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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 교황

신의 이름으로 베어진 칼날

by 오필

13세기 포르투나 엘렉티오

12세기, 엘렉티오가 세운 자유의 대륙은 한 세기 동안 번영을 누렸다. 엘렉티오의 혈통은 군사와 정치에서 별다른 도전을 받지 않았기에 대를 이었고 사람들은 자유 속에서 풍요를 만끽했다. 계속될 걸로 보이던 이 자유의 번영은 칼도 권력도 아닌 자유에 의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자유의 대륙을 완성한 엘렉티오 가문이 황권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뜻밖에도 자유에 의한 교황청 내부의 균열에 의한 것이었다.


자유의 대륙으로 자리매김하기 전의 종교인들은 스스로 신앙을 위한 절제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결코 강요나 억압은 없었다. 그런데 자유의 대륙이 되자 함께 자유가 없었던 주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유의 대륙이 되기 전이나 후나 신앙을 위한 절제 방식은 그대로였으나 주변사람들의 자유가 변한 것이었다. 그러자 일부 종교인들의 마음속에는 신앙이 곧 구속이자 억압으로 다가왔고 이 일부 인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신앙을 위한 절제는 속박'이라며 변질된 신앙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본래 종교는 신앙은 강요하지도 않았고 그것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신앙을 위한, 신성을 위한 스스로의 절제였을 뿐, 이 절제 또한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미 속박이라 느끼며 마음이 돌아선 일부의 사람들은 자유라는 이름아래 종교인을 자처하면서 신앙적 절제에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 자유로움, 절제를 벗어난 종교의 자유로움은 곧 고삐 풀린 욕망의 화산이 되었고 결국에는 하나의 종교에서 신앙심을 위한 신앙파와 욕망의 자유를 주장하는 선동파로 나눠었다.


자유의 대륙에서의 종교는 역설적으로 자유가 없는, 신앙의 의한 절제를 짐처럼 여기는 것의 발단이 되었다. 그렇게 절제 없는 자유를 누리던 선동파는 자유의 신앙을 욕망이라 오해했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필요에 의해 욕망을 채우는 것을 신의 가르침이라고 포장했다. 그들은 신성을 위한 절제는 무시한 채로 어디서나 신의 이름을 말했다. 이 선동파의 사단 속에서도 교황과 교황청 내부의 신앙심이 깊은 교인들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절제하며 신성에 다가가려는 마음을 올곧았기에 선동파에게도 교리를 읊었다. 또한 종교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막고자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되 속사이듯 가르침과 같은 경고만을 전했다.

“신은 너희를 속박하지는 않는다. 네가 원하는 것이 곧 신의 뜻일 것이다. 그러나 신이 원하는 뜻이 아닌, 자기 욕망을 위해 되려 신앙심을 속박하는 자는 신의 분노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단순한 가르침이 아닌 이 전언은 교황청에서 선동파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곧 신앙과 욕망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교황청에서 파생된 종교의 분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륙 전체의 균열로 번졌다. 하필 이 복잡한 상황 속에 여사제는 이와 연관이 된듯한 신의 계시를 받았다.

"황권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대륙은 나눠고 몰락의 시작이 될 것이다."


여사제의 계시는 종교의 분열보다도 빠르게 사람들에게 퍼졌다. 그리고 선동파는 이를 기회라 여기고 신의 계시가 자기들을 위한 예언이라고 포장했다. 그들은 이미 절제된 신앙과 그에 따른 신성함 없이는 교황청 내부의 권좌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선동으로 모은 군중을 등에 업고 황권을 향해 손을 뻗기로 했다. 그들은 자유를 이름 삼아 사람들을 현혹했으나, 그것은 거짓된 자유였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욕망을 포장한 억압된 자유, 황권을 얻기 전까지 구슬리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으며 자신들을 따르는 군중들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엘렉티오 혈통의 몰락 아닌 몰락은 신의 계시와 함께 선동가들의 가짜 자유와 마녀사냥에서 시작된 것이다.


