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by 소도

내가 엄마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점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나보다 마음이 큰 사람, 늘 긍정적이고, 재밌는 유머감각을 지녔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잘 베푸는 사람. 책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줬고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를 처음으로 소개해준 사람. 늘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


그리고 엄마로서 감사하는 점은 더 많았다. 가족들에게 늘 화가 나있는 아빠, 언어폭력을 일삼는 아빠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이었고, 밖에서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공기가 나를 맞아준다고 느낄 수 있게 아늑한 우리 공간을 만들어준 사람. 내 인생에서의 크고 작은 성공의 밑바탕이 되어준 사람이고, 나에게 제일 큰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 그리고 왠지 모르게 집이 아닌 밖에서 마주치면 눈물 나게 애틋한 사람 (나는 학부모회의로 엄마가 학교에 와서 마주칠 때마다 그냥 눈물이 핑 돌았다. 한국의 학교처럼 가학적인 공간에서 완전한 내 지원군이 나타났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엄마의 암 선고와 엄마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제일 슬픈 일이었다. 엄마라는 사람은 그냥 내가 안녕을 고할 수 없는, 그런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는 그런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투병의 모든 과정에서 엄마가 아픈 만큼 나도 아팠다. 진단을 받고 우리 앞에서 괜찮은 척하려는 엄마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 애쓰는 마음도, 하지만 종종 아무 말도 없이 울기만 했던 엄마도, 같이 있는 시간에 문득 우리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도, 항암 부작용으로 손떨림이 심해져서 엄마가 좋아하는 일기를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 걸 알았을 때도, 살이 많이 빠지고 앙상해지던 때도 여전히 곱고 예쁜 엄마 손을 잡고 있을 때도. 대구에 있다가 홍콩에 다니러 갈 때마다 엄마에게 ‘잘 다녀올게’ 하고 뒤돌아 서서 공항에서 매번 펑펑 울었다. 언젠가 올 진짜 작별이 떠올라서, 이 몇 번의 짧은 작별 후에 우린 진짜 헤어지는 걸까 감당이 안 될 만큼 무서워서.


동시에 우리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고, 같이 있으면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큰 사랑만큼이나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다. 사랑하는 마음은 설명하기 쉽지만 우리의 갈등은 복잡하고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 수많은 갈등의 층의 중심에는 조금씩 서로의 진심을 놓쳐버리고 오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진심과 다르게 서로 의미하는 바가 전달되지 않는 것. 그래서 엄마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오래 봐온 사람이고, 나를 가장 사랑하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오해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본인의 방식에 따라 우리를 컨트롤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작게는 옷을 입는 것부터 커리어나 가족계획 같은 인생의 선택까지 우리가 엄마의 가이드라인을 따르길 원했다. 그게 엄마의 사랑을 전달하는 방식이고, 거기에 따르지 않는 독립적인 나라는 딸은, 엄마에게 사랑을 거부하고 또 사랑을 되돌려주지 않는 상처를 주는 딸이었을 것이다. 컨트롤의 강압성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으로 나는 저항이나 짜증 같은 반응을 보였고, 집을 떠나 독립해서 살면서는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살았다. 참을성 없이 짜증내고 화를 내게 되는, 그리고 그게 엄마에게 아픈 상처가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아서 뒤돌아서서 바로 후회하고 스스로 사정없이 자책하게 되는 이 관계가 너무 힘들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지만, 나의 못난 면을 가장 많이 드러내게 되는 사람,

제일 잘하고 싶은 관계라 같이 있는 시간이 조금은 불편하고 긴장되는 관계,

아무리 많은 시간 이해하려 해도 매번 어렵고 잘 풀리지 않는 우리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힘든 이유는 아마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랑이 작고 연약한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엄마와 나는 사랑하면서 아파할 수밖에 없고, 애석해하며 서로의 진심을 조금씩 놓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레이디 버드라는 영화를 만났다. 엄마와 딸의 이런 쉽지 않은 관계를 그려낸 영화로 둘 사이의 갈등과 사랑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엄마가 준 이름부터 머리 색까지 바꾸며 엄마가 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주인공 레이디 버드는 엄마와 끔찍하게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또 종종 서로를 끔찍해했다. 그런 관계도 존재하고, 그것 역시 사랑이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복잡하지 않은 엄마와 딸의 관계는 없다고, 사랑과 상처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 관계의 숙명을 잘 그려내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관계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애틋하고 고맙고 미안하면서 서운하다가 종종은 미워하는 마음도 있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엄마에 대한 내 사랑을,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엄마가 사랑하는 진심을 전하기 위해 레이디 버드에게 편지를 쓰는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하자 아빠가 몰래 미완성인 편지를 딸에게 전달하면서 끝이 난다. 나도 엄마에게 이런 내 진심이 담긴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일기장에 몇 페이지나 쓰고 썼지만, 결국은 하나도 완성하지 못했다. 내 미완성의 편지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한 일 년 남짓의 시간, 우리의 복잡한 상처와 사랑을 모두 안고서 옆에 있었던 시간이 엄마에 대한 내 절절한 러브레터라고 엄마가 조금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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