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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Apr 11. 2023

인문계 학생의 도피성 해외인턴

진로를 잃어버린 인문계 학생의 커리어를 위한 몸부림

 지난 2016년, 인생에 가장 크고도 평생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될 결정을 내렸다. 1년 간 해외인턴을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라는 자연스레 미국으로 정했고 곧장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미국으로 장기인턴을 가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로는 진로를 잃어버린 채 막막한 취준생이 되느니 떠나자는 도피성이었고, 둘째는 교환학생을 가기에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환학생의 대안


 중학생 때 처음 교환학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된 후로 교환학생을 대학교의 로망으로 간직한 채 살아왔다. 꼭 가겠다는 다짐을 했고 입학하자마자 선배에게 교환학생은 어떻게 가는 건지, 언제 지원할 수 있는지 물어볼 정도로 관심이 가득했다. 교환학생 설명회도 종종 참석하며 공부했다.


  그리고 3학년 때 공고를 보자마자 부모님께 지원서를 넣겠다고 말씀드렸다. 대학교마다 비용이 달라 가장 저렴한 곳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해당 학교에 맞추어 한 달 동안 영어 학원을 다니며 토플 성적도 맞춰놓았다. 하지만 내가 모은 돈을 보탠다고 해도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어 어머니께서 다음에 가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여건 상 4학년은 지원이 불가능했던 터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고 당시 어머니와 큰 다툼을 했다. 오랜 기간 바랐던 경험을 놓친다 생각하니 속상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철이 없기도 했다.

(사실 마음속 한 곳에 응어리로 남아있다.)


 그렇게 눈물을 훔친 후 풀 죽은 생활을 하던 어느 날 해외 인턴 공고를 보게 되었다. 미국 인턴십은 한국 회사로 갈 경우엔 유급이었다.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러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부모님과의 상의 끝에 가기로 결정했다. 아르바이트로 정착 비용을 모을 수 있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린 것과 함께, 교환학생을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더 흔쾌히 허락해 주신 것 같다.




노느니 인턴이라도


 아울러 진로를 찾고자 방황했다는 이유도 있다. 지난 글, 뭘 해서 먹고살지? (brunch.co.kr)에서 언급했듯이 대학교에 입학한 후 거의 평생을 꿈꿔왔던 진로를 잃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3학년을 마친 후 4학년을 앞두며 취업에 대한 압박이 점점 커져만 갔다. 졸업 후 바로 취업 준비를 하기에는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고 쉼 없이 달려온 대학 생활에 지쳐 휴학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으레 하듯이 휴학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럽 여행을 가야 할지 많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해외 인턴 공고를 보고 경력도 되겠다, 월급을 받으며 미국 여행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크게 주저하지 않고 마음이 움직였다. 단 한 가지, 신문방송학과 전공을 살려야 하므로 방송국으로 가야 했던 점만 빼고. 방송국이 싫어 복수전공을 하고 다른 진로로 눈길을 돌리던 중이었는데 방송국 인턴이라니. 워낙 거칠고 험한 직장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출국 직전까지 이게 맞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LA에서의 첫 사진. 집 구하러 가는 길.


후회 없는 선택


 준비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해야 하는 건 왜 이렇게 많고 돈은 여기저기 왜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비자 발급을 도와주는 인트락스라는 회사와 그 회사를 연결해 주는 한국 에이전시, 그리고 비자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까지 눈 감았다 뜨면 잔고가 훅훅 줄어들었다. 이것저것 뭐가 뭔지 모를 서류를 준비하고 또 준비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았고 나중에는 어머니도 "그냥 빨리 갔으면 좋겠다."라고 하실 정도였다. 전화만 했다 하면 경우 없이 다그치던 탓에 에이전시 이름만 뜨면 심장이 쿵쿵거리기도 했다. 아무튼 이러이러하게 힘들었던 과정을 주토피아 OST인 'Try Everything'을 들으며 버티고 버텼다.


그렇게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얼레벌레 진행하니 내 두 발은 어느새 미국 땅을 딛고 있었다.

(물론 도착하면서부터 일 년 후 귀국하기 전까지 쭉 난관이 있었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지금 돌아보면 일 년 간 타지에서 혼자 생활할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인문계 학생이 충동적으로 결정한 도피성 출국치고 얻은 게 참 많아 조금의 후회도 없다. 어딜 가더라도 혼자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첫 사회생활 경력, 타국 문화를 깊게 경험하고 왔다는 건 돈 주고도 살 수 없어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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