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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May 04. 2023

스물일곱, 진로를 바꾸다

예체능 무식자의 건축디자인 도전기, 결과는?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의 집들

순혈 문과생, 건축디자인에 도전하다


 취직을 위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오만가지 남들이 따는 자격증은 다 땄고 학점 관리도 신입생 때부터 해둔 덕에 복수전공까지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취직이 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글쓰기에 자신도 있었겠다, 문제는 면접일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저 깔끔하고 가독성 좋게 쓴다는 것뿐이지, 특별할 것 없는 내용에 서류 합격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놀며 시간을 허비할 순 없으니 엄마 가게를 도와드리면서도 틈틈이 이력서를 채우고자 노력했다. 인턴 경력 1년, 외국인 관련 대외활동 네다섯 개, 925점의 토익, 컴퓨터 활용능력 2급, HSK 4급 등을 적어 넣었다. 그런데도 도통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없으니 이력서가 끝도 없이 부족해 보였다.


 사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을지 모른다. 전공, 경력과 관련 없는 HR을 배우고 싶었던 내 선택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아빠는 지속적으로 자소서 컨설팅을 받아보라고 권유하셨지만, 이미 학교 주관 컨설팅을 받았던 나로서는 이력서, 자소서에 관한 한 더 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서부터 틀렸으려나.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내 가게를 운영하다시피 엄마 가게에 출근하며 취업준비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꾸준히 이력서를 넣으면서도 뭔가 더 해야 된다는 강박에 휩싸여 전화영어를 신청했고 따로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방향을 잘못 고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한동안은 다른 분야를 찾는 데 매진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집들이 참 매력적이어서 관심을 갖게 된 건축을 배워보고 싶었다. 그렇게 친구들의 추천으로 내일배움 카드 제도를 통해 국비 지원을 받는 건축 디자인 수업에 등록했다.


 


블로그에 올린 나의 첫 포트폴리오


후회 없이 열심히 했다


 그렇게 장장 육 개월에 가까운 건축 디자인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돈을 내지는 않지만 받지도 않는 거짓 직장인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내 하루 루틴은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홈트로 운동을 하고 아침식사를 한 뒤 준비를 마치고 8시에 출발해 학원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매일 지각 혹은 결석했는지 체크한 후 지원금이 나왔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원했다. (지각은 두 번 정도 했던 듯하다.)


 학원 그 작은 공간의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사람과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정말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강의를 따라갔고 블로그에 마지막 강의까지 강의 내용을 한 주씩 정리하여 올리기도 했다. 집에서 복습하며 기능을 손에 익히기도 했고 문제 은행 형식의 건축제도기능사 시험도 하루 5시간 정도 투자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었다. 일단 지금 배우는 것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넣는 때가 다가오자, 역시 디자인은 노력보다 재능에 좌우되는 분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아가 노력, 그 잠깐 6개월 했던 것으로 몇 년, 많게는 10년 이상을 배워온 사람들과 대등한 경쟁을 하려고 하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렇게 증명된 실력도, 경력도 없는 신입에게 연봉 2400도 주지 않으려는 회사가 태반인 것을 깨닫고는 나는 안 되겠다 싶었다. 터무니없는 연봉, 전무하다 싶은 복지, 그냥 정규 근무 시간인 것 같은 야근.


 이력서를 넣기 전까지는 어디든 취직하기만 하면 열심히 일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눈앞의 현실을 보지 못했다. 연봉과 워라밸이 가장 중요했던 내가 디자인 분야를 시작하기 전에 근무 환경과 처우 등을 자세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일단 할 게 생겼다는 데 들떠 성급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제일 나아 보이는 곳에 지원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직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듯한 느낌과 전공자들 사이에서 아기 새가 된 것 같은 무능력한 기분에 일주일 만에 퇴사를 하며 또 한 번의 좌절을 맛보았다. 이 퇴사 과정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 자세히 적어두었다.


나는 딱정벌레, 초파리, 그리고 개미 (brunch.co.kr)




마지막 포트폴리오


돌아보니


 이 글을 쓰기 위해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뒤적거려 보았는데, 진로를 바꾸고 당장 할 게 생겼다는 것에 얼마나 두근거리고 설레했는지 글만 보아도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마음이 편했다. 매일 눈 뜨고 뭐 하지, 어디에 지원해야 되지, 이력서를 채우기 위해선 뭘 해야 되지 등의 고민을 안 해도 되고 당장 눈앞의 공부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공부가 제일 편하다."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어른들의 말이 절실하게 와닿았던 순간이다.


 심지어 처음 학원 가기 전 날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시작하고 나니 신기하게 그 걱정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태함에 죄책감을 느끼던 내가 궁금했던 것을 배우고 새로운 길을 시작하니 자신감이 붙었다. 꼬물꼬물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제 3일, 기초를 배우는 병아리지만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기에 앞으로가 기대된다. - 블로그에 썼던 글


 방황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좌절이 더욱 큰 돌덩이처럼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 좌절로 많이 무너져 내린 나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like 최종, 최종의 최종, 찐 최종)이라 생각한 공시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건축 디자인에 도전했던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당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던 내게 잠시나마 목표가 생기 해주었고 나태의 죄책감에서 자유롭게 해 주었다. 게다가 미련이 남아 쥐고 있던 전공을 놓아버린, 내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결단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주위의 집들을 보며 '건축 배워보고 싶다' 등의 혼잣말을 중얼거리지 않도록 해준 것도 큰 소득이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빠른 시기라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며 도전이 쉽지가 않다. 그런 후회로 가득 찰, 겁 많은 내 인생에 큰 결심을 내린 경험 하나는 결과가 어떻든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흉터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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