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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22. 2022

오늘은 힐링이 필요해서

시칠리아의 일상


그런 날이 있다. 문득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 가서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 ‘아, 그거 먹고 싶다’가 아니라, 그곳의 음식을 포함한 공간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그 장소의 기운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가.


우리에게는 카페 이르마 Irma la dolce가 그런 장소였다. 이곳에는 어떤 힐링의 기운이 있다. 구시가지의 한적한 광장에 위치한 이 작은 카페는 야외 테이블이 10개 정도 놓여있고, 도착하면 발랄한 두 명의 여인이 우리를 맞는다.


간판 옆에 놓인 보드에 쓰여있기를, “언제나 웃고,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우리의 홈메이드 음식을 즐겨주세요. 저희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여기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두 명의 여자들이랍니다.”


가게의 주인의 이름은 (가게의 이름처럼) 이르마이다. 아니, 그게 본명은 아니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 불러주기를 원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Irma la Dolce>라는 60년대 로맨틱 코미디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가게의 유일한 직원이자, 그녀의 친구이자, 여동생인 사라가 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 둘의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에너지에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자리에 앉으면 서빙을 맡고 있는 사라가 다가와서, Hello guys~!!라고 느낌표를 두 개쯤 찍은 에너지로 반갑게 맞으며, 유창한 영어로 우리의 주문을 받는다. 이르마는 가게 안에서 주문을 받으면 요리도 하고, 나중에 계산도 한다.


팬케익과 오믈렛 같은 브랙퍼스트부터, ‘피아디나’라고 하는 시칠리아 샌드위치, 샐러드, 디저트 등등 모든 메뉴가 홈메이드이고, 한 달간 많은 메뉴를 시도해봤는데 실패한 적 없이 다 맛있었다. 그래서인지 늘 사람들로 붐빈다. 로컬과 관광객 할 것 없이.


가장 바쁜 아침과 점심시간에도 사라와 이르마는 늘 서로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박장대소하며 웃고,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노래들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른다 - 이탈리아 발라드부터 아델, 콜드플레이 같은 팝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간다. 바쁜 걸음으로 가게 안팎을 오가며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다가도 잠깐씩 짬이 나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누군가와 다정하게 통화를 했다. 가게에 있을 때 대략 70퍼센트의 시간은 음악에 맞춰 큰 소리로 노래를 하고, 춤을 췄다.


이곳은 구글 평점이 4.8으로 되게 높은 편인데, 그래도 수백 개의 평점 중에 혹평을 남긴 사람들이 보였다. 거기에 이르마가 답변을 단 것을 보고, 더 반했다.


한 리뷰에서는 글쓴이가 방문한 날, 어떤 공지도 없이 가게문이 닫혀있었다며, 무책임한 가게라고 쓰고는 별 하나를 남겼다. 이에 대한 이르마의 답변은 이랬다.  


“그날은 비바람이 거세서 부득이하게 가게를 열 수 없었다. 야외 테이블 밖에 없는 우리 가게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악천후에 대해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식 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화를 내는 당신을 보니, 오히려 그날 당신이 평화로운 우리 가게에 오지 못한 것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논리적이고, 당당하고, 지혜롭기까지 하다. 쉽게 당하지 않는다. 쉽게 굴하지 않는 태도가 좋았다. 고객은 왕이 아니다. 그렇다고 주인이 왕도 아니다. 그저 두 사람이 적당하고 합리적인 교환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둘은 상식적이고, 존중하며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가게가 동네에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지. 정성 가득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언제나 펄떡거리며 살아있는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갈 때마다 생각했다. 자신의 공간에 대한 자부심과 무한한 사랑을 갖고 공간을 가꾸어가는 이런 독립 가게들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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