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무게
심판의 시작
어느 순간부터 세르바부스는 불면의 밤을 세지 않게 되었다. 불면은 증상이 아닌 상태가 되었고, 상태는 곧 일상이 되었다. 불면이 찾아온 날이면 눈을 감아도 생각이 닫히지 않았고, 닫히지 않는 생각은 더 이상 질문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그 생각들은 끝난 판단을 다시 확인하는 데 이르렀다. 무엇이 옳았는지, 무엇이 필요했는지, 어느 선택이 불가피했는지. 이는 불면전에는 의식하지 않았던, 결과에 대한 현재의 판단이었다. 새로운 답을 찾는 것이 아닌 이미 내려진 결론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지를 점검하게 되었다. 이 점검은 사유보다는 확인이었다.
반복되는 점검의 하루가 쌓아갔다 그러자 어느덧 현실이 눈에 보였다. 보고는 그가 예상한, 정해진 순서로 올라왔고 제안은 그가 떠올린 결론과 어긋나지 않았다. 사안들은 그의 말이 닿기 전부터 이미 결정된 것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황궁의 하루는 루카르를 중심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간다. 언제나 그랬듯이 루카르는 정확했다.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구조적으로 옳은 선택만을 가져왔다. 선택은 이미 끝나 있었고 그가 할 일은 그저 루카르의 선택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앞선 판단이 끝난 뒤, 루카르의 유지가 하루를 채우고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가 처음 느낀 것은 반감이 아닌 이질감이었다. 루카르의 제안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제안을 원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남은 것은 그 선택이, 결정이 자신의 삶을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하루를 채우고, 하루를 채우고, 하루를 채우고, 그렇게 하루들을 견디다 보니 지나치게 안정적인 현재의 상황은 흔들릴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황제가 아닌 세르바부스로서 흔들려야 할 이유마저 정교하게 사라지는, 이질감이 스며드는 안정을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삶이 아닌, 자리만을 견디는 상태'로 인지하게 되었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 채 정해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해진 시간에 회의실의 문이 열렸고 신하들은 늘 하던 자리에 앉았다. 황제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모두가 자리를 잡은 뒤였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 정적이 흘렀다. 루카르는 그 짧은 정적이 지나가자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문제로 될 것이 없다는 듯 그렇게 회의를 진행했다. 안건은 순서대로 올라왔고, 판단은 지연되지 않았다. 누군가 황제가 없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려 하자 루카르는 즉시 다음 절차를 불러냈다. 원래라면 황제의 판단을 기다렸어야 할 사안이었지만 기다림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정리된 구조가 있었고 그 구조는 황제의 부재를 전제로 설계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그 어느 누구의, 어떤 저항도 없었다. 그래서 루카르는 더욱 망설이지 않았고 망설임이 생기기 전에 재빨리 다음 절차를 불러냈다. 그는 순서대로 안건을 처리한 후 넘어갔던 안건의 결론만을 다시 확인하고, 불필요한 문장을 지웠다. 회의는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고 질서가 무너졌다는 신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그 지나치게 매끄러운 상황은 오로지 루카르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회의실이 비워진 뒤, 그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제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 공백은 끝까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누구도 그것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루카르는 모두가 떠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아 있는 황제의 일정들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했다. 황제가 개입해야 할 사안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사안을 나누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그 기준은 그의 손에 있었다. 그는 계산의 방향을 틀어 황제를 찾아 나섰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될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황제가 자주 발걸음을 멈추던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긴 회랑, 세르바부스는 그곳에 있었다. 루카르는 잠시 거리를 두고 세르바부스를 바라보다. 그리고 계산이 끝난 듯 다가갔다
"폐하"
세르바부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알고 있다.”
보고를 요구하지도, 상황을 묻지도 않는 짧은 답에 루카르는 잠시 말을 골랐다. 그 침묵은 정리라기보다는 설명의 순서를 찾는 시간에 가까웠다.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렇겠지."
