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는 클수록 좋다
종종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온다. (이제 내 친구들은 거의 뽀의 친구이기도 하다) 놀러 온 친구들은 우리 집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경악한다. 우리 집엔 없는 재료가 없으며, 없는 소스도 없고, 그것들은 작고 큰 용기들에 담겨 냉장고 안에 테트리스가 되어있다. 당장 내일 전쟁이 다시 시작되거나 코로나로 락다운이 되어도, 우린 그 기간이 끝날 때까지도 아마 삼시 세끼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종종 간식거리라며 냉동 디저트나 밀 키트를 선물해줄 때가 있는데, 그럼 처음엔 좀 당황스러워하는 편이다. 냉장고에 남은 자리가 있던가?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만들기 시작하면 자리는 나온다)
(인터넷 하다 주운 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소비 기한마저 끝나가는 재료를 털기 위해, 또는 새 재료를 들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좋아하는 파스타 면이다. 재료를 때려 넣고 올리브 오일에 달달 볶거나 토마토소스를 넣고 파스타를 만든다. 실패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재료들이 잘 익기만 했다면, 간만 잘 맞는다면 맛이 없을 수 없다. 독특한 재료의 조합으로 나만의 파스타 레시피를 만들 수도 있다. 믿기지 않는다면 검색해보라! 백종원 게임처럼... 생각보다 사람들은 온갖 재료를 넣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 고수, 알배추, 레몬 껍질, 시금치, 냉이, 참치캔, 오징어 숙회, 마라샹궈... 이 글을 쓰는데도 입맛이 돈다.
처음 뽀랑 살기 시작하며, 나는 나만큼 먹는 일에 진심인 사람이 또 있다는 것에 대해 조금 놀랐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부터 먹는 일에 진심인 집에서 잘 먹고 잘 자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유형이다. 우리 집은 늘 넓은 식탁에 국과 찌개가 함께 오르고, 국과 찌개의 주변으로 기본 반찬들이 앙증맞게 놓이는 집이었다. ('기본 반찬'이라니... 쓰고도 어이가 없다) 생선 요리가 있는 날에도 고기 요리가 올라왔다. 영양소의 균형적인 섭취를 위해 함께 나물과 채소를 먹을 것도 강권받았다. 밥을 다 먹고 난 다음은 과일 후식까지 잘 챙겨 먹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늘 내게 왜 이렇게 적게 먹느냐고 말했고, 나는 그럼 내 위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다고, 다 먹을 수 없으니 세 끼에 나눠서 먹겠다고 볼멘소리를 했으나... 사회에 나와보고 깨달았다. 난 이미 그 누구보다도 큰 위와 놀라운 소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처음 뽀와 살며 우리는 작은 냉장고를 샀다. 둘이 살면 그 정도면 될 줄 알았으나 큰 오산이었다. 뽀는 입이 짧은 편이지만 먹는 걸 좋아해서, 하루에도 여러 번 자주 요리를 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음식이나 재료를 남기지 않는 걸 미덕으로 여겨, 어떻게든 남은 재료를 활용해 요리를 하는 스타일이다. 뽀는 마켓컬리나 쓱으로 식재료를 구입하는 스타일이고, 나는 주변 마트나 재래시장을 이용해 재료를 구입하는 편이다. 과일잼, 특이한 간장, 된장, 중식에 이용하는 고추기름, 콩장, 태국 요리에 이용하는 피시 소스, 샐러드 드레싱... 우린 늘 그런 걸 잘 못 지나친다. 여행에 다녀와도 그 나라의 식재료가 꼭 가득가득 캐리어에 담겨 온다. 술도 떨어지지 않게 쟁여두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냉장고의 냉장칸은 물론 냉동칸, 그리고 바깥 팬트리 장까지 꽉꽉 채워져 있다. 지금 우린 작은 냉장고에서 하나 업그레이드 한 용량의 냉장고를 쓰고 있는데,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면 김치 냉장고나 냉동고를 따로 두어도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다.
옆집, 윗집에 수시로 배달 기사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정말 배달을 안 시킨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한 끼 식사에 동반되는 과정을 가능한 한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재료들을 미리 구입하고 손질하는 일, 음식을 먹고 나서 깨끗이 정리하는 일이 내겐 먹기 위한 당연한 과정인데 그것들 중 어느 하나를 생략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한 끼를 먹을 뿐인데 산처럼 쌓이는 일회용 용기들을 볼 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배달 음식이 당길 때가 있는데 (생리 전이다), 배달 음식의 간이 세고 달아 금방 질려버린다는 걸 생각해내면 금방 배달앱도 끌 수 있다. 뽀도 배달 음식이 금방 물린다는 데엔 동의하는 편인데, 대신 한 번 시킬 때 미리 소분해두고 냉동 보관한 다음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꺼내먹는 방법을 쓴다.
먹는 일은 우리 둘의 가장 큰 관심사다. 뽀와 밥을 따로 먹기는 하지만, 한 식탁에 앉아 밥 외에 밥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곧 놔두면 상할 게 분명한 재료를 공유하기도 하고, 성공한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하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공유하기도 한다. 채식은 우리가 공유해낸 가장 좋은 문화인 것 같다.
종종 둘의 시간이 맞을 때나 아니면 특별한 제철 재료들을 구입했을 땐, 넉넉히 요리를 한 다음 함께 나눠먹고, 길티 플레저 같은 프로그램 (연애 리얼리티쇼나 군대 리얼리티쇼 같은 것들...)을 함께 보기도 한다. 어울리는 술을 따고, 한상 가득 차려놓고 먹으며 얼마나 맛있는지 이야기해주면, 요리에 대한 노동은 보상받고도 남을 만큼 큰 행복감을 느낀다. (설거지는... 당연히 얻어먹은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