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소개했듯 2년 간의 취업 준비, 1년 간의 진로 바꾸기에 실패한 후 인생이 끝나버린 것만 같았다. 나이는 이제 스물여덟을 넘어섰고 주위 친구들은 모두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나인 투 식스'의 루틴에 맞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냥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였던 듯하다. '나는 왜 모든 게 느릴까' 생각했다. 대학교 입시도 쉽지 않았고, 취업도 쉽지 않았고 그 흔한 연애도 남들처럼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말은 남들과 다르면 어떠냐, 자신만의 속도를 가져라 하지만 사회 분위기상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음을 진즉 알고 있었다. 점차 자기 연민에 빠지다 보니 밑을 내려다 보아도 수렁의 밑바닥은 보이지 않았고 잠기고 싶은 만큼 잠식되기 시작했다.
졸업하고 약 1년이 지났을 때부터 그러셨지만 건축 디자인 회사에서 퇴사하고 나니 부모님께서 바로 공무원 준비를 권유하셨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기를 잘하는 데다가 강박증 덕에 꾸준함을 타고난 나에게 딱 맞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공무원 준비가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몇 년을 주저했던 이유는 한 번에 합격하지 못했을 경우가 두려워서였다. 일 년에 딱 하루(지방직, 국가직 나누면 두 번이지만)단 몇 시간으로 노력의 결과가 결정되는 시험이 무서웠다. 대입도 수시로 입학했으니... 그래서 어떻게든 흐린 눈을 하고 있었으나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다른 방안으로 공기업 준비도 있었으나 당시에는 공무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 진짜 공시생이라고?
짧게 맛보기로 공부했던 한능검
그래도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일단 수강료가 너무나 비쌌다. 그렇다고 마냥 앉아서 고민하기는 뭣하고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토익이 만료된 것이 떠올라 2주는 토익에만 몰두하자 싶었다. 공무원 영어 시험을 미리 공부한다 생각했다. 문제집을 주문하고 독학하면서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던 것 같다. 눈치 보지 않으려면, 스스로 당당해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꾸준히 무엇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고 직장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피곤하게 나를 굴렸다. 토익 시험을 보고 난 후에는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준비했다. 예전에 사다 놓았던 교재를 가지고 맛보기로 한국사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2월이 지나 3월이 되었고, 학생들이 새 학기를 시작하듯 3월부터 새 강의가 시작될 것이라는(전혀 아니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 결제 버튼을 눌렀다. 사실 이때가 제일 떨렸다. 결제가 제대로 되었는지 내가 진짜 공시생이 된 것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심지어 추후에 결제 및 환불 문제가 생길까 봐 동영상까지 찍어놓았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사하는 날에도 혼자 카페에서 공부했던 나
취업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뭐 하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주 간토익과 한국사 준비할 때 그랬듯이 공시생이 되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설렘이 더 컸다. 미친 듯이 열심히 하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력서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지 않아도, 새로운 공고가 없는지 찾아보고 어떤 자격증을 딸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그저 눈앞의, 그날 해야 하는 분량만 해내면 되니 혹시 공부가 천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취업 준비보다 공부가 훨씬 좋았다는 게 공시생일 때 썼던 글을 보니 잘 드러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그렇다고 놀 수도 없는 취업 준비 기간과는 달리 매일 정해진 분량, 시간만큼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일단 마음이 편했다.
나에게는 공무원 시험이 나름 해볼 수 있는 걸 다 해본 뒤의정말 마지막 선택이었다. 만약 30살까지 합격하지 못한다면 좋지 않은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못된 생각을 했다. 지나고 보니 당시에 마음이 많이 아팠던 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2018년 졸업 후 약 3년 만에 가장 편한 마음으로 공시생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