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3시 15분 43초, 기다림의 점.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 삼성스토어 홍대점을 등 뒤에 두고 나는 서 있다. 나를 날실로 가로질러 가는 금요일 3시 15분 43초, 이 한 점을 나눠 가지는 x와 y축의 사람들. 잿빛 보드 블록 위를 흐르는 발소리들에 밟히는 껌딱지들 위는 어제, 그제, 그리고 그 너머의 날들이 빼곡히 들러붙어 있다. 누군가의 흰색 운동화 바닥에 붙어 여기를 떠났을지도 모르는 순간의 파편은 내 어깨를 짓누르는 오후의 햇살 속에서 산산이 흩어져간다.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스타킹에 흰색 반 양말, 푸른 하늘이 쪼가리로 기어들어 간 은색 가방을 둘러메고 진홍빛 입술을 연신 꿈틀거리는 소녀. 그보다 더 피어오르는 숨이 일렁이는 분홍 숨을 내뿜는 인형이 흔들거리는 가방을 손등에 끼고 제 몸이 3개는 너끈히 들어갈 만큼 거대한 회색 후디를 입은 또 다른 소녀는 핸드폰을 들고 사방팔방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다.
‘에엥에엥에엥’ 119구급차가 건널목 앞의 이목을 쓸며 급히 지나간다. 눈앞에 휘몰아치는 사이렌 소리가 구급차에 붙은 거미줄처럼 아스팔트 위에 늘어지다 다급히 쫓아가느라 오가는 차들은 보지도 않는다. 들끓는 경계를 비껴가는 차들 위로 넘어가는 구름이 그늘을 만든다. 얽혀있는 하얀 그림자들 사이를 빽빽이 메꾸는 바퀴들이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성냥 통에 불을 댕긴다.
십일월, 여태 아지랑이가 들끓는다. 계절을 잊은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른다. 본질적 물성 앞에서 두 눈을 질끈 감고 흔들리는 검은 머리들 안에서 차가운 밥알이 익어간다. 지금 나와 겹쳐있는 무리는 스르륵 숨을 맞춘다. 무리가 들어갈 법한 청바지가 유행인가? 그녀는 그보다 더 넓은 강물을 입고 카키색 머리끈으로 생각을 묶은 채 핸드폰 안으로 중얼거린다. 마른 바다향이 넘실거리는 검은 치마에 흰색 단화를 신은 여인이 한 손은 가방에 다른 손으로는 주황빛이 출렁이는 머리칼을 어루만진다. 검은색 카디건에 마른나무껍질을 벗겨 입은 그림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널목 너머의 붉은색 1000번 버스를 따라 왼쪽 발을 까딱거린다. 모두의 사후 세계를 걱정해 주는 마이크 소리만 좌우로 길게 내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내 귀에 꽂힌다. 양손에 흰색 쇼핑백을 두 개, 세 개 그리고 보라색 니트가 담긴 투명한 비닐백까지 든 여자의 머리는 금빛으로 반짝인다. 건널목의 경계에 붙어 왼쪽으로 길어져 가는 그림자의 반복을 세고 있는 나는 기다리는 무리에 가까이 간다. 검은색 털모자를 쓰고 더 깊은 어둠으로 온몸을 휘감은 어깨가 두꺼운 남자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빗금 쳐 나를 지난다. 베이지색 단화 한 쌍이 그 뒤에 바짝 붙어 걷는다. 회색 재킷을 입는 남자다. 그을린 피부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사이로 펑키한 리듬이 들린다. 그의 발소리는 분명히 그렇게 노래를 부른다. 나는 고개를 들어 길 건너 끝이 반듯한 건물을 본다. 금요일 3시 15분 53초에 사라져 가는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며 동일한 좌표를 찍어내는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 그 손이 핸드폰을 움켜잡고 앞뒤로 흔들린다. 갈색 안경 밑에 검은 가죽점퍼를 입은 그녀가 내 앞에 멈춰 선다.
