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은 오후 2시 문래역 주변에 있는 어느 개인 카페였다. 주말에는 오전 10시에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났다. 머리 손질 하고, 화장하고, 향수 뿌리고, 깔끔한 옷을 입고, 깔창 구두까지 완벽하게 세팅. 카페에서 읽을 책 한 권을 크로스 가죽가방에 넣는다. 나는 약속이 잡히면 30분 ~ 1시간 전에 장소에 도착한다. 우리 집안만의 룰이기도 했고, 사회에서는 당연히 사람 간의 예의니까. 오후 1시가 되어 신림에서 출발. 문래역에 도착하니 1시 30분쯤이었다. 카페에서 토요일 스페셜 커피를 판다고 하길래 그걸 주문했다. 블랙 예가체프라는 이름의 커피. 겨울이라 따뜻한 커피가 맛있다. 추가로 찐득한 초코가 들어가 있는 초코롤이 맛있어 보여 같이 주문했다. 2시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을 집중해서 읽는다.
30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지났기에 나는 속으로 약속을 잊어버린 건지, 온다고 거짓말하고 안 오는 건지 솔직히 화가 났다. '본인의 시간은 중요하고 내 시간은 안 중요한가?' '늦으면 늦는다고 미리 얘기해야 하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러다 2시 2분. 점심 식사가 늦어서 20분 정도 늦는다고 문자가 왔다. '그래도 오긴 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책에 집중했다.
2시 20분, 그녀가 도착했다.
키는 160 정도, 검은 긴 생머리, 은색 별모양 귀걸이, 갈색 원피스, 카키색 코트를 입었다. 그녀는 점심시간에 중국집을 갔는데 워낙 맛집이라 웨이팅이 오래 걸렸고, 그래서 늦었다고 설명한다. 통성명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어느 회사에서 재무 담당 직원이라고 말하며, 슈카월드 유튜브를 본다고 한다. 회사, MBTI, 정치, 경제 등등 다양한 주제로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녀는 핸드폰을 보더니 다음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간다고.
'그래요'
나는 타인에게 질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면 분명 한 가지의 공통분모를 찾게 된다는 것. 그것이 나의 인간 탐구의 즐거움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지금도 왕성하다. 대화를 리드하려고 노력한다. 근데 상대는 그냥 하하 호호 정도지 적극적으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아 답답한 면이 있었다. 이전 소개팅들도 사실 그렇고 말이다. 소개팅이니까 처음이니까 어느 정도 어색한 거?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상대가 나에 대해 별로라고 느꼈다면 서로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먼저 가는 게 더 낫지 않나?시간은 금이니까. 나를 거쳤던 수많은 그녀들은 시간 때우러 온 거고, 그냥 커피 대화 상대 정도로만 인식하는 게 대놓고 보이기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녀들은 육각형 남자만을 원하는 것 같다. 외모, 피지컬, 학벌, 자본, 성격, 눈치 등 이걸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나? 현실에서 유니콘 찾기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잘난 부분이 있고, 모난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연애 시장에서 남녀 인구 비율로 따졌을 때 여성이 남성에 비해 수가 적다.
적기 때문에 희소 가치가 높으며 갑의 위치에 놓여 있다. 을의 남자는 늘 스트레스 받고, 상처받고, 고민에 빠지게 한다. 나를 스쳐 갔던 그녀들은 후회했으면 좋겠다. 물론 현실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돈이 많지 않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나 같은 성격에 나 같은 나름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온 올곧은 생각 하는 사람 정말 별로 없다고. 유니콘 찾기 좀 그만하라고. 정신 차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