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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ㅠ Oct 09. 2021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런 거 줄 거면 주지 말지

2년 전 5월 어느 날.

내 생일이 가까운 무렵, L을 만났다. L은 고등학교 친구로 군대를 간 이후로 연락이 끊겼으나, 3년 전 우연하게 연락이 닿아서 자주 만나고 있다. 일주일 전, 친구는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가서 옷을 사자고 하여 나를 불렀다. 나는 30분 정도 먼저 집에 나와서 친구를 기다렸다. 테크노마트 로비 주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폰을 만지며 시간을 때운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친구가 도착했다. 옷가게로 천천히 걸음을 걷는다.


신기하게도 이 친구와 나는 생일이 딱 한 달 차이다. 4월 11일, 나는 5월 11일. 그래서 서로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 친구는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다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좋아한다. 생각보다 빠르게 옷 구매를 해서 어디 가볼 만한 곳 없을까 하다가 어느 대형 문구 매장에 간다. 생각보다 큰 곳이라 이니셜을 새길 수 있는 만년필도 팔고 있고, 아이돌의 음악이 담긴 앨범도 팔고 있었다. 돌아다니다가 친구가 나에게 말한다.


"너 좀 있으면 곧 생일 아니야?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마침 음반 매장을 지나고 있었던 우리.

나는 메인으로 전시되어 있던 오마이걸 앨범이 눈에 띄었다. "요즘 오마이걸 노래 좋더라고 저거 갖고 싶어" 크고 아름다운 정규 앨범이었다. 발레 복장을 하고 있는 이쁜 여섯 명의 천사들의 모습이었다. 친구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 그러면 이거 사줄게" 


당시, 친구는 대학생이라 부모님께 용돈 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앨범을 사준다니.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은연하게 만년필 하나 갖고 싶다며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문구 매장에서 계산을 하고 빠져나왔다.


시간은 어느덧 1년 전 4월 11일로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일하느라 바빠서 친구의 생일도 잊어 먹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카톡에 오늘 생일인 친구 목록에 L이 떴다. 앨범 선물해줬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냥 이대로 지나갈 수는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카톡 선물하기로 보냈다. "생일 축하해!" 하며 이모티콘과 함께. 그런데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과제하고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랬는데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1이 사라지지 않는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L이 나에게 만나자며 카톡 한다.

알겠다고 하고 나는 나갔다.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굉장히 화난 말투로 나에게 내뱉는다. 

"야 너는 어떻게 그걸 보내냐?" 

"음? 갑자기 무슨.."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네가 오마이걸 앨범 갖고 싶다고 해서 사줬는데 너는 고작 커피를 보내냐?" 

L을 만나면서 그 정도로 화난 모습을 생전 처음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차라리 걍 안 보내는 게 더 나았어. 딴 사람들한테는 선물 주면 그것보다 더 좋은 거 주던데 넌 대체 뭐냐? 실망이야" 

나는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싶었다. 마치 살인이나 강간한 것처럼 대역죄인 취급받는 기분이었다.

L이 선물 주면 더 큰 걸 받는데 나에게 커피 받으니 이거 먹고 떨어져라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걸까. 기대했는데 실망이 컸나 보다.


당시에는 내가 그렇게 큰 잘못했나 싶었다.

지금 다시 회상해보니 L이 나에게 오마이걸 앨범을 사줄 때, 은연중에 얘기했던 게 기억난다. "만년필이 이쁘네 이거 하나 갖고 싶다" L은 흘러가는 중간에 자신이 갖고 싶다는 걸 말했다는 걸. 나는 눈치가 없어서 그걸 갖고 싶다는 걸 줄 몰랐다. 그냥 은연중에 흘러가는 대화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을 뿐. 내가 잘못했던 게 맞았다. 나는 눈치 더럽게 없는 사회생활 1도 못하는 그런 바보 녀석이라는 것을. L의 눈에는 그저 받기만 좋아하는 눈치 없는 녀석으로 보였을 것 같다. 그 사건 이후로 선물을 받으면 더 좋은 것을 줄려고 한다.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여태까지 눈치 없게 작은 것만 선물로 줬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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