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間

마주침#011 동사는 녹슬지 않는다

by 화몽


Congratu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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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씻어냈다. 혹여 우리말이 아니어서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번역기란 번역기는 다 돌려보고도, 작은 아이에게 내가 읽은 것에 대한 확인을 받고 그리하고도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다시 글줄을 따라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었다.


Congratulations!


그래, 축하한다고. Unfortunately …가 아닌 축하다. 두 팔 벌려 힘껏 나를 안아올리는 단어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속 공백들이 이제야 숨을 토해내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살아온 내가 살아갈 나로 일어나는 점.


나사처럼 돌려 꼬인 자주색 계단 손잡이를 미끄러지듯 스치며 아래로, 흙의 거죽으로 향한다. 신발 끈을 조인다. 비릿한 쇠 냄새가 구부러진 어깨를 타고 올라와 숨이 턱하고 멈춘다. 고개를 든다. 푸른 하늘은 흐르고 연둣빛 바람은 나를 한 바퀴 반을 돌아 손을 잡아 끈다. 도로시의 빨간 구두의 마법의 주문, 흡사 그렇다. 검푸른 운동화로 바닥을 탁탁탁, 세 번 두드린다. 조여오던 심장은 제 속도를 찾고 엇박자로 들고나던 호흡은 안정적인 모스부호를 찍는다.


‘잘될거야. 괜찮아. 걱정하지마.’


뛴다. 두 발은 달린다. 두 팔을 어제와 내일 사이로 흔들며 발자국 간격을 넓힌다. 시간의 틈은 잦아들고 숨은 파도를 친다. 몸은 정직하다. 스스로를 몰아가면 버텨낸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의 시작을 비벼내는 손끝의 감각이 돌아온다. 움추려든 후각을 살리고 막혀버린 귀가 들린다. 현실이 만들어낸 드라마들이 눈앞에서 녹아내리고 내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로 서있는 순간을 찢고 나간다. 나는 그렇게 달리며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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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초가 십 년 같다던 옛말, 옛말은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격언.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순간은 찰나로 다가왔고, 내겐 억 겹의 시간이기도 했다. 흐르던 것이 멈춰버린 벽. 무엇이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달리며 살아났다.


오늘도 달리며 밖으로 피어나고 안으로 스며든다.


달리면 2배속의 시공간을 스친다. 톡. 톡. 톡… 수줍은 두드림으로 시작한 회색 운동하는 이내 격렬한 에너지를 지구 표면과 주고받는다.


톡.톡.톡….. 토톡. 탁. 타탁. 탁.탁. 탁.


불안정한 변주로 오고 가던 들숨과 날숨도 오래된 옷처럼 내 몸에 딱 들러붙는다. 구불구불한 내장의 어디쯤에 엉겨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숨구멍을 간질이며 솟아 나오면 그제야 나는 말할 수 있다. 살아있다. 나를 둘러싼 공기의 파고는 거칠지만 날것이 되고, 나를 향해 달려드는 바람은 흘린다. 뿌리를 걷어 온전히 새로 살아내라. 스미는 지금이 경험이다. 흘려보내지 말고 소중히 끌어안는다. 얼굴에 긁히는 날벌레마저 내 무늬가 된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만지고, 무엇을 맛보는지 그 무수한 무엇들 일면들을 모두 들여마시는 탁.탁.탁.


푸른 숨을 오물거리며 길가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는 아빠의 눈동자 속에서 아장아장한다. 검은 점들이 탁탁 박힌다. 검은 점들은 꿈꾼다. 닮아가는 어깨, 목소리, 미소, 눈동자들을 그린다. 긴 그림자 안에서 아장아장한다.


나는 뾰죡한 눈과 마주친다. 선을 긋는 숨기에는 멈춰 선 네 개의 발이 있다. 찡긋거리는 콧수염이 경계를 허문다. 네 개의 발은 여전히 하나다. 생선 뻐의 하얀 피나무의 그림자 모서리에 기대선 들고양이는 내게 머물지만 나는 여름 색 민소매를 입고 뛰는 남자의 뒤를 따른다. 미끄러지듯 그를 넘어선다. 탁. 탁. 탁. 소리는 커진고 숨은 거칠어지지만 다가오는 남녀 사이를 흘러 지난다. 탁. 탁. 탁. 파도치듯 빛나는 강가가 커다란 편의점 한쪽으로 비친다. 검은색 라이딩 북으로 맞춰 입은 네 명은 앉지 않고 서있다. 남색 점퍼를 목까지 올려 입은 노인은 빛을 등지고 앉아 나를 본다. 아니, 지나가는 것들을 마주한다. 서로에게 맞닿은 가족은 서로의 거울이다. 편의점 옆에 점으로 놓은 의자들에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일상의 기대와 두려움이 올라타있다. 나를 기울게 하는 것들은 이렇다. 내가 쉽게 지나지 못한 채 맺지는 방울들은 깨어나고 이어진다. 나는 달리며 넓어진다. 이어지며 깊어지며 일렁이듯 좁아진다. 탁. 탁. 탁. 빨간 반바지를 입고 이어폰을 따라 숨 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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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파고든다. 숨을 공부한다. 오늘이 길어진다. 어제는 내게 오고 내일은 나를 찾는다. 탁. 탁. 탁. 물리와 화학의 주기율표 어디쯤에서 잠시 멈춘 숨 앞에 의자들이 앉아있다. 주황색 뼈를 앙상이 내민 두 개의 의자가 나란히 있다. 가을이 내려앉은 기다란 짙은 나무 벤치들이 몇 걸음을 사이에 두고 여러 개 붙어있다. 사랑해라고 소곤거리는 그네 의자에는 두 개의 어깨가 겹쳐져 등을 내준다. 탁. 탁. 탁. 진초록을 드리운 캠핑의자 두 개가 서로를 응시한다. 탁. 탁. 탁. 나는 맞서지 않는다. 탁. 탁. 탁. 거릴 때마다 나는 선명해진다. 지나온 여자는 어깨 아래로 수줍게 흔들리는 면사포를 쓰고 8개의 노란 꽃잎을 가진 한 송이를 안고 있다. 샛노란 볼을 싱긋거리는 남자는 나눈 손을 가져와 여자의 얼굴을 감싼다. 허리춤에 묶인 손바닥 가방에서 비누냄새가 방울져 피어난다. 아스팔트는 살구빛으로 물든다. 2배속의 나를 8배속의 자전거들이 지나고, 스치다 마주한다. 오전인데 해 질 녘의 바림이 날리고 하늘 속에도 돌아가는 바퀴들은 구름을 만든다. 쪽빛 꼬리를 날리며 키가 높은 나무의 모서리에 달린 연은 구름을 따른다.

탁.탁.탁. 숨, 후. 나를 스친다. 타탁. 탁…


머물러가는 호흡이 앞서서 마주한다. 그림자에 숨지 않는다. 나를 스쳐간 모두는 이미 나아간다. 능동적 행위의 주체로 우뚝 선다. 흐르는 가운데서 들리는 소리들, 길 건너 무리 속에서 번쩍 들어 올린 손.동사는 녹슬지 않는다.


기다린다는 건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자라는 일. 그럼에도, 당신이 주인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도 나는 달리며, 삶의 사이에 머물며 엇갈린다. 빗금 사이로 스며든 빛에 달려든다.

탁.탁. 타다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