"아닙니다. 폐하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 남아있습니다."
"내가 없어도 되지 않는가?"
"구조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준을"
"반역인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
“... 알겠습니다.”
더 나눌 수 있는 말이 없었기에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평온한 세르바부스와 달리 루카르는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빠르게 황궁의 구조를 계산해 나갔다. 이날 이후 세르바부스는 의도적으로 말없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반나절, 혹은 하루. 그 공백은 점점 길어졌지만, 황궁은 멈추지 않았다. 세르바부스가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보고는 루카르에게 모였고 결정은 그의 손을 거쳐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세르바부스는 그 과정을 지켜보지도 않았고 고려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확인 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자리를 비움에 따라 회의의 절차와 안건이 줄어들었고 오히려 결론에 더 빨리 도달했다. 문서는 간결해졌고 불필요한 논의는 사라졌다.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했을 이 상황을 짐작했겠지만 그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황제에게 보여지는 황궁이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할 여지가 없는 사안들을 보았기에 자신이 없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황궁 안에서 생겨나는 불만의 여지를 잠재우는 것은 권력의 황제였다. 그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진 불만을 품고 있던 사안들이 많았다. 권력의 힘이 있기에 선택이 틀리지 않게 된 것이지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불만이 쌓여있었다. 황제가 없는 처음 한두 번의 회의에서는 루카르가 쌓아온 이미지가 있었기에 별 탈이 없이 잘 끝났으나 황제의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루카르가 내리는 결정, 결론에는 사람들의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렇게 해소되지 않는 불만은 점점 더 쌓여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황제의 부재 속에서 진행되는 회의가 거듭될수록 문서에 적히지 않던 감정들은 사람들의 표정에 고스란히 남았다. 결정은 빠르되 납득은 늦었고, 결론은 명확하되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의문은 왜 이 결론이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이 결론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루카르는 그 흐름을 보았으나 그것을 문제로 분류하지 않았다. 아직은 관리 가능한 단계였고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 계산의 영역이었다.
이 복잡한 상황의 연속이 터지지 않은 채 쌓여가던 어느 날, 황궁 앞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어떤 글레이먼이 화려한 언변으로 경비병을 꼬셔 황제를 찾겠다며 입구를 서성이는 일이었다. 소식은 곧 루카르에게도 전달되었으나 그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고 신하들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맡겨두었다. 그의 계산에서는 늘 그렇듯 글레이먼은 곧 잠잠해질 것이고 애초에 신하들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계산을 틀렸고 자신의 계산이 틀렸다는 사실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졌던 그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글레이먼은 화려한 언변으로 황궁에 입궁했고 예상보다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뒤늦게 올라온 보고에는 글레이먼이 자신의 바람대로 황제와 대면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카일리스.
혈통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 무렵, 세르바부스는 황제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시간을 처음으로 온전히 사용하고 있었다. 그 시간은 도피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고, 그 삶을 부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황제가 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없었다면 지켜지지 않았을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고, 힘을 얻기 위해서는 자리에 올라야 했고 권력이 필요했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판단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는 루카르의 손이 깊게 닿아 있었다. 루카르의 계산은 언제나 정확했다. 사람보다 구조를 믿었고, 감정보다 순서를 신뢰했다. 세르바부스는 그 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루카르였다. 그에게 루카르는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지 않도록, 황제가 되고 권력을 쥘 수 있도록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존재였다.
루카르는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함께 황궁을 일관된 논리위에 올려놓은 사람이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권력,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된 구조들은 루카르 덕분에 명확한 순서로 나열된다. 그러나 황제가 되어 권력을 쥐고서 바라본 황궁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삶이 처음의 목표와 닮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의 다짐은 단순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나버린 자유를 다시는 잃지 않게 만드는 것, 나만의 자유가 아닌 황궁 사람들의 자유를 찾고자 하는 것, 잘못된 규율과 규칙을 바로잡아 누군가의 공포나 두려움에 의해 삶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다짐이 겹겹이 쌓여갈수록 모든 원흉이 세습으로 돌아가는 황궁의 구조라 생각했고 그것을 막고자 했다. 그래서 더더욱 혈통은 없으나 능력이 출중한 루카르 같은 인재를 기용한 것이다. 결국 그를 황제로 만든 것은 야망이 아니라, 상실이었다.
