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묻는다.
올해 목표가 뭐냐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한참을 멈췄다. 노트를 펼쳤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다시 덮었다. 더 열심히 살겠다는 말도, 더 나아지겠다는 다짐도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 잔인하게 느껴졌다.
작년의 나는 꽤 오래 숨이 가빴다.
성과표와 일정표 사이에서 하루를 채웠고, 괜찮다는 말을 습관처럼 꺼냈다. 감정은 늘 뒤로 미뤄졌다. 일이 끝나면 몸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회사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애매했고, 혼자 견디기엔 버거운 날들이 반복됐다.
그래도 나는 매일 출근했다.
크게 잘한 일은 떠오르지 않지만, 무너지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화를 삼킨 날, 말 한마디 덜 얹은 날, 집에 와서라도 잠을 붙이려 애쓴 밤들. 작년의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뒤로 크게 물러서지도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그래서 새해의 노트 앞에서, 나는 목표를 쓰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적었다. 버텼다.
이 한 단어면 충분했다. 목표를 세우지 못한 것이 실패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정확히 아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가쁜 사람에게 더 빨리 달리라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먼저 호흡부터 고르는 게 필요하다.
올해는 더 잘 살겠다고 약속하지 않기로 했다.
더 강해지겠다는 말도, 더 멀리 가겠다는 계획도 잠시 내려두기로 했다. 대신 오늘의 속도를 지키고, 스스로에게 덜 가혹해지기로 했다. 필요하면 쉬고, 쉬는 것을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이 흔들리면 애써 덮지 말고, 잠깐이라도 들여다보기로 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새해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는 목표.
숨을 고른다는 약속.
새해는 늘 새로운 출발처럼 말해지지만,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오래 달려왔고, 어떤 사람은 이제야 멈춰 설 용기를 낸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그래서 올해도 목표 대신 숨을 고르기로 했다.
혹시 당신도 노트를 덮은 채 한숨을 쉬고 있다면,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잘 살지 못해도 괜찮다.
오늘을 버텼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