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스타그램
욕심은 작은 씨앗에서 시작한다. 별거 아닌 듯한 한 번의 ‘비교’에서 단비처럼 내려진 극소량의 양분으로도 순식간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나가며 끝내 꽃을 피운다.
눈곱이 껴도, 꼬질 꼬질 해도, 방금 자다 일어나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몽롱한 눈으로 앉아 있어도 마냥 예쁜 게 바로 ‘내 댕댕이’다. 숨 쉬는 것조차 귀여운 시기가 있는가 하면 말썽을 부릴 때도 있고 사람의 욕심이 강아지의 필요보다 앞서는 경우가 발생한다.
밀리가 가족이 되고 주변에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지인들이 가장 많이 해준 말은 ‘사진 많이 남겨놔’였다. 사람과 달리 주어진 삶의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반려견과와 함께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특히 10개월에서 1년이면 성견이 되는 강아지 시기는 다시 볼 수 없기에 더 소중하다고 했다.
원래부터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편이었던 나는 망설임 없이 밀리만을 위한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만들었다.
강아지 계정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내가 모르는 동안에도 전 세계 보호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반려견의 일상을 성실히 공유하고 있었고, 서로 ‘이모’로서 아낌없는 칭찬을 댓글로 남기거나, ‘강아지’의 목소리로 ‘댕팔’하자는 요청을 보내기도 했다. 팔로워가 백 단위에 달했을 때 이벤트를 열어 주변 댕댕이 친구들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팔로워가 어느 정도 증가하면 협찬을 통해 받은 다양한 강아지 용품과 식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활발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커뮤니티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도 사실이다. 귀여운 말투와 반말로 (강아지 계정 너머에 있을)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전보다 더 열심히 남의 게시글에 댓글을 남기고 좋아요를 보내는 것도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다. 점차 익숙해질 무렵 문뜩 애초에 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고 여린 꼬물이 모습을 볼 때면 빨리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강아지 시기는 정말 빠르게 흘러 밀리는 어느새 첫 미용을 무사히 마친 어엿한 개린이가 되었다. 지금도 그동안 성실이 포스팅한 밀리의 영상과 사진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가도 아직은 마냥 아기 같은 나의 사랑스러운 강아지.
밀리를 데려오면서 스스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나는 밀리에게 이 세상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개로서의 행복을 느끼며 살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밀리가 나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개로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산책과 놀이를 충실히 함께할 것이다. 밀리를 낯선 상황과 새로운 만남에서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매너 교육을 철저히 시킬 것이다. 밀리의 건강을 위해 (집안 환기, 온도와 습도 조절, 목욕, 양치, 눈곱 제거와 귀 청소 등) 청결 유지를 철저히 할 것이다. 그리고 밀리에 관한 모든 선태을 내릴 때 ‘밀리의 행복’을 먼저 고려할 것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항은 마지막에 ‘밀리의 행복’을 항상 고민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멍스타그램을 하다 보면 매일 온갖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진과 영상이 올라온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내 강아지 자랑이 하고 싶어 지고 자랑을 위한 물품을 구비하게 된다. 그런데 보온용이 아닌 예쁘지만 불편한 옷과 액세서리, 불필요한 간식, 짓궂은 장난 또는 자극으로 채워져 가는 피드를 보다 보면 문뜩 정신이 든다. 이건 자연스럽지 못한 화면이다. 기록이 아닌 제작이다.
강아지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행복하고도 고된 일이다. 그 과정 가운데 함께 고민하고 힘이 되어줄 동료를 sns상에서 만나는 것은 어쩌면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멍스타그램이나 멍튜브를 하려거든 꼭 다큐처럼 하자. 액션,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말고 그저 성실히 기록하고 최선을 다해 편집하자. 그게 진정한 기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