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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Dec 20. 2022

샤넬의 뮤즈가 책을 권하는 법


직접 명품을 사지는 않지만, 몇몇 브랜드의 컬렉션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편이다. 그중 하나가 샤넬인데, 그들의 컬렉션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그건 매년 브랜드의 뮤즈나 앰배서더로 선정되는 사람들이다.


2020년, 샤넬은 모나코의 왕실의 공주인 샬롯 카시라기 Charlotte Casiraghi를 브랜드 앰배서더로 선정했다. 샬롯은 다른 브랜드 앰배서더처럼 패션쇼에 참석하고 패션지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그녀의 진짜 진가는 다른 데서 드러난다. 문학과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그녀는 샤넬의 뮤즈가 되면서 샤넬의 유튜브 채널에서 책을 소개하고, 책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겉으로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내면까지 아름다운 것이 이런 것인가 싶어진다. 친근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수준 높은 대화를 이끌어가면서도, 지적 허세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카메라 앞에서 지성인들이 토론을 할 때 자칫하면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지적인 체하는 모습에 반감이 들기도 하는데, 샬롯이 진행하는 대화는 달랐다. 다루는 문학 작품이나 작가를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서 소개를 하고,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이 느껴졌다.


책을 소개하는 일이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사실 엄청난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책을 요약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지로 뻗어있는 글의 핵심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축해서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는 거기에 더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담아 책을 읽으며 그녀 내면에 일어난 사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편안하게 말을 할 줄 알았다. 지적 허세가 아닌 진짜 지성을 가진 사람의 내공이 느껴지면서도, 그녀는 내내 겸손했다.


그중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휴가 때 읽으면 좋은 책 4권을 추천하는데, 책을 설명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면 묘하게 빠져들어 당장 이 책들을 다 사서 읽고 싶어 진다.  


그녀가 추천한 네 권의 책  - 사랑, 페미니즘, 가정 폭력, 난민을 다룬 책들이다.

샬롯의 추천 작품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작가인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었다. 함께 대화를 하던 미국인 작가가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아니 에르노를 처음 접했는데 너무 놀라운 글이었다.라고 하자, 샬롯은 잠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가, 다시금 안정을 되찾고 그녀를 다정하게 보면서 말했다.


“아니 에르노의 다른 작품을 아직 안 읽어봤다면, 당장 읽어보셔야 해요.”


내 왜곡된 해석일지 몰라도, 나는 처음으로 그녀가 유럽의 지성인으로 미국인에게 갖는 우월감을 잠시 비춘 것 같아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버지니아 울프에 관한 대담에서 그녀는 인상적인 마지막 말을 남겼다. 깊이 있으면서도, 다정하게 대중에게 조언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아주 소수에 그쳐요.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작품은 읽기가 쉽지 않거든요. 작품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이 어렵고, 한참을 읽다가도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지, 혼란스러운 부분들도 많고요.”


“제가 조심스럽게 소개하고 싶은 방법은 그녀의 책을 한 편의 시처럼 읽어보시라는 거예요.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읽고 거기에서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경험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해요. 저는 종종 책의 한 페이지를 무작위로 골라서 한 두장 읽고, 그것을 마음 가는 대로 해석을 해보곤 해요. 놀랍게도 매번 내가 여성으로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어요.”


이것이 샤넬이 브랜드로서 말하고 싶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말을 하는 내내 보여주는 우아함,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지적인 모습처럼, 패션이라는 취향은 시간과 돈을 들여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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