선동파의 황권을 향한 신앙

선동파는 먼저 네 왕궁의 조정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도시의 평화를 위한 축성식을 청하며 제단과 성유를 들고 왕궁의 문턱을 넘었다. 이름은 경건했으나, 속은 계산이었다. 의식은 화려했고, 왕궁의 인장 곁에는 언제나 성유의 문양이 함께 하기를 권했다. 그렇게 관계를 형성한 후 왕세자의 스승으로 들어간 선동파의 성직자는 왕궁의 인장에 성유의 문양이 함께하는 것과 헌금 감면, 순례로 인한 상업 활성화를 약속받았고, 왕궁의 결정에는 하나둘 성직자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황궁이었다. 선동파는 황제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엘렉티오 가문의 혈통을 축복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축복의 의미로 즉위식과 대제를 성스러운 관유 의식으로 묶고, 황제의 칙령마다 황제의 인장 위에 성직의 인장을 찍게 했다. 표면상으론 축복이자 협력이었지만, 실상은 상위 심사가 되어갔다. 황제의 말은 여전히 칙령이었으나, 백성의 귀에는 언제나 선동파의 목소리가 먼저 도달했다. 칼도 병력도 쓰이지 않았으나 종교의 신앙 앞에서 황권의 상징은 어느새 축복의 서문 아래로 내려앉았다.


마지막은 처음부터 꾸준히 선동의 발판이 되어왔던 광장이었다. 선동가들은 떠돌이 설교단을 조직해 시장과 항만, 성문 앞을 꾸준히 돌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목소리를 낮추어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람잡이들을 동원했고 어느덧 꾸준히 행해지는 선동파의 종교적인 자리가 되었다. 이 자리는 언제나 바람잡이가 동원되었기에 항상 열띤 환호로 끝맺었다. '자유를 준 이는 황제가 아닌 신이다.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이 곧 신의 뜻이다.'라는 선동파의 교리 아래, 사람들은 세금과 군역을 신의 이름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장정들은 순례를 이유로 노역을 미루었고, 상인들은 축성일에는 통행세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선동파에 의해 자유라는 이름아래 민심은 종교인을 자처하며 면죄된 무책임으로 기울어갔다. 광장은 점점, 왕궁과 황궁의 명을 시험하는 공소의 법정이 되어갔다.


선동파 무리에 의해 어느덧 왕궁과 황궁, 종교라는 세 갈래가 종교의 이름 앞에 하나로 물렸다. 왕궁의 결제는 제단의 고개 끄덕임을 기다렸고, 황궁의 칙령은 선동파인 성직자의 낭독을 거쳐야 힘을 얻었다. 광장에서는 누가 더 크게 신의 이름을 외치는가가 곧 옳고 그름을 대신했다. 이렇게 선동파가 만들어 놓은 판이 완성되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황권을 장악하기 위한 최후의 작전을 시작했다.

“왕궁과 황궁의 자리는 여전히 혈통과 권력으로 물려받고 있다! 고위층은 부정부패에 물들었고, 백성 위에 군림한다! 신의 뜻으로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어느새 여사제가 전한 신의 계시가 자기 확신의 면허증이자 확언이 되었다.


