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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23. 2022

해변으로 퇴근합니다

시칠리아 시라쿠사에서의 일상


처음 시라쿠사에 도착했을 때는 봄의 끝자락에 있었다. 15도 정도의 쌀쌀한 날씨에다 종종 흐리고 비가 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잠시라도 해가 뜨면 동네의 작은 해변으로 가서 옷을 훌러덩 벗고 햇볕을 쬐곤 했다.


그러다 몇 주가 지나 날씨가 20도가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해변 라이프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은 아니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그렇게나 사랑했다. 나 역시 이때부터 매일매일 해변에 출근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오전에 일을 하고 해변으로 가서 오후를 보내거나, 늦게까지 일하는 날에는 선셋 무렵에 도착해서 늦은 수영을 하고 저녁노을을 구경했다.



매일 해변으로 오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이곳의 해변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영과 선탠의 목적 외에도 더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시칠리아 사람들의 일상에 훨씬 더 가까이 있었다.


평일에 일을 끝내고 해변으로 퇴근하거나, 점심시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보며, 로컬들은 언제든 해변에 갈 준비를 하고 다닌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떤 사람들은 근사한 정장을 입고 해변에 와서는, 옷을 벗어서 가방 위에 가지런히 접어두고, 그 안에 입고 있던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을 즐겼다. 자연스럽게 핸드백에서 비치타월을 꺼내고, 능숙하게 옷에 모래 하나 묻히지 않고 옷을 벗어 접어두는 그들은 마치 프로같았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해변에서 정말 다양한 일들을 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끌었던 것들은 이랬다.



책읽기 

좀 더 정확하게는 ‘진지한’ 독서를 하는 사람들. 우리가 보통 휴가 때 하는 독서 - 책을 몇 장 읽다가 스르륵 잠들어버리고 마는 - 그런 책읽기와는 달랐다. 책을 들고 와서 딴 눈 한번 팔지 않고, 진지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자세도 정말 다양한 것이었다. 사진 속의 청년처럼 불편해 보이는 바위에 앉아 몇 시간이고 책을 읽기도 하고, 해변으로 걸어 들어가서 무릎까지 물을 담그고 서서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었다.


점심 먹기

해변은 점심 먹고 광합성하며 쉬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샌드위치나, 조각피자, 샐러드 같은 간단한 음식을 갖고 와서, 맥주를 곁들여 먹는 회사원들을 보며, 이 얼마나 낭만적인 직장인의 점심인가, 감탄했다.


글쓰기 

잘생긴 근육질의 소방관이 오더니, 제복을 훌러덩 벗어던지고는 (역시나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다), 해변에 누워 노트를 꺼내더니 끄적이기 시작한다.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쉬지 않고 한참을 내리 쓰더니, 어느 순간 노트를 덥고 다시 제복을 입고서 해변을 유유히 떠났다.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처럼 점심시간마다 시를 쓰는 생활 시인일지도 몰라,라고 혼자 상상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쌓기

돌 쌓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 아저씨는 매일 해변에 오는 10명 정도의 고정 멤버 중 한 명이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도착해서 서로 눈웃음으로 맞이하며, 내적 친밀감을 갖게 되었다. 아저씨는 예술적 혼을 담아 돌을 쌓고 탑을 만들었다. 돌 쌓기의 성공의 열쇠는 잘 쌓을 수 있는 돌을 고르는 것에 있는 것인지, 그는 많은 시간 해변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돌을 찾는데 공을 들였다. 그 후에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하나하나 쌓아간다. 금방 쌓을 때도 있지만, 30분 넘게 돌 하나를 올릴 때도 있었다. 늘 마무리는 작품 앞에 걸터앉아 석양을 배경으로 자신의 작품을 지긋이 감상하는 것으로.



물수제비

이탈리아 남자들은 물수제비 학원을 다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다들 물수제비를 참 잘했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사람들의 손을 떠난 작은 돌이 수면에서 열 번도 넘어 튀어가는 걸 보면서 늘 감탄했다. 친구들끼리 모여 서로 경쟁을 하기도 하고, 여자 친구를 옆에 두고 남성미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탈리아 여인들은 나와 달리, 크게 감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외의 해변 라이프에는 음악을 크게 틀고 춤추기, 멍때리기, 강아지 데리고 와서 놀기, 친구들과 모여서 수다 떨기 등등이 있었다.


시칠리아의 작은 동네 해변에는 눈치 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잘 쉬고, 잘 노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에겐 해변이라는 공간이 있어서 일상을 더 건강하게 쌓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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