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허락된 황자
황자의 어린 시절
칼레온 가문이 황권을 잡은 뒤, 능력을 토대로 황실의 핏줄을 세속 하기 위해 황자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받았다. 그래서 황자들은 굉장히 어린 나이부터 법, 역사, 궁정 예법, 정치학, 군사학, 철학 등 다양한 수업은 기본이고 황자 업무까지 주어졌다. 그런데 온종일 빡빡하게 채워진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이 세습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황자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세르바부스였다.
세르바부스는 기존의 황자들과 달리 굉장히 어린 나이부터 떠맡아야 할 황자 업무를 보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이 자유는 황후 아스테라가 필사적으로 투쟁해 얻어낸 결과로 기존 황자들처럼 빡빡한 수업은 똑같이 소화해야 했으나 열네 살까지 황자 업무를 봐야 할 저녁만큼은 자유가 허락된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곤 자유 시간임에도 환경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많지가 않은 점이다. 이전의 황자들에게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던 만큼 황궁에는 어린아이가 놀거리를 쉽사리 찾아볼 수도, 친구를 사귈 수도 없는 환경에 놓였다. 그래서 황자의 유일한 친구는 엄마 아스테라였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투쟁을 위해 수많은 서적을 읽던 엄마를 보면서 자라서인지 태생이 그러한 것인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책 읽기가 되었다. 만약 엄마를 제외한다면 책이 유일한 친구가 되었을 것처럼 좋아했다. 그중에서 특히 수업시간에 알려주지 않아서 배울 수 없었던 고대 기록, 포르투나 엘렉티오 이전의 혼란기부터 알렉티오가 건국과 함께 이뤄낸 자유의 대륙을 완성한 이야기들을 동화를 보듯이 좋아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각종 질병에서 파생되어 다가오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시기, 죽음의 고비인 열 살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죽음을 피해 열 살을 넘어설 무렵 황자는 황궁의 역사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질문을 엄마에게 꺼냈다.
"어마마마, 왜 엘렉티오의 후손들은 황궁에서 사라진 겁니까? 자유를 완성한 혈통이라면 황권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여기 황궁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칼레온가문이 추구하는 역사와는 다를 엘렉티오의 이야기는 황자수업의 내용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을 것을 아스테라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르바부스가 자신의 핏줄임과 동시에 칼레온가문의 핏줄이기도 했기에 먼저 언질을 주지 않았었다. 아마도 먼저 이러한 질문을 해주길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엘렉티오의 가문은 권력을 지키려 남지 않았단다. 그들이 남긴 건 포르투나 엘렉티오, 대륙의 자유였고 황궁은 대륙의 자유를 관리하기 위해 희생을 자처했지. 그래서 권력을 넘겨줬는지도 모르겠구나."
기다렸다는 듯이 답을 했으나 아스테라또한 어려서부터 왕궁을 떠나 황궁으로와 억압된 풍족만을 누리며 지냈기다. 그렇기에 평민의 삶, 자유의 대륙, 그리고 엘렉티오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엄마의 말에 황자의 머리에선 순간의 생각이 스쳤고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럼 황궁은 대륙의 자유를 위해 자유를 품은 곳이 아니라, 자유가 억압된 곳인가요?”
황후는 잠시 황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와 같은 궁금증과 생각을 품은 아이'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렇게 물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감사하는구나.”
그렇게 황자의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고 둘의 대화가 잠시간 더 이어지면서 황후는 더욱더 확신을 가지고 다짐하게 되었다.
'세르바부스의 궁금증은 내가 어릴 때 겪었던 궁금증과 별반 다르지 않아. 이 궁금증을 풀려면 억압된 황궁에만 머물러서는 안 돼. 나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자유의 포르투나 엘렉티오를 직접 경험하게 해야 해. 그러기 위해선 황궁도 왕궁도 아닌 그 밖을 직접 경험해 보는 수밖에... 사랑하는 아들 세르바부스를 위해서라면 나는 언제든, 나를 버릴 준비가 되었어. 세르바부스가 황궁 안의 자유가 아닌 진짜 자유를 경험할 수 있게 내가 투쟁해야만 해.'
황후는 황자를 아무도 모르게 황궁 밖 시장과 대륙 속으로 내보내겠다는 무모하면서도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황자의 저녁시간은 더 이상 서재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매일 이어지던 수업에는 쉬는 날이 생겨났다. 황후의 투쟁으로 만들어낸 황자의 시간은 은밀하게 계획되었다. 그렇게 회색 망토를 걸친 황자는 처음으로 황궁 밖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황궁 밖의 세계에는 책에서 보지 못한 색과 냄새, 소리로 가득했다. 자유로운 환경 속의 아이들의 웃음, 상인의 흥정, 항구에서 들려오는 노래 등 온몸의 감각으로 세상이 느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역사는 눈으로 읽는 종이에 묶여있지 않고 숨 쉬며 살아 있다.'