그는 상실에서 시작되어 완성된 황궁의 구조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불면이 찾아오고, 황제가 아닌 세르바부스로 황궁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는 처음의 다짐과 지금의 현실 사이에 놓인 간극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그는 자유를 지키고 있다기보다 확고한 권력을 이용해 자유를 분배하고, 설계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루카르의 계산에서 시작되었기에 자유는 유지되고 있었으나, 자유를 살고 있는 사람, 정작 세르바부스라는 사람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어쩌면 칼레온의 핏줄로 황제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임과 지속, 규율로 시작되는 유지의 논리는 그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반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모른척하고 있던 어머니의 핏줄은 불면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가문에서부터 유별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일을 하고 싶어 했으나 왕의 딸이라는 이유로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만으로 모든 어른들이 고개를 숙이는 것 또한 이해하지 못했고, 일을 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편한 삶을 사는 것에 늘 의문을 품었다. 다른 귀족가문의 사람들은 그런 의문이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태어난 위치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아마 왕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 질문자체가 무례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남들이 보기에만 좋은 허울이었으며 온실 속의 화초여야만 했다.
그녀가 황궁에 이르자 그 모든 불편함은 더더욱 모순으로 와닿게 되었다. 테라노바에서 그나마 누리고 있던 자유마저 황궁에서는 누릴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식을 낳고 유산하고, 자식을 낳고 자신보다 먼저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자 자신이 느끼던 모순은 확신이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낳았던 세르바부스만큼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모순된 세상이 아닌 일관되고 조화로운 삶, 세상을 살기 바랬다. 그러한 핏줄이, 의지가 세르바부스 안에서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지금 세르바부스는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황궁과 대륙에는 문제로 기록될 만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보았다. 황제가 없어도 루카르에 의해 잘 돌아가는 황궁을 보았다. 그리고 과거를 돌이켜보니 의문투성이의 일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된 자신을 발견했다. 권력에 의한 구조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그것은 분명 성공의 증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과 동시에 자신의 다짐이, 자신의 자리가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칼레온과 엘렉티오의 조우
황궁 안쪽,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회랑. 세르바부스는 회의를 참석하지 않을 때면 이곳을 찾았다. 이곳은 황제로서가 아닌 세르바부스로서 머무르기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이 삶을 견디는 방식으로 지속하고 싶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설 참이었다. 그때, 발소리 보단 바람이 다가온다는 기척과 함께 낯설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아직 그대로군요, 황제폐하."
그 목소리는 오래 비워두었던 자리처럼 갑작스럽지 않게 다가왔다. 세르바부스는 고개만 슬쩍 뒤돌아 바라본 뒤 물었다.
"카일리스인가?"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폐하"
“여긴 네가 찾을 이유가 없는 곳이다.”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세르바부스는 얕은 웃음을 내비쳤다.
"용건만 말하지"
“자리를 비우신다고 들었습니다.”
“소문이 돌 정도로 오래 비웠나.”
“소문은 늘 늦게 옵니다. 체감이 이미 끝난 뒤에야 따라오니까요.”
세르바부스는 시선을 돌려 회랑 끝, 황궁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황제가 없어도 돌아가는 구조만이 남아있었다. 모두 구조의 끝에 놓여 있는 듯했다.
“그래서 폐하께서 자리를 비운 황궁이 어떤지 보러 왔습니다.”
"루카르가 알아서 잘 처리하고 있겠지"
"그럴 겁니다. 적어도 문서 위에서는요."