정작 선동에서 벗어나 포르투나 엘렉티오를 바라보면 자유의 대륙이 된 이후, 황궁과 왕궁의 고위 직책은 세습이 아닌 능력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엘렉티오가 세운 대륙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제도였다. 하지만 이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 이 제도는 오히려 선동의 좋은 재료일 뿐이었다. 선동파는 사실과 다른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통해 마녀사냥을 감행하기로 했다. 거짓으로 꾸며낸 억압된 권위와 고위층의 부패 이야기는 진실을 알 길이 없는 평민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여기에 신의 계시가 맞물리니 엘렉티오 가문과 황궁은 정치질에 의한 정치적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저 황궁 밖에서 들여오는 함성이 가라앉기를 묵묵히 기다리며 황궁에 스며든 선동파와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와 종교의 이름으로, 황궁과 왕궁 또한 평민이 누려야 한다! 황권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 선동은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삶이 고단한 사람일수록 더욱 위로하고 공감하는 그들에게 사람들은 현혹되었다. 가려진 진실에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반란의 불씨가 피어난 것이다. 그러자 능력제로 엘렉티오 가문이 황실을 유지하는 정당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민심이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요동 치자 선동파는 드디어 은밀히 감춰왔던 칼날을 드러냈다. 그들은 더 이상 축복의 외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제는 황권 자체를 무력화하려 했다. 제단 위에서 외친 그들의 목소리는 명백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면 세금을 내야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능력한 황제가 권력을 쥔다!”

“황제는 무능하다. 신의 뜻은 이제 우리를 통해 드러난다.”

이 말은 광장에서 가장 큰 함성으로 퍼져나갔고, 황제의 권위는 서서히 사람들의 마음에서 밀려났다.


황권이 선동파들이 일으킨 종교의 이름으로 장악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광장에 모여 반란의 불씨를 키우며 소란스러움으로 퍼진 것이 이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 소란은 실의에 빠진 채로 교황청 근처, 조용한 곳에서 머물던 칼레온의 귀에도 닿았고 그것이 화근이었다. 떠돌이와 바람잡이들이 사람들을 한창 열심히 불러 모으던 시기에 칼레온은 소란스러움을 따라 발을 옮겼고 광장에 도착했다. 그는 신의 뜻을 빌미로 자유를 욕망으로 바꾸고, 백성을 도구로 삼는 선동의 현장을 보았다. 왜곡된 신의 이름으로 악행을 서슴지 않는 선동파를 보자 신앙과 신성에 의한 절제, 규율로 감춰온 분노를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칼레온의 복수

황궁의 일부 권력을 쥔 아버지와 신앙이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칼레온은 어려서부터 다방면에 재능이 출중했고 정의로움과 권위욕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이런 그가 어려서부터 예배당에서 만나 관계를 이어오던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녀의 부탁과 자신의 성향, 태생에 맞물려 결혼을 담보로 권력을 쥐기보다는 정의로운 성기사가 되기를 택했다. 그는 그 뒤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며 정의로운 성기사 단장이 되는 것을 꿈꿨다. 그리고 만약 선동파가 생기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생겨난 선동파에 의해, 신앙심이 깊던 칼레온의 아내는 신의 뜻이라는 선동파의 꾐에 넘어가 성폭행과 폭행 등으로 그들에 의해 불구가 되었다. 이 또한 신의 뜻이라고 포장하는 악행을 저지른 그들과 세뇌를 당한 아내를 보며 종교의 규율에 묶인 칼레온은 그저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참고 버티면 신에 의해 괜찮아질 거라 여겼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는 신의 뜻이 고역이라며 자살을 택했다. 집에서 홀로 자살을 택한 아내의 시신을 보자 칼레온은 실의에 빠졌다.


신앙심이 깊은 칼레온은 종교의 규율 속에서 누구도 탓하지 않고 복수는커녕 분노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충격적인 일로 실의에 빠졌음에도 칼레온의 정의로움이 당시에는 신앙심에서 온 것이기에 언제나 신성을 위한 절제와 규율 아래 자신이 존재한 것이었다. 이 규율과 희생 속에서 찾아온 실의와 혼란은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실의에서 구한 것 또한 선동파라고 할 수 있었다. 선동파의 거짓된 신앙에서 시작되어 광장에서부터 퍼진 소란스러움이 그에게 닿은 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었다. 아내를 잃고, 삶을 잃었던 칼레온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의와 권위욕으로 황제, 황권을 바라보았다. 여사제가 받은 신의 계시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 믿었다. 어찌 보면 황권을 쥐기 위함에 대해서는 선동파와 궤는 같았으나 본질적인 뜻이 달랐다.


