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루루루 Jun 16. 2020

누나의 공무원 시험,
다쳤다는 동생의 전화

이 무슨 상황..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누나의 공무원 시험이 있는 주였고

오랜만에 집에와서 집밥도 먹고 쉬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무엇보다 누나가 걱정됐다.


누나는 직장을 잘 다니다가 이 일은 평생 하지 못할 것 같다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나 뿐만 아니라 주변에 조언을 구했는데

나는 도전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른 나이도 아니었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혹시 떨어지면 그땐 돌이킬 수 없을거라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나는 공부를 시작했고, 몇 개월간 노량진에서 공부하다가 집에 내려와서 공부했다.

작년까지는 누나에 관심이 없었는데

올해 나도 일을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 있다보니까 누나가 많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 때문에 자꾸 시험이 연기되어 수험자 입장에서 더욱 힘들 것 같았다.


집에 오랜만에 오니 누나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늦게 돌아왔다.

시험이 채 이틀남지 않았던 시점에서 누나는 많이 불안해했다.


그리고 시험 바로 전날,

누나는 할 공부가 많다며 집에서 밥도 먹지 않고 독서실 근처에서 끼니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나는 저녁 시간에 맞춰 독서실을 들려 누나랑 같이 밥을 먹었다.

긴장감때문에 누나는 밥도 안들어간다고 했다. 밥을 먹고 소화가 안되서 소화제를 두 알 까먹은 후에야 겨우 마음을 추스렸다.


돌아오는 길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전화였다.




"머리 조금 다쳐서 병원 왔네.. 내일 누나 시험이니까 누나한테는 이야기 하지 말고.. "


전화를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걱정이 많이 됐다.


그간 전화로 가족들의 안부를 전하고 받을 때면... 항상 안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전에 어머니가 그랬고

5년전 작은아버지가 그랬다.


안 좋은 사고 소식을 전화로 들을 때

전화를 끊고 나면 다가오는 잡념에 온 정신이 피폐해진다.

지금 바로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머릿 속의 불안은 실타래처럼 뭉쳐

불안의 산을 쌓는다.

그에 반응하여 내 머릿속에서 상처를 방어하기 위한 기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 괜찮지 않을까? 요즘 의료기술 좋으니 괜찮을 거야, 전화 할 정도면 위험하지 않지 않나? "

내 머릿속에서 불안을 이길 희망고문이 시작되는데

이 희망은 결국 고문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다.


전화를 받고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동생이 말을 한다는 점이었다.

본인 말로는 괜찮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긴 했다.


그리고 동생이랑 나는 내일 누나 시험이니 이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누나는 공부를 하고 11시에 왔다.

동생 아직 안왔냐는 물음에


"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대 "

태연하게 말했다.


누나는 별 의심없이 내일 시험을 위해 자러 들어갔다.


 다음날 누나의 시험은 무사히 끝났다. 나는 동생 병문안을 갔고

누나 또한 소식을 듣고 병원에 왔다.

동생은 다행히 머리가 살짝 까졌고 X-ray, CT 상에 이상은 없다고 나왔다.

누나의 시험은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기다려봐야겠지만 합격가능한 점수가 아닐까 추측된다.


누나의 시험 전날 일어난 동생의 사고


엎친 데 덮친 격 최악이 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다행히 우리 가족은 위기를 넘겼다. 

위기를 넘긴 것은 단지 운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점은 가족간의 우애가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세명이서 치고박고 싸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세 명 다 철이 들었는지..  어느새 서로 의지하고는 한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싸우고, 특별하지도 않은 일로 말 다툼하지만


그게 남매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잘하려고 할 수록 수렁에 빠지는 역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