카일리스는 어느새 질문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황궁은 지금도 잘 돌아갑니다. 결정은 빠르고, 절차는 줄었고, 보고는 매끄럽습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성과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황궁에서는 결정이 내려진 뒤에 아무도 안심하지 않습니다.”
세르바부스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변화는 의식의 반응보다 빨랐다.
"애초에 루카르 대신관이 제대로 해결했다면 소문은 나지 않았을 겁니다. 소문의 시작은 황궁에 쌓여가는 불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네는 내가 자네를 숙청하려 했는 것을 잊어버렸는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변치 않으셨다면 저는 방금 전에 죽은 목숨이겠지요."
세르바부스는 어이없고 당돌한 카일리스의 모습에 호탕한 웃음을 내비쳤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원하던 황궁의 모습을 카일리스라면 완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그랬겠지. 목숨 이야기를 그렇게 담담히 하는군.”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니 미련이 없습니다. 저는 그때 저를 살려주셨을 때 폐하께서 "여긴 네가 설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떠났고.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황궁에 자네가 서야 할 자리가 있는가?"
"어떤 자리든 폐하께서 만들어주신다면 보탬이 되겠습니다. 다만 저는 제 자리보다 폐하께서 아직 그 자리에 계신지를 먼저 확인하고 싶습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확신하기엔 아직 단서가 부족합니다. 그러니 폐하의 옆에서, 황궁 안에서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래야겠지. 그렇담 황제가 아닌 세르바부스를, 황궁이 아닌 대륙을 확인해 볼 수 있겠나?"
카일리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황제가 달라졌다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황제를 대면한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그가 달라졌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며, 확신이 서지 않았다면 이렇게 당돌하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황제의 물음은 뜻밖이었다. 그와 처음으로 하는 독대, 황제는 표면적으로 보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자신이 여태 가늠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생각 이상의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자신이 미래를 생각하며 좀 더 카일리스 다운 삶을 선택한 것처럼 그도 황제가 아닌 세르바부스 다운 삶을 선택하려 한다는 것을.
"힘이 닿는데 까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만 반듯한 자리는 줄 수 없네. 루카르를 넘어설 자리도 없으니. 자네가 확인을 위해 돌아온다면 나는 환영하겠지만 루카르는 반대하겠지. 자네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겠나?"
"이미 소문과 함께 황궁의 불만은 쌓여있고 그 불만은 루카르 대신관을 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황궁에서 저를 반기는 이 가 얼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제가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입니다. 제가 설 자리는 그저, 다른 평범한 신하들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힘이 닿는데 까지 돕는 일은 폐하뿐 아니라, 루카르 대신관, 그리고 모든 황궁과 대륙의 사람들에게 향할 것입니다."
세르바부스는 헛웃음과 호탕함이 합쳐진 웃음을 내비쳤다.
"자네와 나의 대화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확인한 것들은 내가 아닌 대륙의 모두에게 향해도 상관이 없으니, 포르투나 엘렉티오를 잘 부탁하겠네."
카일리스는 잠시 세르바부스를 보았다. 황제가 아닌 얼굴, 지켜야 할 자리를 이미 내려놓은 사람의 눈, 목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카일리스의 어깨를 두드린 후 떠나려던 세르바부스는 발걸음을 멈춰 마지막 말을 전달했다.
"자네와의 마지막 대화가 세르바부스와 카일리스의 대화라서 다행이군."