칼레온이 선택한 황권은 신성에서 파생된 규율이었다. 자신이 겪은 불행을 직접적으로 일으킨 자는 선동파 무리였으나 현 황제가 만들어 놓은 규율 위에 있는 자유 때문에 이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라 여겼다. 교황청 또한 자유라는 명목하에 선동파를 방치하게 된 것은 규율의 잘못됨이라 믿었다. 그렇게 분노는 선동파가 만든 혼란과 이를 방치한 황권, 교황청이 겹쳐져 분노는 규율 없는 자유를 향했다. 결국 신의 계시처럼 자신이 규율을 만들어 황권을 장악해야만 이 대륙에 일어난 모든 폭동과 악행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위해 분노를 가라앉히며 선동파의 그늘 아래서 움직이기로 다짐했다.

'내 손으로 피의 숙청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이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분노를 견뎌내리라.'


잠입과 포섭

칼레온은 연이 있는 귀족과 황궁 인물들, 그리고 성기사단에서 믿을만했던 일부 인원을 불러 모았다. 그들 중 자신과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려낸 후 함께하기로 약속했고 최후의 순간 전까지 모두가 선동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칼레온은 선동파에 스며든 자신의 세력이 견고해질수록 복수를 위한 기다림에 의해 받는 고통이 커져갔고 이 고통만큼 믿음과 신앙은 더욱 단단해졌다.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맹세한 정의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규율 없는 자유야말로 모든 불행의 뿌리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아내에게 맹세한 정의는 새롭게, 잘못된 규율을 갖춘 황권과 교황청의 규율을 바로잡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칼레온은 여사제가 받은 '황권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대륙은 나눠진다'는 계시가 자신에게 내려진 사명이라 여기게 되었다.


선동파에는 욕망에 사로잡힌, 많은 무리의 리더들이 공존할 뿐 분명한 리더는 없었다. 모두가 황제의 자리를 탐했으나 먼저 황제의 자리를 탐낸다면 오늘의 아군이 내일이 적군이 될 거라는 걸 서로가 잘 알았기에 누구도 권력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틈에서 칼레온은 자신의 뜻을 따를 자를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세력을 견고히 하기 위해 은밀히 뜻을 퍼트렸고 이는 암묵적으로 황제의 자리에 설 수 있음이 되었다.

“자유는 질서 없이는 무너진다. 진짜 자유를 위해선 규율이 필요하다.”


흩어져 있던 뜻을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회의와 설교 사이사이에 칼레온의 뜻이 스며들었고, 선동파 내부에도 작은 조력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선동파의 실행이 본격화되자 엘렉티오의 몰락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선동파안, 무리의 리더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최후의 순간까지 황제의 자리를 끝까지 언급하지 않았으나 여기저기서 결전의 날이 제기될 때마다 칼레온의 말은 힘을 얻었다. 민심 또한 신의 이름을 내세워 욕망을 채우는 선동파의 과격함과 간간이 드러난 민낯과 악행으로 인해 지친 틈에서 칼레온의 규율만이 자유를 회복하고 질서를 세울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결전의 날, 당일이 되어서야 선동파의 리더격들이 모두 모여 누가 대륙을 다스릴 것인지,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논의했다. 그런데 정작 칼레온은 그 자리에 칼레온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들이 모여 논의를 할 동안 칼레온은 교황과의 독대를 택했다. 성기사의 신분으로 교황과의 독대 자리를 만든 그는 교황에게 명확한 자신의 뜻을 전했다.

“자유의 이름은 이미 피로 물들었습니다. 이제는 변화된 규율만이 대륙을 살릴 수 있습니다.”


엘렉티오 가문과 함께 맹세한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나서지만 않았을 뿐 평민부터 귀족, 왕궁, 황궁 등 신앙심이 있는 모두를 따르게 할 수 있는 힘이 교황에겐 있었다. 그리고 교황은 선동파에 의해 황제가 무너지는 순간, 신의 권위와 신앙심마저 흩어질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런 교황에게 칼레온은 결전의 날 자신의 편에 서서 욕망에 찬 선동파 리더들이 황제의 자리를 탐낼 수 없게 나설 수 없도록 자리를 빛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황권도 교황청도 자유 위에 규율이 있어야 한다는 참언을 했다.

