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기다림이 그려낸,
차가운 공기가 여기의 시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다시는 흘러오지 않을 지금의 호흡을 명확히 만들어낸다.
날것의 나는 고요한 흐름을 타고 새벽의 여백을 기다리며 자모를 모아 단어와 의미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이어간다.
나는 나를 지어간다. 나로 되어간다. 나를 만나러 간다. 나로 흘러간다. 나와 마음을 맞춰간다.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0점의 시간은 눈밭처럼 새하얀 시간이다.
순백의 순수.
미련하게 유치한 그곳에는 비어낸 질그릇 하나가 덩그러니 앉아 있다.
그릇 발은 묘하게 흩어진 원들로 번져간다. 하나와 둘 그 이상의 원들 사이는 완전하지 못하다.
동그랗게 더 그렇게 펼쳐지는 선들은 굴곡을 만들며 눌러진다.
희미하다 진해진다.
잔잔하다 폭발한다.
흔들리다 멈춘다.
스며들다 퍼져간다.
모아지다 이어진다.
하나로 보이지만 실은 셀 수 없다.
그려내는 나는 나이지만,
그려지는 나는 아직 내가 아니다.
나는 아직 나를 그려가고 있는 가운데 있다.
0의 시간을 오가며 동심원을 그려내고 있는 나,
그 나를 만나고픈 건 아마도
무거운 추를 달고
밑으로
아래로
끝으로
그럼에도 시작으로 번져가는.
내 안과 밖의 공간,
경계의 면과 면이 마주하는 곡선이 자아내는 음성에 눈을 고정한다.
시시각각 주물럭거리는 외부의 힘에 대답을 삼키고,
얼룩덜룩한 면과 구불거리는 선으로 자아내는 나만의 무늬는
흡사 새 깃털의 뒷면과 닮았다. 무한으로 반복되는 모래바람의 흔적을 따라간다.
쌓이며 밀고 당기는 순간의 질서들은 목적보다는 방향을 찾아간다.
발의 끝과 앞을 이어가며 걷는 외발 타기처럼 위험해 보이지만, 나만의 동굴에서 나와 빛을 향해간다. 줄의 끝이 현실과 달리 균일하지 않은 최소 단위의 운동들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이 시작일지도.
그럼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에 몸을 던져 나의 모두로 무늬를 이어가는 나.
기다리는 나와 그대로의 나, 인정을 갈구하는 나와 그대로의 나, 누군가가 명명하는 나와 그대로의 나, 약속된 언어로 그리는 나와 그대로의 나, 어머니가 던진 핏덩이인 나와 그대로의 나, 결국 어둠 속에서 가슴을 닫을 나와 그대로의 나.
시공간에서 1초 후로 그 뒤로 계속 나아갈 나와 그대로의 나,
꺾인 가지 덤불 속에서 묻혀있을 나와 그대로의 나,
그 내가 깨고 나와야만 하는, 주머니 속. 알록달록한 번짐이 그득한 알.
무너짐을 넘어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뿌리의 엉킴을 푸는 손. 나를 잘게 부수고, 흔들어, 다시 반죽해 내는 고된 순간들을 하고 또 해낸다. 내가 아닌 나를 마주하고 나다운 내가 흩어 뿌리는 단어들을 주워 모아 이렇게 이어낸다. 단어가 나만의 소리로 그려내는 무늬에 대한 유치한 기대감은 거미의 꽁지가 이어 그린 거미줄보다 얇고 숨을 떨군 끝나가는 계절의 나뭇잎의 잎맥처럼 투명해진다. 낮게 흐르는 바람에 불어낸 강가의 동심원처럼 가늘게 떨리며 달빛이 쏟아내는 새하얀 눈송이처럼 가볍다.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손끝의 작은 상처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뽑아낸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기에 내가 되겠다며 고해성사를 내 가슴 안에서 마쳤기에 나와 세상을 엮어 그리는 무늬를 글로 정한다.
붉은 신호만 들어오는 신호등 건너에서 초록 머플러의 풀어질 한 자락 실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박자를 만들어낸다. 결코 이 건너로 넘어갈 수 없다고 해도 기대하며 기다린다.
내 언어를 담아줄 두 눈이 반짝이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선명한 기다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