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소중한 두 어머님, 내년에 북경에 꼭 놀러 오세요.

by 화몽

“애야, 나 며칠째 허리가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다. 화장실도 못 가겠네.”
“어머님, 원래 안 좋으셨잖아요. 병원을 가보시라니까요. 참지 마시고, 한의원 말고 정형외과로 다시 가보세요. 돈 아끼시려다 더 쓰세요. 아프시면 어머님이 고생이신데. 제가 갈까요?”
“아냐, 먼데. 안 그래도 언니가 주말에 시간이 있다고 아는 병원에 가보잔다."


2020년 8월 14일, 어머님이 입원일로부터 5달이 지났다. 무언가에 홀린 듯 보낸 시간. 나는 어머님 병원을 가던 중 건널목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춰 섰다. 신호가 바뀌자 건너편에서 구부정한 허리로 보조기에 의지하신 채 걸어오시는 할머님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4월에만 해도 '어머님도 저렇게 되시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했었다. 이젠 아니지, 고개를 흔들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초록색 신호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기린 목으로 날 기다리실 어머님을 생각하며 걸음을 서둘렸다. '그래, 지금 최선을 다하자. 오늘은 하루뿐이니까. 지난 일을 잠시 잊고 내일은 내일 걱정하는 것으로.'


입원 전에도 어머님은 허리의 통증 때문에 걷는 것을 힘겨워하셨다. 어머님과 걸을 때면 나는 평소 절반의 보폭으로 걸었다. 작은 주먹으로 허리를 콩콩 두드리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웠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쉽게 손 델 수도 없었다. 결혼 전 첫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에 남편이 내게 말하길, 어머님 허리가 많이 굽으셨다 했다. 마음이 넓은 분이신데 생활이란 것이 어머님을 그리 만들었다고. 작은 체구가 더 작아지셨다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닭을 키우며 3남매를 보살피신 어머님, 150센티를 조금 넘는 키는 닭의 사료포대의 무게만큼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머님의 첫인상은 밝았다.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로 다정하게 웃어주셨다. 굽은 허리에 얹혀있는 무게를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맑은 분이셨다.


17년의 결혼 생활중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생활을 한 것이 5여 년. 2015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쭉 같이 생활을 하셨다. 올초 북경으로 이사를 가야 했기에 어머님은 작년 말 김포에 있는 어머님 댁으로 돌아가셨다. 삶이란 강물처럼 흘러간다. 어머님과 나는 폭우로 넘쳐나 물줄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이내 곧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내왔다. 그러다 우리를 덮친 것이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였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다른 세상으로 옮겨놨다. 그나마 어머님의 허리를 유지해주던 운동이었다. 코로나로 운동은커녕 집안에만 홀로 계시다 보니 거미줄처럼 지탱하던 어머님의 허리 신경이 더 이상 숨 쉬기가 힘겨웠던 나보다.


검사를 받으시는 중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버님도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가셨더니 폐암이라 했다. 혹시, 설마. 아닐 거야. 중얼거리며 맘을 안정시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사는 어머님은 허리 협착으로 신경이 완전히 막힌 상태라 했다. 바로 날짜를 잡고 가능한 시술을 다 하기로 했다. 연세가 있으셔서 두세 번 하시기 힘드니 한 번에 끝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잘 부탁드린다고 애써 웃음을 꺼냈다.


시술 당일 결과는 매우 좋다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쉽게 마취에서 깨어나시지 못했다. 정오에 끝난 시술, 창 밖이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겨우 눈을 뜨셨다. 콩알만 해진 눈을 파르르 떠시며 난 보면 어머님 손을 꼭 잡아드리며, 다 잘되었으니 걱정 마시라고 전했다. 2주 정도면 퇴원하실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믿었다. 나는 평소 의지력이 매우 강한 어머님을 생각하며 회복과 재활에 박차를 가했다. 2주만 버텨보자. 나는 파이팅! 을 외치며 왕복 4시간 가까이 걸리는 병원을 매일 오가며 어머님을 밀고 당겼다. 다 잘 될 거라고...


'섬망'이란 외계(外界)에 대한 의식이 흐리고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며 헛소리나 잠꼬대, 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몹시 흥분했다가 불안해하기도 하고 비애(悲哀)나 고민에 빠지기도 하면서 마침내 마비를 일으키는 의식 장애.