황궁 밖의 만남
세르바부스가 황궁 밖의 생활을 거듭하던 어느 날 시장의 헌 책방에서 어마마마에게 들었던 것과는 다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엘렉티오의 가문이 왜 황궁에 없는지가 적혀있었다.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자 종이가 손끝에 달라붙은 듯 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췄다. 왜 황궁에는 자유가 없는지를 황궁 밖에 적힌 역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모든 게 이해가 됐다. 다만 아직 사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기에 이 헌 책방의 책을 다 읽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방문하던 도중 갈 때마다 책방에 있던, 또래로 보이는 한 소년이 눈에 띄게 됐다. 역사적 사실을 알아내기에도 빠듯했던 세르바부스는 뭔가에 홀린 듯 소년의 혼잣말에 이끌려 근처에 다가갔고 혼잣말을 엿듣게 됐다. 황궁 교관들의 말이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면 소년의 혼잣말은 힘든 삶에 쓸린 소리였다. 곡물세 장부를 훑던 소년이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이어갔다.
"... 창고에 곡물이 남는 게 아니라 장부 문구가 변한 걸 반영하지 못했군. 법은 글자로 오고 시장은 숨으로 오니 문제가 생기네"
세르바부스는 소년의 말이 의아하지만 직감적으로 신뢰가 가서 물었다.
"너는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소년은 귀찮지만 세르바부스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답해주었다.
“나는 책 대신 장부로 배우거든. 책은 거짓말을 해도 장부는 거짓말을 못 해. 하루라도 늦으면 배가 굶으니까.”
역사적 사실의 충격으로 답답했던 세르바부스는 소년의 말을 듣자 왠지 황궁의 교관과 책도 알려주지 않던, 그리고 어마마마도 모르고 있던 진실을 알 것만 같아서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나는 역사로 배우고 있는데 언제나 완성된 이야기만을 말해. 그런데 맞는 건지를 모르겠어."
소년은 보던 장부를 다시 훑은 후 장부를 들고는 말했다.
“역사는 보통 나중에 완성되잖아. 여긴 지금이야. 이건 지금의 장부고. 오늘 항구에 늦은 곡물선 두 척이 도착했고, 장부 문구는 지난달 바뀌었는데 창고에 적는 절차는 그걸 못 따라가. 그래서 남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역사를 모르겠다는 건... 지금이 아닌 나중에 완성된 거짓을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인가? 그래, 지금 이 장부가 남는 거라고 잘못 기록되는 것과 같겠네.”
세르바부스는 소년이 배려로 쉽게 말해준 것이 무색할 만큼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역사의 기록, 법의 문장과 시장, 사람의 숨이 따로 움직인다는 뜻인가?"
소년은 귀엽게 바라봤던 세르바부스의 물음에 다소 놀랐으나 티는 내지 않았다.
“응. 문장이 앞서면 현장이 헐떡이고, 숨이 앞서면 문장이 헛소리가 돼. 둘이 같은 속도로 가야 틈이 안 벌어져. 역사의 기록이 같은 속도로 흐른 것이 아니라면 헛소리라는 거지."
세르바부스는 생각에 숨이 트이듯 혼잣말을 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 속도를 맞추는 게 엘렉티오가 만든 자율이라면... '나의 가문' 칼레온이 만든 것은 속도를 통제하는 황궁..."
소년은 뭔가 기특하다는 듯이 세르바부스를 바라보곤 말을 이었다.
“황궁은 그 자율을 관리한다는 이름으로 자유 없는 황궁으로 스스로를 붙들어 묶었지. 웃긴 거 알아? 포르투나에선 평민이 더 자유야. 일도 스스로 고르고, 여자가 장부를 보는 집도 많아. 근데 귀족 이상은? 의례와 세속에 묶여 있어. 시장에 들르는 왕궁 사람만 봐도 참 우습다니까?"
세르바부스는 숨을 잠시 고른 후 말했다.
“내가 봐오던 책에는 포르투나 엘렉티오에 대해 자유의 대륙 완성만 굵게 남아 있었어. 하지만 황궁과 귀족은 더 억압된 삶을 살고, 현장은 오히려 자유를 실천하다니... 이런 역설은 흐릿하게 처리돼. 아니 찾아볼 수도 없었어!”