이 말을 끝으로 떠나는 세르바부스에게 카일리스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볍게 말하는 세르바부스, 황제의 말은 가벼웠으나 그 가벼움 안에 담긴 무게와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무게를 짊어진 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황궁의 변화
황제에게 보고되었어야 할 회의는 점점 더 루카르의 손에서 끝나는 날이 많이 졌고 절차는 이전보다 더 간결해졌다. 그러나 문서 밖에 남은 것들은 오히려 무거웠다. 몇몇은 회의실을 나서면서도 끝내 말을 삼키지 못한 얼굴이었다. 루카르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회의 밖에선 반발심이 쌓여만 갔다. 이 시기에 카일리스가 등장함으로써 더 어수선해졌던 황궁은 오히려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를 되찾아갔다. 황궁의 구조가 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절차와 규율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결정 또한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그 결정이 도달하는 과정이었다. 카일리스는 황제의 부재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 다만 결정 이후 남겨진 틈을 정리했고, 보고에 담기지 않는 사람들의 감정을 정리해 주고 온전하게 흐르게 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불만을 말해도 된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불만은 카일리스에 의해 다스려질 수 있을 뿐,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 선명함만큼, 루카르의 피로는 빠르게 쌓여갔다.
루카르는 그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인식했다. 구조는 여전히 완벽했으나, 구조를 떠받치는 사람들의 숨이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는 불만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불만이 더 이상 흩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보았다. 그래서 자신이 맡아야 할 모든 일을 카일리스에게 맡기고서는 불만이 쌓여 자신에게 닿지 않게끔 사람들을 쥐 잡듯 잡았다. 마치 권력의 황제를 모방하듯이. 루카르가 그런 모습을 보이던 초창기에는 그가 비밀리의 만든 모임의 사람들만큼은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나 그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마저 뒤돌아서기 시작했다.
책임의 순간
황궁 가장 깊숙한 기록실. 창은 없었고, 등불만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언제나 루카르의 자리였고 그만이 머무르는 공간이었다. 문서의 끝을 정리하던 루카르의 손이 멈췄다. 다가오는 발소리만으로 그는 이미 누군지 알고 있었다.
“여긴 폐하께서 올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폐하.”
세르바부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재 한가운데 서서, 쌓인 문서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보고서, 결재본, 수정 지시, 그가 자리를 비운 시간에도 황궁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잘 돌아가고 있군.”
“예, 폐하 덕분입니다."
세르바부스는 문서 하나를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자신의 서명이 없는 결재였다.
“그렇다면 이건 내가 없어서 가능했던 일인가.”
“구조는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계셨기에 저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세르바부스 루카르의 말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마치 본론인양 말을 이었다.
“카일리스는 지금 자네가 감당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얼마나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는 구조를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봅니다.”
루카르는 말을 끝낸 뒤에야 자신이 너무 빨리, 잘못 대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빠르게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실수로 계산에서 벗어난 말을 내뱉었다.
“폐하, 지금의 구조는 폐하께서 자리만 지킨다면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결정은 언제나 끝나 있고 절차는 완벽합니다. 그러나 카일리스는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자네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런 방식은 구조가 될 수 없고 계산조차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변수가 생길 것이고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황궁은 변수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변수를 들이면 구조가 무너지지 않나.”
"폐하께서 자리를 비운 것이 변수이기에, 지금의 황궁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 변수를 제거하는 데에만 그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네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폐하의 자리입니다. 정확히는 폐하가 그 자리에 있다는 감각을 대신 만드는 일입니다.”
세르바부스가 조용히 슬픔을 담은 채 공허한 하늘, 막혀있는 벽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른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황궁에, 나의 곁에 둔 것인데...”
“그래서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루카르는 말을 끊었지만 타이밍이 적절하게 끊은 것이 아닌 듯 말했다. 잠깐의 정적 후 세르바부스가 조금은 다짐한 듯 물었다.
“카일리스를 내치고 싶은가.”
“아닙니다. 그를 내치면 불만은 다시 흩어지고, 모이고를 반복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향하던 불만이 폐하를 향하게 됩니다."
“그럼 자네는 불만이 또렷해지는 걸 원하나.”
"불만이 또렷해지는 걸 원한다기보다 불만이 또렷해짐에 따라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가 명확해지는 것을 원합니다. 지금의 문제는 제가 잘못한 것도, 폐하께서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만들어 놓았던 구조가 완벽한 것이고,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 우리가 함께 만든 구조였고 지금의 황궁이지."
