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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NPO지원센터 May 26. 2021

✍42화 ♥ "반값등록금 운동"

[교육] 고등교육의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라



대학의 비민주적 운영 문제를 해결하라!



Q: 반값등록금 운동에 대해 알고 있나요? 

✍ 반값등록금 운동은 누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을까.


* 반값등록금 운동의 시작: 대학 등록금이 사회적 문제로 처음 대두된 것은 1989년이에요노태우 정권이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통해 등록금 책정 권한을 중앙 정부에서 개별 대학으로 이양한 것이죠그 결과 대학 등록금은 폭등했고 가계에서 부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심화되어갔어요이후 IMF 구제금융위기를 막 벗어나던 1999년 말 대학 등록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인하 요구가 커지게 되었죠. 


높아진 실업률로 대학생도 취업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대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요건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어요등록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던 시기 대학 진학률도 나란히 높아지면서 등록금은 일부 대학생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었죠전국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교를 넘어 정부를 대상으로 공동투쟁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2004년, 전국 대학생 교육대책위가 결성되었어요. 2006년 학생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8천여 명이 교육공동행동에 참여하였고, 2008년 대학생들과 학부모단체,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전국의 시민단체 540여 개가 함께 "등록금넷"을 결성해 등록금 문제를 알렸어요.




Q: 그 뒤로 반값등록금 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모든 변화에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이들의 품이 있다.


* 본격적인 운동의 시작:  반값등록금은 2006년 지방선거를 4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이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를 발표하면서 처음 등장했어요.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 공약으로 제시되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약 사실을 부인하며 2009년 5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를 도입했죠. 그러나 상환제는 원금의 3배까지 갚아야 하는 복리 이자로 설계되었으며, 5.7%의 높은 이자율이 책정되었어요. 2009년 한 해는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이후 등록금 인상은 계속되었어요. 결국 신입생만 울며 겨자 먹기로 상환제를 신청해야 했고, 대학생·학부모단체는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행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치게 되었어요.



* 반값등록금에 범국민적 여론이 형성되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에서의 패배를 경험한 한나라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위기감을 안고 ‘민생 정책 기조 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반값등록금' 카드를 다시 꺼냈어요. 그러나 한나라당이 말하는 반값등록금은 ‘소득 하위 50%에 대한 차등 장학금 지원 제도’와 함께 ‘B 학점 이상’으로 수혜 대상을 한정하는 형태였어요. 


5월 29일 보다 포괄적인 반값등록금을 촉구하는 대학생 1000여 명은 기존에 집회신고를 냈던 마로니에 공원 대신 광화문에서 긴급 시위를 진행했어요. 그 과정에서 경찰이 70여 명의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면서 전 국민의 분노가 쏟아지게 되었어요. 5월 29일을 계기로 매일 광화문에서 진행된 반값등록금 집회는 ‘날라리 선배부대’와 시민사회단체· 학부모 모임과 함께 한 ‘반값등록금 운동본부’를 통해 전 국민적 투쟁으로 확대되어갔어요.



* 마침내 구현된 반값등록금 정책!: SNS와 결합된 30대 날라리 선배들은 ‘대학생들과 함께 하자며’ 참여를 독려하고,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광장을 함께 열었어요. 그 결과 6월 10일에는 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 반값등록금을 요구하기 위해 광장을 가득 메웠죠. 대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시작해 이제는 전 국민적 투쟁이 된 ‘반값등록금 운동’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무상급식과 함께 복지 패러다임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어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반값등록금 정책협약’을 진행하고 당선 직후 서울시립대에서 반값등록금을 실시하면서 해당 정책을 현실화했죠. 2012년 최초로 '등록금 인하 사례'를 만들어낸 반값등록금 운동은 이후 ‘국가장학금 제도’로 확장, 발전되기도 했어요. 




Q: 그래서, 이 과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 이 운동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을까.


* 대학 등록금 문제를 민생경제 문제 전체로 확장시키다!: 2006년 8천여 명이 참여한 교육공동행동 성사를 시작으로 교육문제를 사회정치 여론화시키는 시도가 이어졌어요. 등록금 투쟁이 대학생들뿐 아니라교수교직원 등 교육주체들 간의 주요 사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거죠이런 인식의 확장은 대학 등록금 문제가 비단 교육 주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생경제 전체를 관류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조명해요.




✋ 잠깐, '반값등록금 운동'에 당신의 관심 한 줌이 필요해요.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합니다!: 대학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둬들이는 입학금, 등록금, 실험실습비, 졸업준비금 등이 별다른 기준 없이 임의로 책정된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대학 교육비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또한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대학 등록금을 인하시키지 않고, 정부 예산 일부를 받아 보상하려는 시도는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근본적 부담을 줄이는 데에 턱 없이 부족하죠. 앞으로 우리 사회는 ‘교육비에 대한 정부 책임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불투명하게 산정되는 등록금과 대학의 비민주적 운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해요.




⌛ 끝은 또 다른 시작

대학에 입학해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대학을 졸업하고 '학자금 빚에 허덕이는 청춘이 아닌 빛을 낼 수 있는 청춘'을 위해서는 대학 운영에서 투명성·민주성·책임성이 실현되어야 하죠. 이번 기회에 '반값등록금 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고 이 변화에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앞으로 우리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보아요!

그럼 다시 또 만나요! 안녕!





※ 위 내용은 서울시NPO지원센터 변화사례 아카이브 내용을 축약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해당 글 더 자세히 보러 가기)

※ 2017년부터 모아 온 변화사례 리스트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변화사례 아카이브)

※ 인스타그램에서도 더 다양한 변화사레 리스트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변화사례 아카이브 인스타그램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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