이런 칼레온의 제안을 교황이 받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선동의 마침표가 현 황제를 살릴 수 없음 또한 짐작하고 있었기에 차라리 새로운 질서를 세울 자, 칼레온에게 신의 뜻을 부여하기로 결정했고 신의 이름 앞에서 서로 맹세를 했다.

그렇게 엘렉티오 가문의 몰락과 함께 황권의 교체를 맞이하는 최후의 순간이 되자 교황은 모두의 앞에 섰다. 선동은 결국 신의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황제의 공석이 된 이곳에서 여세자가 오지 않는 한 교황의 말은 사실상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교황의 입에서 칼레온의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 칼레온은 더 이상 선동가도 성기사도 아닌 황권을 바로잡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교황의 말은 간결하면서도 묵직했다.

“교황청의 이름을 빌려 규율의 수호자 칼레온에게 신의 뜻을 바치겠다."


칼레온이 분노와 고통을 참으며 그토록 기다리던 최후의 순간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다. 선동파를 등에 업고 시작해, 교황의 도움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황제로 즉위되는 그 순간, 즉위와 동시에 곳곳에 숨어 있던 칼레온의 세력들은 칼레온과 함께 칼을 꺼내 들었다. 숙청은 은밀하지 않았고 오히려 투명하고 공개적이었다. 즉위가 광장, 황궁, 교황청 할 것 없이 대륙전체로 퍼져가면서 그 현장에 있던 모두가 보았다.

선동파에서 폭동을 주도한 자, 황궁에서 뇌물을 받아 권력을 휘두른 관리, 왕궁에서 백성을 착취한 자, 교황청에서 신의 이름을 더럽힌 성직자, 심지어 한때 그의 곁에 섰던 조력자들까지, 악행을 저지르거나 탐욕이 드러난 자는 누구든 피를 면치 못했다. 거대한 악의 세력이라고 판단된 자들을 숙청했다는 공표에 사람들은 환호와 동시에 누구든 규율에서 벗어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새겨졌다. 그렇게 포르투나 엘렉티오의 사람들은 자유보다 규율이 우선시 되는 황제 칼레온을 맞이했다. 그리고 칼레온은 피와 신앙, 그리고 규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시 한번 교황의 손길 속에서 대륙의 새 황제로 즉위했다. 대륙 전역을 피로 붉게 물들인 칼레온은 최후의 순간이 마무리된 후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을 당시 자신을 향한 다짐을 속삭이듯 말했다.

“규율 없는 자유는 죄다. 신은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죄를 단죄할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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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카드 - 중재자, 신념, 권위

신앙심을 가지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선 칼레온은 황권과 함께 교황청의 규율마저 바로잡았다. 피의 숙청을 본 일부는 그를 폭군이라 일컫거나 칼레온의 규율 아래서 그를 독재자라 말한다. 그러나 피의 숙청을 피해 간 악행을 저지른 자는 포르투나 엘렉티오 곳곳에 스며들어 살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세운 규율을 강하게 주장하는, 자신의 규율을 따르지 않는 자를 반역자로 간주하는 칼레온의 올곧은 정의로움은 성역과도 같았다.


어려서부터 다방면에 재능이 있던 칼레온은 자신이 원하면 어떤 인물이든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한다 해도 자신의 통제 밖의 일들을 모두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가 정해진 종교의 규율 아래서 성기사 단장을 꿈꾸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알 수 없으나 예상은 해볼 수 있다. 만약 예배당에서 올곧은 신앙을 가진 그녀를 만나지 않고 다른 삶이 주어졌다면,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그는 대륙을 넘어 세계를 집어삼키는 독재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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