세르바부스는 다짐하는 모습을 보였고 루카르는 그의 다짐이 다시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카일리스가 사람을 본다고 했나? 그렇다면 나는 자네가 감당하는 것을 얼마나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루카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고 자신의 이가 부서질 듯 쌔게 짓눌렀다. 그의 계산에서는 절대 나와서는 안될 말이었다.
"루카르. 오늘은 자네와 세르바부스로서 대화를 나누고 싶네. 헌 책방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처럼 말이야."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감히 폐하께..."
"루카르, 나를 세르바부스라 불러주게."
"안됩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 내가 어찌 자네의 구조를 깰 수 있겠는가?"
기록실 안에 찾아온 잠시간의 정적은 무거웠다. 등불은 여전히 같은 밝기로 타고 있었지만, 빛이 닿는 방식이 달라진 듯했다. 루카르는 그 빛이 문서 위가 아니라,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지만 아무런 계산을 할 수가 없었기에 아무런 말도, 대처도 할 수가 없었다.
“자네는 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계산을 먼저 했어. 가능한 경우와 불가능한 경우를 나누고, 위험을 최소화하고, 가장 적은 희생으로 가장 오래 유지되는 답을 아주 잘 골랐어. 그리고 언제나 계산은 정확했지."
세르바부스의 목소리는 명확하고 단정했다.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 어조였다. 그게 오히려 루카르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자네를 신뢰한 건 정확해서가 아닐세. 내가 자네를 신뢰한 건, 내가 꿈꾸던 자유를 함께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어서였지."
루카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뢰, 믿음이라는 단어는 그의 계산에 적히지 않는다. 구조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세르바부스는 말을 멈추고 루카르를 지긋이 바라봤다. 멈춤 자체가 질문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받아들인 루카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폐하, 저는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황궁은 무너지지 않았고, 질서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세르바부스는 멋쩍은 미소와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래. 자네답군. 그래서 묻는 걸세. 자네는 내가 왜 필요한 것이지, 아니 필요하기는 한가?"
루카르는 들어서는 안 되는 최악의 말을 들었다. 마치 자신이 세르바부스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것 같았고, 들키지 않았더라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세르바부스가 필요했다. 신격화될 황제 세르바부스를 꿈꿨다. 그걸 실현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이며, 꿈이며, 목표이며, 삶이었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은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다만,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할 집착이었다.
세르바부스는 루카르의 침묵을 기다렸다. 마치 침묵이 자연스러운 일상인 듯이, 과거 헌책방에서의 감상에 젖은 듯이 기록실의 문서 더미 사이를 거닐며 구경했다. 침묵을 기다리며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감상에 빠졌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이 문서들 말이야. 하나도 틀린 게 없군. 루카르. 역시 대단해."
루카르는 그의 모습에 동화된 듯 자신이 계산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행복했다.
"자네가 잘못한 건 없어. 나도 그렇고. 자유를 위해, 질서를 위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지. 그래, 나는 늘 선택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제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한 번도 나를 선택한 적이 없더군.”
루카르는 멍해지는 감각과 함께 직감하고 있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내뱉었다.
"세르바부스..."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다음의 내가,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그래 나는 언젠가부터 나를 위해 살고 있지 않았네. 그 삶마저도 원하던 목표와 다른 결론에 도달했지. 루카르, 자네와는 다르게 말이야. 자네의 계산에는 없을 얘기를 들려주겠네. 사람이 언제 죽음을 선택하는지 아는가?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아닐세. 느끼고자 하면 언제든 느낄 수 있으니 말이야."
잠시간의 침묵 속에 세르바부스는 초연한 표정과 호흡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지의 행복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은, 바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네, 지금의 나처럼."
세르바부스는 어느새 허리춤에 차고 왔던 칼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 숨이 멈추는 순간 그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린 상태였고 표정은 고통과 희열, 해방감이 함께 있었다.
