 어린 시절 고모들이 내던졌던 농담에 짐가방을 꾸렸다. 나를 데리고 왔다는 그 다리 밑에서 친부모님을 찾겠노라며 눈물 콧물 흘렸다. 말끔한 모습으로 핏줄을 찾겠다며 거울을 들여다봤다. 고모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거울 안에는 아빠가 들어앉아 나를 보고 계셨다. 돌아앉은 고모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들썩이다 못해 춤을 췄다.
그때였다. 천둥이 집안을 가르며 번쩍하고 마룻바닥에 내리 꽂혔다. 키득거리던 고모들은 쥐구멍을 찾느라 혼비백산이 되었다.
“우리 소미, 누가 울렸어!”
아빠다. 내가 아빠다. 아빠가 나다. 흐느끼던 내 어깨에 따스한 손길이 닿는다.
“아빠… 고모들이…”
나는 나에게 달려가 안긴 채 엉엉 울었다.
한 알의 씨앗 안에는 오랜 시간 굴러온 자국이 남아 있다. 그건 흙이 기억한 시간의 무늬다. 생명을 틔울 순간을 기다리며, 스스로 지도를 그려간다. 다윈은 말했다. 씨앗은 신의 설계가 아니라고. 땅이 빚는다고. 같은 씨앗도 햇빛과 바람에 따라 다른 꽃으로 핀다.
과학자들은 그걸 ‘후성유전학’이라 부른다.
하늘로 뻗는 나무도 있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꽃도 있다. 뿌리의 방향이 저마다 다른 것이 생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파도가 모래 위를 쓸듯 우리의 순간들은 매번 다른 무늬를 남긴다. 그 겹겹이 쌓여, 나라는 책의 페이지가 천천히 넘어간다.
“소미는 대학생이 되더니 엄마 얼굴이 나오네.”
엄마를 보고 엄마와 숨 쉬고 엄마 손을 잡고 지낸 시간이 길어져서일까? 눈코입은 아빠인데 어디선가 엄마의 모습이 내게서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처럼 보고 듣고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엄마는 내 풍경이 되어주었다. 엄마는 봄·여름·가을·겨울이었고 낮과 밤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결을 따라 길을 떠났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난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엄마가 살아온 날들이 내가 살아갈 날들이 될 때쯤이었다.
“엄마가 달라질게. 엄마가 오늘을 더 아끼며 살게. 엄마가 우리 딸을 위해 그렇게 할게.”
방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내 키처럼 매일의 자국이 늘어간다. 닮고 싶은 사람을 닮아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안에서 나를 찾고 내 안에서 자리 잡은 힘은 고요히 자라난다. 선한 영향력으로 나와 주변을 밝혀준다.
둘째의 책상은 녀석의 일상이 뒤엉켜 어수선하다. 한 모금 남은 생수병, 책가방에서 튀어나온 수학 문제지에는 빨간 X표가 가득, 여기저기 모서리가 접혀있는 소설책 두 권, 대충 접힌 성적표와 두어장의 상장, 코 풀다 만 휴지 뭉치, 학기를 넘긴 문제집에는 낙서, 뚜껑이 바뀌어 알록달락 한 형광펜, 지우개 가루 수북이, 우유 자국 번진 컵, 끝까지 씹어 먹은 핫도그 막대가 두 개, 찢어진 초콜릿 봉지, 여자 친구가 준 하트 스티커가 붙은 사탕 케이스, 반창고 한 조각, 여드름 패치 봉지, 짜다 만 선크림, 누렇게 색이 바랜 에어팟 케이스, 3kg짜리 작은 아령, 열어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학교 알림장, 4월에 멈춰있는 탁상 달력, 족히 수백 장은 되어 보이는 프린트들… 며칠을 지켜보다 책상을 정리해 준다.
첫째의 책상과는 극과 극인 암호를 풀어본다. 내 안에는 해결의 실마리가 이미 있다. 아이의 암호는 내 것이기에 어렵지 않다. 엄마와 내 사이가 모호해질 때. 엄마인 내가 흐릿해질 때. 결핍은 고민을 낳는다. 고민은 결과를 가져온다. 서로의 손을 잡고 나아가기 위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엄마가 달라질게. 엄마가 오늘을 더 아끼며 살게. 엄마가 너희들을 위해 그렇게 할게.”
구수한 향이 퍼진다. 닮아간다는 것은 그 향기의 끝에 매달린 열매이고, 열매가 품은 또 다른 씨앗이다. 그렇게 향기는 세대의 다리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