소년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참 고지식한 책들만 모아봤나 봐. 근래에 이곳에는 자주 오더니. 내가 이 헌 책방을 오는 이유는 속도가 다른 내용들은 걸러내기 때문이야. 역사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틀린 장부는 수정된 장부와 함께 기록될 거거든. 그게 내 일이야. 그러니 안심하고 마음껏 찾아봐. 나는 루카르. 너는?"
낡은 장부를 꿰뚫듯 읽어내는 눈빛, 빠르게 계산하는 소년은 어린 시절의 루카르였다.
세르바부스는 이날의 대화로 알았다. 그 뛰어난 황궁의 사람들도 모를 수 있는 진실을 이 평민 소년 루카르가 꿰뚫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때문인지 더더욱 이 헌책방을 계속해서 찾아올 수밖에 없었고 둘의 만남은 이날을 계기로 더욱 두텁게 이어갔다. 세르바부스가 몰래 황궁을 나올 때면 둘은 헌책방의 먼지 쌓인 책 더미와 장부 더미 사이로 항상 함께했다. 세르바부스는 법과 역사, 황궁의 기록으로 길러진 눈으로 사건을 바라봤고 루카르는 시장과 장부, 땀과 굶주림의 언어로 같은 사건을 읽어냈으며 한쪽은 기록에서 이유를 찾았고, 한쪽은 현장에서 답을 구했다. 루카르가 세르바부스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부터 때론 말다툼을 했고, 때론 하루 종일 장부와 책을 맞대고 앉아 서로의 빈칸을 채워주었다. 소년들의 웃음과 논쟁은 서재보다도, 시장의 소음보다도 더 풍성하게 울렸다.
황자 세르바부스는 또래인 평민 루카르와의 대화를 통해 역사는 나중에 쓰이는 글이 아니라 지금 살아 움직이는 숨이 적혀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 권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륙의 자유는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며 엘렉티오 가문의 희생 위에 쌓인 것임을, 그러나 권력을 쥐지 않는 희생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기에 황궁과 귀족은 그 자유를 붙들어 묶으며, 칼레온의 규율로 세속을 위해 속도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모든 진실 속에서 황자의 생각이 정리됐다.
'역사에 진실을 담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으로 평민뿐만 아닌 귀족, 왕궁, 황궁의 모든 사람들, 권력이 세속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유지돼야 한다.'
관계가 단단하게 이어지던 어느 날 루카르가 세르바부스에게 말했다.
“너는 책으로 미래를 배우고, 나는 장부로 오늘을 지킨다. 우리가 함께라면 다른 곳들의 거짓의 틈도 줄어들지 않을까?”
그 순간, 세르바부스는 황궁에서는 가질 수 없던 감정을 느꼈다.
“그럼 우리는 둘이서 한 문장 쓰자. 나는 법과 역사로 근거를 가져오고, 너는 장부와 숨으로 증거를 가져와. 같은 문제를 두 길에서 풀어 같은 답을 만들자.”
이날 두 소년이 나눈 대화는 훗날 단순한 대화가 아닌 현실이 된다.
두 소년의 유대는 열 살의 여름부터 열네 살의 봄까지 이어졌다. 이 시간은 서재의 잉크와 시장의 먼지로 나뉜 두 길이 하나로 합쳐져 서로의 세계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고난에 의해서 새로운 다짐이 생겨나고 함께 적기로 한숨이 다르게 쓰일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마녀사냥
세르바부스가 열네 살이 되자 자유시간은 점차 줄어들었고 예정되어 있던 황자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황자 업무를 하니 황궁이 역사의 속도를 통제하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이미 헌책방에서 나눈 루카르와의 만남으로 진실을 알고 있기에 쉽사리 넘어가기 어려운 업무들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이내 수업 시간의 질문으로 연결되었다. 루카르와 나눴을 궁금증과 대화들이 줄어들자 질문은 황궁의 교관들을 향하게 된 것이다.
처음의 질문을 받았을 땐 황자의 단순한 호기심이라 여겼던 교관들은 쌓여가는 질문들과 스스로 답을 내는 황자를 보고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법은 문장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현장과 함께 흐를 때 비로소 살아 있습니다.”
“장부의 틀린 기록은 바로잡을 수 있지만, 역사의 틀린 기록은 백 년 뒤에도 거짓으로 남습니다.”
질문이 아닌 답으로 황궁 안에서 절대적인 칼레온의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에서 어긋나는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황자를 보며 교관들의 표정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점점 굳어갔다. 그리고 이는 끝내 대륙의 자유를 경험을 하지 않고 나올 수 없을 궁금증들에 대한 시발점을 찾아내는 것에 도달했다. 그들은 황후가 황자를 몰래 황궁 밖으로 내보냈다는 심증을 토대로 증거들을 수집했다. 황궁 사람들이 세속을 한다 해서 능력이 부족한 자들은 아니었고 금방 증거를 토대로 잘못된 원인에 도달했다.
