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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Aug 29. 2023

아빠의 새 출발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셨다. 사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계약 연장을 하지 않으신 것이다. 자영업자로서 대기업과 계약을 맺어 일하고 계셨으니 말이다. 그 결단을 내리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하셨다. 건강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마지막까지도 망설이셨던 듯하다.




가장의 무게


 아빠가 하시던 일은 밤낮이 따로 없었다. 발주를 받아 납품을 해야 하는데 아침 7시까지 필요하다 하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출발하셨다. 올 초, 일을 도와주시던 할아버지께서도 몸이 편찮아지셨고 결국 아빠 혼자 그 모든 납품을 담당하시느라 새벽 4시 출근, 밤 8시 퇴근의 루틴이 잡혀버렸다.


 엄마가 피자가게를 하셨을 때에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아빠가 가게를 도우시며 말 그대로 투잡을 뛰셨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에는 가게를 많이 도와드릴 수 없었지만, 2018년 졸업 후 백수가 되고부터 가게를 처분한 2020년까지는 손을 보태 그나마 아빠가 잠을 보충하실 수 있었다. 그때에도 아빠는 가게 마감까지 함께하셨고 주말에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부터 가게를 열던 분이셨다. 그나마 가게를 처분한 후로는 조금 여유가 생기는 듯했지만 계약 업체에서 아빠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발주를 받는 일이 매우 빈번했다. 아빠도 연세가 점점 드시면서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고 가족들이 아침에 일어나 쓰레기통에서 코피가 묻은 휴지를 발견하는 날이 늘어만 갔다.


 심지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아빠는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우지 못하셨다. 급히 장례식장으로 향했던 그날 밤, 일을 다녀오신 후 바로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해 발인에 참석하셨다. 가족끼리 큰맘 먹고 여행이라도 가려하면(해외는 명절 아니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갑작스레 일이 생겨 핸들을 돌리게 되었다. 신나서 짐을 싸고 서울에서 맛있는 점심까지 먹은 뒤 여행지로 향하다가 미사리(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서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하루 날 잡고  받는 건강검진은 배부른 소리였다. 살면서 아빠가 내시경을 받으신 기억이 두 번 정도밖에 없다.




결단을 내리다


 아빠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이 답답한 상황에 자꾸 화가 나시는 듯했다. 종종 "당신은 죽으려 해도 바빠서 못 죽겠어."와 같은 가시 돋친 말들이 오갔고 아빠 상황을 아시는 주위 어른들이 모두 아빠의 건강상태를 염려하셨다. 당신께서도 잘 알지만 생계를 위해 포기할 수 없던 상황에 주변에서 한 마디 씩 하니 생각이 많아지셨던 듯하다. 엄마는 아빠께 계속해서 택시 운전을 권하셨고 아빠는 택시가 기존에 하시던 일과 수입 차이가 크다는 이유로 오래 고민하셨다. 그러다 약 2-3주 내내 새벽 4시 기상,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근무하시던 어느 날, 도무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축하와 위로를 위한 외식

 그렇게 서둘러 후임자를 구하고 계약을 넘긴 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하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차(차가 너무 낡아 하루가 다르게 문제가 발생했었다)를 처분하셨다. 아빠는 폐차장에 차를 가져다주면서 기분이 묘했다고 하셨다. 그동안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주었던 고마운 차니까 아빠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일을 그만두신 7월 말에는 씁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리고자 외식을 했다. 엄마는 선물이라도 해야겠다며 아빠께 갤럭시 워치를 사드렸고 오빠랑 나는 엄마 환갑 선물 겸, 돈을 모아 유럽 패키지여행을 예약했다.


 그 뒤로 아빠는 택시 자격증을 따셨고, 지금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이시다. 적지 않은 연세,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에 얼마나 속앓이를 많이 하고 고민이 많이 되었을지 그 마음의 무게가 짐작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나 역시 걱정되고 불안하다. 하지만 지금껏 가족들을 위해 누구보다 책임감 넘치셨던 아빠니까 아빠의 이번 새 출발도 열렬히 응원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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