노랑이 다홍으로, 초록은 갈색으로, 붉음이 아래에서 위로 타오르듯 가로수 기둥을 휘감고 올라오는데 찰나의 우리는 무채색이다. 잿빛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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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3시 16분 28초 신호등 색이 바뀐다. 검정 돌과 흰 돌이 등을 대고 반복되는 건널목. 흰 운동화가 4켤레, 검정이… 자 보자. 반복되는 걸음들은 그저 어두운 그림자다. 해를 등지고 느슨해지는 신발 끈들이 모두를 묶는다. 금요일 3시 16분 46초 나는 그 시간 아래로 옮겨 선다. 또각거리는 숫자를 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나는 금요일 3시 16분 51초에 열린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각자의 세포에서 자라난 호흡이 내뿜는 지독한 외로움이 높다란 푸름 아래라 더 파랗다. 한 조각이 잘려 나간 물빛 달이 발밑에서 차오른다. 차가워. 본능적으로 피한다. 신호등은 붉음이다. 아직 뜨겁다. 그러나 오지 말라 한다. 이렇게 끓어오르게 하며 멈춰있으라니, 셀 수 없이 많은 눈을 감게 하고 입을 막는다. 떨어진 잎들이 묽어지는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데 그 고단함을 삼킨다. 메마른 움직임이 태엽처럼 감기고 검푸른 눈동자들은 신호가 바뀌기만을 본다.
바람마저 말라가는 금요일 3시 17분 03초. 발뒤꿈치가 읽어내는 시간으로 앞을 보는 나는 읽는다. 분홍색 털점퍼를 입고 어깨로 웃는 소녀를, 그리고 바라보는 미소를 따라간다. 그녀는 하늘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나와 어긋난 자리를 본다. 초록색 571번 버스가 건널목 한가운데에 있는 정류장에 멈춘다. 누군가는 내리고 어떤 이는 버스에 오른다. 짙은 청바지를 입은 낯선 이가 버스 안에서 내게 손짓한다. 버스 밖에 있는 나는 회색 점퍼의 지퍼를 내리고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내 옆에 붙어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게임을 하나? 그럴 리가 없다. 내 눈은 그가 메시지를 남긴다고 읽었다. 초록색 버스들이 각자의 이름을 걸고 이름 모를 이들을 걸고 다닌다. 첫 하나는 검은 바지를 입을 것이고 둘은 글쎄… 셋은 당연히… 그들 사이에 섞이지 못한 채, 그러나 이미 숨을 나눈다.
넷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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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이 빠지듯 생경한 우리는 건너로, 이 무리의 너머로 향한다. 흔적들의 궤적이 다른 숨들은 지금, 이 순간만은 한 호흡이다. 건널목의 신호가 바뀌기 전에 반대에 올려야 하는 하나의 목적을 가진다.
비친 존재로 살기 위해,
시선 너머로 순간에 터진다.
수 초 전 숨죽임은 폭풍처럼 휘날린다.
숨을 삼킨 틈새들로 용암이 흘러나온다.
금요일 3시 18분 24초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으려 한 점을 넘어 선으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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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발길에 겹겹의 눈동자, 무한한 소리의 소용돌이에서 건져 올리는 혼자의 온전함, 무리 속의 개인, 침묵을 깬 소음, 밝음에 묻힌 어둠, 앞과 뒤, 아래와 위, 스치듯 머물고, 비워있음을 채워 연결된 단절, 떨어짐에 닿아 같아진 지금은 조금씩 달라진다. 모였다가 흩어지고 끝난 뒤 시작되는 반복과 멈춤. 떠나고 머물고 보이고 안 보이고 가깝다 멀어지는 이쪽과 저쪽. 알다가도 모르고 들리다가도 안 들리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움직임, 같은 기억, 같은 사람들의 감정은 그러나 다 다르다. 쓸쓸함은 다 다른 곳에서 오고 투박한 손끝도 웃음을 잃는다.
그럼에도 하나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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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를 기다린다, 사람을 기다린다, 시간을 기다린다, 때를 기다린다, 변화를 기다린다, 용기를 기다린다, 대답을 기다린다, 순간을 기다린다, 기회를 기다린다, 끝을 기다린다, 시작을 기다린다, 타인을 기다린다, 세상을 기다린다, 운명을 기다린다, 기적을 기다린다, 의미를 기다린다, 무언가를 기다린다, 누군가를 기다린다, 아무것도 기다린다,
기다린다, 나는 기다린다.
기다림은 거울 뒤에 있고,
우리는 기다린다.
나를 기다린다,
내 안의 나를 기다린다.
그 안에서 한 점에 닿을
이 와 저
사이에 이들을___
기
,
다
린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