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한 꿈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단숨에 형체를 잃어버렸다.
2020년 11월 15일
브런치에서 열심히 글을 올리던 와중에 애니메이션 관련 스타트업 기업의 필진 제안이 들어왔다.
이전에 발행했던 애니메이션 관련 글을 보고 제안을 주셨다. 네이버 메일로 제안 요청이 들어왔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도 뭔가 인정받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글로 밥벌이해 먹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이게 만약 잘된다면 현재 직장을 때려치우더라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다"라는 행복 회로도 돌렸다. 현재 직장은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매우 피로한 육체적 노동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편하게 의자에 앉아 글 쓰며 돈 버는 생활. 실현만 된다면 나에게 매우 이상적인 현실이라고 봤기에 나는 냉큼 계약하고자 제안에서 적힌 이메일과 연락처로 계약하고 필진 활동을 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문자로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급여는 얼마인지, 일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담당자가 급여는 그리 크지 않게 준다고 말하셨다. 그래도 이런 경험 어디서 해보겠나. 포기할 수 없었다.
온라인 계약서를 쓰고 그렇게 시작된 필진 인생. 일주일마다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글을 작성해서 납품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TVA 기준 30화, 40화 이상 되는 애니보다는 12화, 13화로 짧게 구성되어 있고 주제가 흥미로운 것들 위주로 선정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루틴을 짰다. 따로 시간계획을 짜서 애니메이션 보는 시간을 정하고, 지루하고 정적인 출퇴근 시간대를 노려 한편씩 보며 납기일인 일요일까지 보고 한글 파일로 글을 작성하고 납품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까지는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봤지만, 군 제대 이후 애니메이션을 단 한편도 보지 않았다가 2020년 상반기, 코로나 이슈로 인해 집콕 생활을 시작하면서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같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끊겼던 애니메이션 감상을 재시작하게 되었다. 약 8년 만에 다시 애니를 찾아보려고 하니 손이 잘 따라주지 않고, 정보가 없으니 쉽지 않았다. "상위에 떠 있는 인기작 보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인기작보다는 내가 검색해서 직접 찾아보는 습관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나무 위키나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 얻은 정보나 지인들을 통해서 얻은 정보로 직접 보는 것을 더 선호했다.
투고하는 게 쉬웠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온라인 매거진에 기고되는 글이기에 내가 책을 내기 위해 쓰는 나를 위한 에세이가 아닌, 독자들과 소통하며 타인들이 내 글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글을 적어야 할지, 어떤 구성으로 적을지, 어떤 단어를 써야 독자들이 쉽게 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우왕좌왕했다. 마감에 쫓기는 생활이 이런 것이구나. 숙제라고 느껴질 때 나는 압박감을 느꼈다. 다 쓰고 한글 파일을 담당자에게 보내고, 나는 브런치에 발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처음 쓴 글은 엉망이었다.
https://brunch.co.kr/@snskeogml/57
일단 내 계획은 세 문단 형식으로 나눠서 처음에는 줄거리 소개, 중단은 주제 세부 내용 서술, 마지막은 개인적인 의견을 적는 순으로 형태를 잡았다. 마지막 문단이 현실과 비교하는 조금 뜬금없게 적지 않았나 싶어서 처음 투고한 이 글은 별로라고 느꼈다. 고등학교 친구에게 온라인 매거진 필진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알려줬더니 내 글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보여줬다. 그 친구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문단이 조금 산으로 가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온라인 매거진에 다른 필진 글을 보던 친구는 나에게 "내가 본 글들 중에 이 필자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 글을 벤치마킹해서 써보는 건 어떻겠냐" 조언했다. 그래서 나도 다른 필진의 글들을 보면서 내가 가져가야 할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을 구분해보며 다음 작성글에서 다듬으며 차근차근 작성하기 시작했다.
https://brunch.co.kr/@snskeogml/58
일주일이 지난 일요일. 두 번째 글을 작성하고, 개인적으로 첫 번째 글보다는 확실히 마지막 문단 개인적인 의견 부분이 첫 글보다는 많이 다듬어졌다고 본다. 그렇게 크게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둘씩 글을 작성하면서 나의 글솜씨를 늘리고, 적지만 월급도 받고, 내가 원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렸다.
그렇게 일주일마다 마감에 시달리는 웹툰 작가처럼 빠듯하게 숙제를 하다가 2021년 3월 1일, 글을 작성하고 메일로 납품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답장이 왔다.
답장을 보고 매우 황당했다. 분명 계약서상에는 3월까지 계약직 프리랜서로 진행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리뉴얼 및 감원으로 필진 인원을 축소한다고. 한방에 손절당하니 억척이 무너졌다. 교정자가 불만 사항이 있다면 나에게 메일로 "이 부분은 불쾌하네요." "이런 부분은 수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어 수정 부탁드립니다."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메일 보내고, 숙제를 방금 끝낸 학생처럼 해방감을 느끼며 즐겁게 게임을 했는데, 이렇게 계약관계가 끝이라는 것이 아쉽기도 했고, 용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에 슬펐고, 이런 통보식 메일은 예의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많이 아쉽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정확한 답변은 주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어쩔 수 없었다 식으로 메일을 받았다. 계약서는 담당자 쪽 확인 시, 2월까지인데 잘못 기재된 것이라고 말했다. 메일을 읽고 신경 쓸수록 나만 더 골치 아파지니 나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발전하는 나의 모습과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나를 성장시키고자 했던 원대한 꿈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단숨에 형체를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