황궁의 고위 관직자들은 황후가 황자를 위해 황궁에 투쟁할 때부터 오랜 기간 눈엣가시로 여겨왔다. 항상 황자의 교육을 흐트러트린다는 명목으로 언쟁을 이어갔지만 실상은 칼레온 가문의 규율을 약화시키면 자신들 또한 세속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투쟁의 방향이 황후에서 끝나지 않고 황자의 입에서 나오자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렇게 조정의 모든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아스테라를 마냐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속의 아이가 죽었던 것도, 세르바보스가 질병으로 죽었던 것도, 세르바부스를 위한 투쟁의 이유가 순식간에 그녀의 죽음의 이유로 바뀌어 황궁 전체로 퍼졌다.
황궁에서의 규율은 절대적이었기에 황후는 마녀사냥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아스테라는 이미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녀가 되어 처형대에 오른 아스테라의 눈빛은 두려움 없는 담담한 눈빛이었고 오로지 '일이 일어날 일이었으나 조금 이르게 다가오진 않았는지, 조금 더 아들의 곁에 머물지 못한 것은 아닌지'만을 생각하며 처형당하기 직전까지 아들 걱정뿐이었다.
세르바부스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몸이 떨리며 미쳐버릴 것만 같은 감정에 휩싸였으나 울분을 터트릴 수는 없었다. 지금의 울분은 처형까지는 안되더라도 똑같이 반역으로 연결되리라는 것, 잘못된 불씨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이가 부러져라 꽉 깨물고 감정을 버텨냈다. 어쩌면 이 감정을 버텨낸 건 칼레온의 핏줄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황후와 황자의 마지막
마녀사냥이 시작될 무렵 소란스럽던 순간을 틈타 아스테라는 몰래 세르바부스를 찾아가 마지막 말을 남겼었다.
"사랑하는 아들. 우리가 대화를 나누기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구나. 자칫 잘못하면 너도 반역자가 될지 몰라. 그러니 잠시만... 엄마의 말을 들어주렴. 너는 얼굴은 황제의 더 닮았지만 마음은 나를 더 많이 닮았어. 그 마음을 지키려면 힘이 반드시 필요할 거야. 아들이 힘을 더 얻을 수 있게, 엄마가 조금 더 도와줘야 했는데... 아들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희생만으로는 자유를 지킬 수 없어. 그러니 싫더라도 힘을 얻을 때까진 칼레온의 규율을 따라야만 해. 부탁할게. 엄마를 봐서라도 힘을 얻기 전까지만 너의 궁금증을 덮어두렴. 힘을 얻은 이후에 너의 규율로써, 법으로써, 네가 직접 황권을 잡으면 된단다. 그러면 너의 궁금증으로 시작한 네가 믿는 진실, 네가 원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사랑해. 아들. 나의 분신 같은 존재야."
아스테라는 눈에 가득 찬 눈물은 그녀가 이야기를 끝내고 뒤돌아 자리를 뜨기 전까지 흐르지 않았다. 그저 환한 미소만을 머금은 채 끝까지 말을 전한 후, 주변을 살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세르바부스는 입술만을 깨문 채 온몸에 피가 빠져나간듯했고 지금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그저 이 악몽에서, 악몽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세르바부스는 자유의 대륙은 있으나 자유의 권력은 없는 이 땅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권력이 먼저 필요함을 피가 되고 살이 되게끔, 다시는 겪기 싫은 일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꼈다. 악몽이 아닌 현실을 마주하며, 어마마마의 죽음을 바라보며, 엄마의 말을 되새기며 이날 자신이 권력을 잡겠노라 다짐했다.
'자유를 위해서 먼저 쇠사슬을 움켜쥐겠다.'
황제 카드 - 권위, 통제, 질서
무언가 얻기 위해서 권위적인 것일까,
권위적이기에 무언가를 얻기 바라는 것일까?
세르바부스는 권력과는 무관한 진실된 역사를 향해 꿈을 꾸던 소년이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겪은 비극으로 이 꿈에 도달하려면 권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의 꿈은 사실을 품은 역사가 아닌 권력을 쥐기 위함으로 변질되었을지도 모른다.
권위적인 사람에게 비난하는 것이 자유이듯 권위를 손에 쥐려는 사람의 선택 또한 자유다.
그 권위가 어떤 방향을 향하는지에 따라 자유로울지 억압이 될지가 달라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