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2월 22일 화요일.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이 날 우리 가족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공시생으로서 그날도 어김없이 카페를 전전하며 공부했고, 새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책상과 책장부터 설치해 저녁 즈음 밀린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거실에서 아빠 휴대폰 벨소리가 들렸고 아빠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작은 아빠 전화라며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긴장된 마음으로 받으니 작은 아빠께서 지인 회사에 자리가 났다며 지원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조금, 아니 사실 아주 많이 내키지 않았다. 국가직 시험을 한 달가량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일 년 동안 공부한 것을 한 번도 써먹지 못하고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망설이자, 되든 안되든 일단 넣어보기만 하라고 제안하셨다. 그렇게 대략적인 업무 내용과 급여 등의 이야기를 듣고 끊으니 엄마, 아빠의 설득이 시작되었다.
나는 꽤나 단호하게 안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아빠는 무조건 지원하라고 하셨다. 해당 회사와 공무원의 처우를 비교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전 회사들의 부당한 대우가 있어도 아빠는 늘 나의 퇴사 결정을 반대하셨던 터라 이 때도 '돈'과 '직장'을 선택하실 줄 알았다. 아빠의 말과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조금 더 내 상황을 이해해 주시길 바랐다. 그런데 어김없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원하라는 말씀이 너무나 서운했다.
1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가장 가까이 지켜본 가족으로서 어떻게 바로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군들 이렇게 될 줄 알았겠냐만은 아빠에게 내 의견, 의사는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이때 정말 많이 힘들어서 밤새 펑펑 울었다. 엄마는 쉽게 그만둘 수 있겠냐며 위로해 주셨지만 결국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온 날 연봉과 복지를 들으시고는 마음을 돌리신 듯했다.
사장님께서 나를 너무나 좋게 봐주신 덕에 빠른 시일 내 합격 연락을 받았고 친구들, 오빠와 긴 시간 이야기하며 결국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공무원이든 사기업의 남 뒤치다꺼리 직무든 둘 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 좋은 조건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미련이 남은 공무원 시험은 4월에 국가직 시험을 보고 오는 것으로 털어버리기로 했다.
이때까지도 매일 울었고 집중은 되지 않는데도 꾸역꾸역 책상 앞에 앉아 질질 끌며 공부했다. 일 년 동안 잠자는 시간 빼고 항상 해왔던 공부라 한 순간에 놓을 수 없었고 한창 공부할 시간에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수시로 "이 시간에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안 믿겨"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출근하라는 연락이 오기 직전에 주문했던 모의고사 책이 아직 집에 그대로 있다. 이후로 한동안 공무원 수험서로 가득한 책상을 보면 한숨만 나오고 가슴이 답답해져 방치해 두었다. 이제 그만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 미련이 남아서 그런 것일 수도.
아무튼 우여곡절 많은 첫 회사 입사기였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 스물아홉, 사회적으로 늦은 나이에 첫 정규직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