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과 쓰리룸 사용법

두 여자가 사는 집

by 아가씨

처음 뽀와 둘이 살기로 결심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함께 살 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삐걱거리면 같이 살기로 한 결정을 무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린 놀랍게도 추구하는 게 비슷했다) 동네는 회사 근처면 좋지만 너무 가까운 곳은 생활 반경이 지나치게 좁아지는 것 같아 싫었다. 동네가 회사 주변인 거? 난 별로다. 하지만 집은 회사에서 30분 내로 닿을 수 있어야 했고, 이동 방법은 간결할수록 좋았다. 그렇게 찾은 동네가 7호선과 5호선이 가로지르는 군자였다. 그리고 군자역 근처 부동산을 며칠 돌다... 결국 군자에서 7호선을 타고 한 정거장 더 가야 나오는 중곡동에 집을 얻게 되었다. (잠깐 본론에서 크게 이탈하자면... 부동산 방문은 늘 사람을 서글프게 만든다. 비싼 밥도 먹고 예쁜 카페도 가며 중산층이 된 기분을 느끼며 살다 불현듯 내가 선 곳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분노는 잠깐이다. 쥐고 태어난 숟가락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내가 방문한 집에 사는 사람들의 청결하지 않은 생활에 경악한다. 그리고 그건... 꽤 진득한 인상을 남긴다. 오래 방치한 곰팡이, 벽지에 누렇게 낀 머릿기름... 그런 집에서의 생활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크게 슬픈 느낌이다. 청결 문제는 우울, 가난과 연결되어 있는 걸 알기에 더 그렇다)


뽀와 내가 찾은 집은 조금 촌스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한 집이었다. 집주인이 바로 위층에 사는 것도 안전한 감각이 중요한 우리에겐 오히려 좋았다. 건설업을 한다는 사장님이 직접 지은 집은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안은 리모델링이 되어있었다. (자. 샷시, 방충망 옵션은 리모델링 사전에 없는 말이다!) 뜬금없이 벽 한가운데 난 타일, 다이소 풍의 커피잔 ('카페라테'라고 쓰여있었다ㅎ) 타일이 박혀 있긴 했지만... 흐린 눈으로 지나갈 수 있었고 다행히 우리에겐 그것들을 가릴 수 있는 포스터도 많았다.


뽀와 내가 원하는 크기의 신축 빌라들은 우리가 가진 예산을 훨씬 웃돌았다. 아쉬워서 5만 원 10만 원 올리지 말고 예산에 맞는 집을 찾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좋은 신축들을 많이 떠나보내야만 했다. 네. 님들은 저희와 함께 갈(살) 수 없습니다... (서울 집값이 비싸고 더 비싸지는 추세지만, 서울엔 집이 많고, 그 안에서 월세와 보증급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발품을 팔다 보면 조건에 맞는 집이 나오긴 한다) 우리가 갈 수 있는 신축은 작고 깜찍한 사이즈의, 1인 가구 또는 신혼부부를 염두한 빌라뿐이었는데 방의 크기도 대략 난감했지만 전체적인 공간의 구획 또한 난감했다. 코딱지만 한 집에 잠을 자는 안방, 드레스 룸 또는 서재로 쓸 수 있는 작은 방이 분명히 나눠져 있었던 것이다. 우린 같이 살 거지 같이 자진 않을 거기 때문에... 최대한 비슷한 크기의 방이 있는 집을 보여달라고 부동산에 부탁했다. "자매처럼 같이 자고, 한 방에서 같이 공부하고 그러지 그래?"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지만 그 문제에 있어선 단호했다. 우린 비밀이 많은 숙녀들이니까... 당연 거실도 넓을수록 좋았다. 부엌도 크면 좋았다. (그러니까... 평수는 크면 클수록 좋다) 그렇게 리모델링한 구옥들 위주로 점점 보게 되었고 마침내 1.5층에 위치한 거실 하나 투룸 빌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각자 방을 쓰고, 거실을 셰어 하는 식의 생활에 나도 뽀도 만족했던 것 같다. 이사를 해서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마포구 번화가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지금도 우리는 거실이 딸린 쓰리룸 빌라에 산다. 방을 하나 늘린 이유는 (물론 방도 많을수록 좋다) 내가 부업으로 하는 일의 작업실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대신 내가 작은 방 두 개를 쓰고, 뽀가 해가 잘 드는 큰 방 하나를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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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지금 마포구 집의 실제 평면도다)


거실은 부엌이자 작업실이다. 중곡동에 살 때 우리는 나름 큰 지출을 해서 원목으로 된 6인용 테이블을 샀었다. 정말... 너무 좋았다. 둘이 함께 밥을 먹고 치우지 않고도 몇 시간이고 작업까지 할 수 있었던 호시절이다. 지금은 거실이 더 작아진 바람에 4인용 테이블을 쓴다. 작업을 하기 위해선 먹은 밥을 즉각 치워야 하지만... 어쨌든 함께 밥을 먹고, 작업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 거실에 앉아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끼고 있지 않으면 그건 대화가 가능한 '열린 상태'다. 그럼 별 얘길 다 한다. 얘기 대신 영화를 함께 보는 날도 있고, 대선 토론이나 올림픽을 보기도 한다.


거실이 사회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우린 방에서 더 은밀히 제멋대로 지낸다. 코도 후비고 배도 긁는다. 브릿지나 스쿼트를 하고 벗은 몸을 거울에 비춰보기도 한다. 어제 신은 양말을 공처럼 말아 던져놓고 생각이 나면 치우는 것도 가능이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과 다투면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가곤 했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엄마 아빤 닫은 문을 열고 들어와 날 혼낼 수 있었으니까. 문을 잠그면 일은 늘 더 심각해졌기에 그것만은... 정말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집에 달린 문짝을 맘대로 할 수 없었고, 문짝은 공간을 분리할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뽀랑 사는 지금,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그저 조용히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으면 뽀는 절대로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나를 부를 땐 카톡을 하거나 거실에서 내 이름을 부르거나 또는 내 방문을 노크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종종 누군가 묻는다. 친구와 같이 살면 사생활은 어떡하냐고. 침해 받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아직까진 크게 불편함을 느껴본 적 없고, 관련해서 어떤 불쾌한 기억이 남아있지도 않다. 어떨 때 보면 프라이버시란 때론 지켜주려는 의도, 그리고 침해당할 수 있다는 불안이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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