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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Jun 05. 2023

지방직 시험을 앞두고 엄마가 아프다 2

내가 공시생인지 의대생인지


 갑작스러운 엄마의 유방암 진단으로 공시생인 나는 시험공부가 아닌 유방암 공부만 줄기차게 했다. 어쩌다 집중력이 생겨 강의를 듣는 것도 잠시 뿐이었고 금세 엄마 걱정으로 이어졌다. 일단 암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얼른 병원 진료를 예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떻게든 빠르게 검사를 받아야 했으니 수도권인 집 근처에 적당히 큰 병원을 알아보았다. 엄마랑 대충 상의해서 정한 후 저녁에 아빠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아빠가 큰 데서 검사받아야 한다며 버럭 화를 내셨다. 강력히 주장하시는 바람에 의견이 기울던 참에 과거 같은 수술을 받으셨던 작은엄마의 추천으로 아산병원에 예약했다. 워낙 대형병원이고 유명하신 의사 선생님이라 이미 많은 예약이 차 있어 수술까지는 몇 달 기다려야 했고 그동안 더 커지면 어떡하지 싶은 걱정이 되어 마음 편히 지낼 수가 없었다.




입원 후 수술까지


병실에서 공부, 창 밖 풍경


 수술 날짜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고 공부할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엄마와 함께 입원했다. 당시 코로나가 심했을 때라 등록된 보호자 한 명만 병실에 드나들 수 있었다. 2인실에 배정받고 환자복을 입은 엄마 모습을 보니 상대적으로 가벼운 수술이긴 해도 엄마가 암환자라는 게 실감이 났다.


 수술 당일에는 엄마가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셨던 것 같다. 당시 혼자만의 브이로그를 촬영했는데 1인실로 옮긴 후 엄마가 울었다고 아빠한테 이르는 내 목소리가 찍혀 있었다. 나도 마음이 아팠지만 애써 담담한 척을 하고 따라 울지 않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병실을 옮기니 2인실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엄마를 수술실로 보낸 후에도 혼자 돌아와 그저 묵묵히 공부만 했다. 수술이 잘 안 되거나 문제가 생길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금방 돌아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엄마는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수술보다도 빠르게 회복하셨다. 그날 저녁에 아무렇지 않게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심야괴담회'를 봤으니. 나는 주말 지방직 시험을 위해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었다. 다음 날,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오셨는데 엄마를 두고 혼자 나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쓸쓸히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안타까워서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적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전화했는데 눈물을 꾹 참는 목소리를 들은 그때는 참지 못하고 울었다.




 공시생이 된 지 약 3개월 만에 시험 삼아 본 시험은 당연히 터무니없는 점수였고 죄책감이 들었다. 이런 점수를 맞으려고 아픈 엄마를 뒤로 하고 나왔나 싶었다. 자기변명을 하자면 당시 공무원 시험은 내 전부를 걸었던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내 마지막 선택으로,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그저 살고 싶어서 공부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에도 시간과 운명에 따라 결국 사기업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 소중한 것을 외면한 채 몰두했던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엄마의 몸에 짙게 남은 수술 자국처럼 그때의 기분, 감정이 생생하게 내 마음 깊이 남았지만 이제는 "그런 일도 있었지~"하며 돌아볼 수 있다. 내가 엄마한테 말했던 것처럼 어쨌든 다 잘됐기 때문에.


 이제 행복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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