세상에는 틀리지 않은 선택의 결과라도,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아스테라는 세르바부스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은 잘못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기적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였고 그녀는 책임을 졌다. 세르바부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의 희생을 통해 의지를 품고 세상에 실현시키려던 그가 실현시키지 못한 세상을 보고 책임을 지기 위한 죽음을 선택했다. 그가 만든 질서가 잘못됐다고 여기는 이는 대륙 어디에도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그가 만든 권력에 의한 자유에 만족하고 있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로지 그 책임의 무게를 자기 혼자 알고 있다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겼다.
심판의 순간
황궁은 고요했다. 소란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소문을 만들었다. 결정은 늦지 않았고, 보고는 막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을 끝내고 나왔을 때 끝냈다는 감각만 남았을 뿐, 누가 끝냈는지가 남지 않았다. 황제는 그 자리에 없었으나 결정은 계속해서 내려졌다. 의문이 제기될 것 같을 때면 루카르의 “폐하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되었고 황궁 사람들은 그 부재를 문제 삼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문서 위의 황제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고, 서명 또한 멈추지 않았다. 다만 결재의 속도가 달라졌다. 카일리스의 도움이기는 했으나 머뭇거림과 수정이 줄어들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안정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효율이라 불렀다. 루카르는 단 한 번도 황제의 자리를 대신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나 황제의 모든 일을 대신했다. 그는 보고가 쌓이기 전에 처리했고, 질문이 쌓이기 전에 결론을 내렸다. 아직 아무도, 황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이 고요가 오래 유지되기에는 황제가 전혀 보이지 않는 황궁이 너무나도 깔끔했기에 모두가 어렴풋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있었다.
남들에게 말하지를 않았을 뿐, 이 이상함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의문을 키워간 것은 카일리스였다. 그는 황제가 보이지 않는 황궁이 정돈될수록 불편해졌다. 질서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질서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과 태도들이 그를 붙잡았다. 이전의 황궁은 느렸지만 이유가 있었고, 지금의 황궁은 빠르지만 근거가 남지 않았다. 회의는 끝났고, 문서는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났다는 감각만 남았을 뿐, 누가 어떤 판단을 거쳤는지는 흐려져 있었다. 자신이 구조적으로 황궁이 매끄럽게 흘러가게 만든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이 의아함을 가지고 여태 자신이 확인한 황궁이 어떤지, 대륙이 어떤지에 대해 황제에게 보고를 하고 싶었지만 루카르 대신관의 말을 제외하곤 그 어디서도 황제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카일리스는 앞으로의 목표를 위해 라온델, 세바스티안과 만남을 가졌고, 황궁의 상황에 대한 의문은 빠질 수 없는 주제였다. 유일한 단서가 루카르였기에 그들은 알베르트에게 미행을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베르트는 루카르의 집 지하, 은폐된 공간에서 세르바부스 황제의 시신으로 추측되는 미라를 발견했다. 그 공간에는 그 외에도 사람을 살리는 흑마술, 생명을 붙잡기 위한 기록과 실패한 흔적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세르바부스 황제에 대한 무수히 많은 내용, 기록이 광기에 가깝게 담긴 문서들이 즐비했다.
루카르는 황제가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빠르게 신임을 잃어 바닥이 난 반면, 카일리스는 황제 이상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신에 대한 확인 절차가 끝난 후, 루카르의 심문 절차까지 빠르게 진행되었다. 루카르는 황제의 죽음에 대한 어떤 물음에도 연신 “폐하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라는 말뿐이었다. 심지어 황제의 시신을 앞에 두고도 황제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판 키워드- 책임 수용, 과거 청산, 결과가 드러나다.
과거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세르바부스는 스스로 책임을 졌고
루카르는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저 어떤 선택을 하고 쌓아왔는지에 따라
그에 맞는 결과에 도달하게 됐을 뿐이다.
카일리스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