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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ㅠ Nov 01. 2022

슬픔 권하는 사회

슬픔라이팅


최근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일어났다.

좁은 해밀턴 호텔 내리막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압사당하여 약 150명이 사망한 대참사.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코로나 이후로 약 3년 만에 성대하게 열린 이태원 할로윈 축제는 즐거움의 파티가 아닌 피의 축제가 되어 버렸다. 나는 처음에 이 사건을 뉴스로 접하며 "언젠가 발생할 일이 벌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때는 2019년 10월 말.

나는 어떤 모임을 통해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할로윈 코스프레를 하고 해밀턴 호텔 내리막길을 걸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 자유의지대로 움직인다기보다는 인파에 휩쓸려서 움직였었다. 좁은 길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이런 길을 걸어 다니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당시 이태원을 생각하면 맛있게 술 마셨던 기억보다 해밀턴 거리에서 인파로 끼였던 기억이 더 남는다.


근데 이 사건을 계속 보면서 느끼는 건 자꾸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 물으려고 한다.

정부나 관계자들은 CCTV를 돌려봐서 선동자를 찾는다거나 해밀턴 호텔에 책임을 묻으려는 불필요한 행동을 하고 있다. 팩트만 보자면 이 사건은 100% 인재다. 그 좁은 골목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만약 그 장소에 있던 특정 인물을 지목한다면 그 사람은 마녀사냥당할 것이고, 자살 같은 2차 피해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세월호 사건 때 누군가 나서서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고 서로 누가 잘못했냐 잘잘못 따지던 장면이 문뜩 떠올랐다.


물론 사람이 죽는 일은 당연히 슬픈 일이다. 내 가족이나 친구가 죽었다면 정말 펑펑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전혀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며 천안함 용사들처럼 나라를 지키러 갔다가 돌아가신 게 아닌 그저 축제를 즐기러 갔다 죽은 사고다. 사망자들에게는 안타깝지만 운명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정부는 국가 애도기간을 만들어 11월 5일까지 추모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회가 슬픔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야 나 슬프거든? 너도 슬퍼야 해!"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이다. 애도 라는 것이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해야하는거지 강요하면 하고 싶을까? 또한 매스컴에서 희생자라는 단어를 쓰는데 희생자보다는 사망자라는 표현을 쓰는 게 알맞다고 본다. 희생이라는 단어는 천안함 용사들이나 6.25 전사자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혹시나 내가 반사회적 성향의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과 가족에게 내 의견을 말해봤다. 그랬더니 전혀 이상하지 않고 나의 의견에 동조해줬다. 나의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구나 안심했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지지 않으려면 정부의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과 시민의식 개선 등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두 번 다시 이런 대형 사고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안전불감증을 없애려면 교육을 통해 사고방지 DNA가 부쩍 필요한 시점이다.



고인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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