여삼일 증세가 나아지셨는데 무언가 잘못되어 감이 느껴졌다. 이상한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잠꼬대가 심해지시고, 오늘이 몇 월 며칠 무슨 요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하셨다. 마취로 오는 일시적 현상 이리라 생각했지만 증세는 더 나빠졌다. '섬망'이란 것이 정말 무섭다고는 들었지만 이런 것인지 몰랐다. 어머님은 그날로부터 하루, 한 달, 일 년 길게는 십여 년을 오가시며 지난날로 도망치기 시작하셨다. 어머님이 '누구세요? 우리 며느리 어디 갔나요?'라고 내게 물어보시던 날. 내가 어머님을 몰아붙여서 이리되신 걸까라는 생각에 정처 없이 걸으며 울기만 했다. 잠시나마 돈 걱정을 했던 나 자신이 미웠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며, 나를 잡아먹는 온갖 생각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나도 나아짐이 없고 각종 수치들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의심되는 모든 검사들을 시작했다. 결과에 따라 큰 병원으로 옮기셔야 할지 아닐지 판단해야 할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의심되는 큰 질병들은 아니었고, 극한 스트레스와 영양 불균형 상태. 그래서 섬망 증상이 쉽게 호전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무엇이면 어떠하리 살아계신데, 잘 드시고 열심히 운동만 하면 된다니 다른 문제들은 걱정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긴 재활은 시작되었다.

'조교 오셨네, 오늘 할머니 땀 쪽 빼시겠어요. 허허허'

병원에서 내 별명은 '조교' 란다. 일주일에 2-3번은 나와 운동을 하시는데 그걸 본 간호사와 환자들이 지어주셨다. 손잡이를 잡고서도 서 계실 수 없었던 어머님이 이제는 한두 걸음은 걸어내신다. 이렇게 되는데 반년이 걸렸다. 어쩌면 도움 없이 걸으시는 게 어려운 일이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머님과 나는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나와 끌어안고 걷는다. 땀인지 콧물,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어머님 얼굴에 가득 흐른다. 닦아드리면 밝게 웃으시는 오늘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설 수 있다. 할 수 있다. 걸을 수 있어.' 어머님의 손과 다리가 덜덜 떨리지만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신다.

운동을 마치고 어머님 머리끝을 다듬어 드렸다. 언제부터 지저분해 보여 깎아달라 하고팠는데 말씀을 꺼낼 수가 없으셨단다.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만 조용한 병실에 가득했다.


"어머님, 다 다듬었어요."

"어머, 언니 머리 다듬으니 원래 이뻤지만 더 이쁘네요. 거참 며느리한테 별별 걸 다 시키셔."

건너 병상에 계신 환자분이 조용히 보고만 계시다 한마디 건넨다.

"나 보다 우리 며느리가 훨씬 이쁘지. 안 그요?"

"아고... 며느리 없는 난 서러워 죽겠네... 허허허."

"이쁘긴요, 저도 나이 먹은 아줌마인데요... 호호. 말씀들 감사합니다. 어머니. 이제 다시 운동 다녀오세요. 저 준비하고 이만 가볼게요. 주말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봬요."

집에 가려 한참 가방을 챙기다 보니 어머님이 안 올라가시고 옆에서 빤히 날 보고 계신 게 아닌가?

"저 갈 거예요. 왜 안 올라가시고요? 자자 얼른 운동 더 하세요. 물리치료 시간 끝나요."

"너 이제 가면 다음 주나 볼 테고, 곧 북경 갈 거 아니니? 너 갈 때까지 보다 올라갈 거야. 볼 수 있는 지금 맘껏 보련다. 나 운동 열심히 할게. 내년에 네 엄마랑 손잡고 북경에 가마. 소미야... 고맙다."


우리는 과거에 묶여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알아채기 어렵다. 그리고 내일에 저당 잡힌 오늘을 혹사시킨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작은 돌멩이가 알알이 놓여 나의 과거라는 선이 되었고, 현재가 앞으로 놓일 미래를 변화시킨다. 간혹 지금, 여기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말을 오늘만 위해 살라는 의미로 착각하기도 한다. 어제도 내일도 없이 오늘만을 위해 사는 하루살이처럼 모든 것을 오늘에 쏟아부으면 후회가 없을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면 내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처럼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나를 진정 즐겁게 하는가?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가? 미소 짓게 하고 한없이 슬프게 만드는가? 어머님이 내게 해주신 약속을 지키시겠다며 오늘 흘리신 땀방울들을 생각해본다. 무엇이 그보다 값질까.


'네, 어머님. 이렇게 다시 힘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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