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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Mar 12. 2023

어렵게 취업했지만 그만두겠습니다

혹독한 현실에 상처받은 사회초년생

강화도의 한 카페, 딱정벌레 소리를 들은 곳

Lost My Way


 2021년 겨울, 나는 또 길을 잃었다.

주전공 신문방송학과, 복수전공 중어중국학과. 졸업 후 2년 방황의 끝에 건축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꾸려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원 다섯 명의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 후 일주일 간의 첫 직장인 생활을 마치고 퇴사 이야기를 꺼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역시 두려움이었다. 내가 과연 또 정규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긴 과정이 두려웠고 상상만 해도 답답했다.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일은 마음에 들었다. 천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배우면서 흥미가 생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기도 했다. 소소한 복지도 좋았다. 다른 곳에서 좋지 않은 조건을 접하다 보니 작은 복지 하나에도 감사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이 다 되도록 연봉조차 모른 채 근무하고 있었고 답답한 마음에 물어보기로 결심한 날 큰 좌절을 겪었다.


 대표는 면접 때 말했던 것보다 적은 연봉을 '신입 배려'로 포장했다, 그리고는 내가 장점이라고 어필했던 의사소통 능력을 대체 언제 보여줄 것이냐며 나를 깎아내렸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자책도 참 많이 했다. 내가 원하는 연봉이 내 능력과 나이에 비해 과했던 것인지 끊임없이 스스로 되물었다. 그저 근로조건을 물어봤을 뿐인데, 썩 만족스럽지 않은 사원이라며 이 정도 연봉도 과분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사실 웬만하면 참아보려 했다.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얻은 기회고, 어떻게 잡은 직장인데. 이십 대 후반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나이에 경력도 없고 관련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닌 내가 어떻게 취직한 곳인데. 부당한 점이 있어도 참고 다니려고 했다. 연봉 2,400도 많다던 취업 시장의 현실을 경험했으니 속마음은 “버티자. 버텨보자.”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다들 아니라고 했다. 특히 가족들의 만류가 컸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줄 아니."라고 했던 엄마가, 그리고 오빠가 퇴사를 권유했다.


 그중에서도 엄마는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듣느라 10시에 귀가한 그날, 내가 참 힘들어 보이셨나 보다. 나도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엄마는 더 속상하셨나 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확인하며 마음이 참 아팠다. 새벽 다섯 시에 엄마에게서 출근하지 말라는 카톡이 와있었다. 내내 뒤척이시다 보내신 듯했다. 그날 아침, 출근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신 엄마는 가지 말라며 붙잡으셨다. 나는 괜찮으니까 마저 주무시라고 애써 내 마음을 다독이며 출근했다.

마음이 아릿했던 엄마의 카톡


 누구보다 퇴사를 강하게 주장한 사람은 오빠였다. 지하철에서 같이 출근하는 내내 오늘이냐 내일이냐의 문제일 뿐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퇴사 후를 걱정하지 마, 넌 잘하잖아."라는 간지러운 위로를 받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마음이 뜨긴 했지만 그럭저럭 하루를 잘 버티고 있는데 대표가 갑자기 야근을 강요했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터라 갑작스러운 결정이 더욱 유쾌하지 않았고퇴사로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6시가 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퇴사를 통보하고 나왔다. 끝까지 붙잡는 대표의 모습에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친구들을 만나자마자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섣부른 결정을 한 걸까 걱정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졸업 후 좀처럼 오지 않는 면접 연락에 큰 용기를 내어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다시 취준생이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스스로 주위 친구들과 비교하며 점점 더 움츠러들었고 내가 실패자처럼 느껴졌다.



 첫 월급을 참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나도 경제적으로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동안 부모님 마음고생 시킨 것도 적은 돈이나마 생활비를 드리면서 보답하고 싶었고 매달 용돈을 주던 오빠한테도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근무했던 일주일 동안 적금과 생활비를 어떻게 나눌지, 친구들은 어떤 순서대로 밥을 사줄지 행복한 고민을 했다.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합격 연락을 받고 너무나 기뻐하시던 엄마 아빠의 모습, 회사 다닐 때 입으라며 사주신 옷, 취업 축하를 위한 가족 외식이 자꾸 떠올라 너무나 힘들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애써 묵직한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집에 들어와 아빠를 본 순간 미안함에 바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 우냐며 당황해하시는 아빠께 그저 "미안해서"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 이겨내야지. 이번에도.


 나는 사주를 다소 진지하게 믿는다. 20대는 방황의 시기고 30대부터 잘 풀린다는 총운. 이렇게까지 찐하게 방황할 줄은 몰랐지만 가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그래도 살아보자.' 했던 이유 중 사주도 있다. 언젠가 잘 풀릴 내 인생이 궁금해서다. 그래서 사주대로 흘러가는 거겠거니, 나의 진짜 분야를 찾는 여정 중 하나겠거니 생각했다.


 특히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히 들었던 날이 있다. 퇴사 다음 날, 여러 가지 감정에 우울해하는 나를 보고 엄마가 강화도에 가자며 손을 이끌었다. 점심을 먹고 한 카페에 가서 기분 전환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타다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딱정벌레가 유리에 붙어있었다. 유심히 보니 유리를 기어 올라가다 떨어지며 날개가 부딪혀 타다닥- 소리를 냈다. 문득, 버스에서 초파리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창문에 붙어 올라가고 뚝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고 떨어지던 모습. 그때 '대체 쟤는 어딜 저렇게 올라가려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오늘 내가 만난 딱정벌레도 올라가고 떨어지기를 계속 반복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한 노래의 가사가 또렷이 떠올랐다.


어디로 가는 개미를 본 적 있어?
단 한 번에 길을 찾는 법이 없어.
수없이 부딪히며 기어가는 먹일 찾기 위해 며칠이고 방황하는
방탄소년단 - Lost


 딱정벌레와 초파리, 그리고 개미 속에서 나를 보았다.(왜 모두 벌레일까ㅎㅎ) 그래, 결국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묵묵히 제 길을 찾아 수없이 부딪히는 개미처럼.


 사실 다짐만 하고 실행하기 참 어렵다. 그러나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삶의 태도를 깨달은 순간순간이 있다면, 그거면 된다. 이 순간들이 잠시나마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깨워주고 경직된 마음 하나하나 숨을 내쉬도록 틈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유리 꼭대기에 도달해 있겠지.


 나는 오늘도 내가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하나씩 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의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미래를 의심하지 않고 내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 21년 1월 당시 써놓았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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