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 사는 한국인의 일상

흔한 동네 저녁 풍경

by 소도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해서 하늘에 오렌지색 그라데이션이 펼쳐지기 시작할 때가 내가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길고양이와 동네 개들, 그리고 노인들만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동네에 생기가 돌아온다. 일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놓고 골목을 신나게 뛰어다닌다.


저녁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공터에 모여 축구를 하는 건 세계 어딜 가나 비슷한 모양이다. 시칠리아에 머물 때는 저녁이 되면 동네 광장은 축구를 하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이곳 치앙마이에서는 사원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관광객들이 떠난 텅 빈 사원은 이제 아이들의 차지다. 진지하게 공을 쫓아다니는 모습은 같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 아이들은 동네 어른들이 지나갈 때마다 축구를 멈추고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는 것. 예의 바른 태국 아이들이 귀엽다.



골목에 로띠아줌마가 나왔다. 설탕과 연유를 뿌린 기본 로띠는 20밧, 바나나를 넣은 로띠는 30밧이라고 쓰여있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간식을 사 먹는다. 그 옆으로는 여러 가지 커리를 1인분씩 작은 봉지에 담아 파는 밥집이 있다. 퇴근길의 사람들이 오토바이에 앉은 채로 음식을 주문한다. 투명한 봉지에 담긴 음식을 받아 든 사람들은 봉지를 오토바이 핸들에 건다. 커리며 쏨땀, 찰밥 등등 주렁주렁 봉지가 걸린 오토바이 핸들에는 그들의 저녁 메뉴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석쇠를 두고 생선을 구워서 파는 아줌마도 있다. 작은 생선 몇 마리를 석쇠에 올려두고 부채질을 해가면서 앞뒤로 부지런히 굽는다.



요즘 치앙마이에는 코코이찌방과 비슷한 일본식 카레집이 많아졌는데, 오늘은 거기에서 저녁을 먹었다. 토핑으로는 튀긴 두부와 치즈를 올려서 먹었는데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어느새 밖은 어둑해졌다.


사원 옆에 있는 마을 회관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서 에어로빅을 하고 있다. 스피커에서 빠른 템포의 에어로빅 음악이 나오고, 강사로 보이는 아줌마가 작은 무대 위에서 현란한 동작을 선보인다. 뒤에서 열명남짓의 아줌마들은 서로의 어설픈 동작에 웃어대며 춤사위를 따라 한다. 주로 한 두 박자를 놓치고 말지만, 그래도 즐거워보인다. 발 동작을 맞추려고 하면, 팔동작을 놓치는 식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신나게 웃어대니 칼로리 소모는 문제없을 것 같다.


해가 지기 전에 시원한 공기를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근처 루프탑 바에 들렀다. 이 곳에는 버터와 카라멜이라는 귀여운 고양이들이 있다. 작은 싱하 한병을 시키고 고양이들과 놀았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제법 차가워진 공기가 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준다. 자전거가 지나가면 동네 강아지들이 신나게 짖는다. 아까 낮에는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누워있었으면서. 저녁이 되니 강아지들도 활기를 되찾은 모양이다.


달이 예쁘게 뜬 저녁이다. 저 멀리 도이수텝이 보인다. 곧 다가오는 풋볼경기에 우리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투! 마음속으로 빌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