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이민자의 하루

그림 보고 소설 쓰기

by Dㅠ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구두 한 켤레)


1885년 9월 어느 날, 랑그르 지역.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한 지 15년째 되던 해.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대규모 이민정책이 실행되었고 정부 지원과 개척 정신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몸을 싣고 랑그들 지역으로 이사 왔다. 하지만 3년째 이어지던 이 망할 놈의 메뚜기들의 공습으로 이익이 발생하긴커녕 향수병이 걸려 돌아가고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이 되어 가족들과 오랜만에 식탁에서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여보 오늘은 좀 수확이 있었나요?"
"아니 오늘도 메뚜기 쫓느라 하루 종일 밭에 있었더니 너무 피곤하네" 아버지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곳은 마치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메뚜기 무리들이 500평 규모의 보리밭의 모든 이삭들을 싹 쓸어 버렸다. 나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네덜란드에 있지 뭐 하러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건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우리 행복했던 네덜란드로 돌아가면 안 될까요?
매일 먹는 찐 감자, 감자수프 너무 지겹다고요!"
"무슨 소리야! 우리가 이렇게 아무 수확 없이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자리를 지키는 철밥통 헤이그 사람이랑 다를 바가 뭐가 있냐!! 사람이 성장하려면 같은 위치에 있기보다는 도전 정신이 필요한 법이라고!"
아버지는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는 거 같다.
"어휴! 이렇게 속이 꽉 막혀서야 원. 대화가 성립되지 않네요. 저는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갈래요. 안녕히 계세요" 하고 문을 쾅 닫고 현관문을 나왔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오니 아버지의 구두 한 켤레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걸레라고 하도 믿을 정도로 헤진 워커였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비록 보리밭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지옥 같은 메뚜기 군세 속에서도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오셨다.
옆 밭에 심어 놨던 감자들을 캐오는 것만이 우리 가족의 식량을 챙기는 유일한 일이었다. 감자는 비록 모양도 제각기고 맛도 없었지만 폭군 메뚜기 사이에서 해를 당하지 않은 유일한 식량이었다. 감자는 우리 가족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쾅 닫았던 현관문을 다시 열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 아까 한 말을 제가 좀 심했던 거 같아요. 죄송해요. 비록 아버지가 메뚜기와 싸워서 졌지만 이렇게 헤진 워커를 신으면서도 감자를 가져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의 희생 덕분에 우리 가족이 감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나는 말없이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미안하다.. 줄 수 있는 게 이 감자밖에 없어서..."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고 내 등은 촉촉하게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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