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치료받으러 서울로 갈 때마다 언니와 형부는 엄마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 근교 여행을 준비해주었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남동생도 시간이 될 때는 합류해서 우리는 온천이며 바다로 자주 여행을 다녔다. 형부는 이 참에 가족들이 편하게 여행 다닐 수 있도록 7인승 밴으로 차까지 바꿨다. 어쩌다 보니 우리 삼 남매 모두 장롱면허라 운전 가능한 사람이 형부밖에 없어서 매번 왕복으로 장거리 운전하느라 제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하면서 굴곡을 겪는 엄마도, 그걸 옆에서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며 맘고생했던 우리 역시도 잠시라도 서울과 대구를 벗어나 우리끼리 자연을 맛보는 게 참 도움이 많이 됐다. 맛집 검색해서 맛있는데서 밥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도시를 벗어나 좋은 공기 마시는데 의의를 두는, 크게 별거 안 하는 소소한 여행이었다. 치료 시작하면서 입맛이 없고 밥 먹는 게 곤욕이었던 엄마도 여행 나오면 평소보다 많이 드시곤 했다.
그러던 중에 언니가 어렵게 회사에 한 달간 장기 휴가를 받게 되었다. 엄마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많이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 즈음 엄마는 총 3번의 항암 치료를 끝내고 치료의 반응을 보기 위해 CT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도 암의 크기가 30% 정도 줄어들었다는 너무 기쁜 소식을 들었다. 힘들게 치료를 받은 시간이 헛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엄마가 희망을 갖고 치료를 계속해나가기로 결정하면서, 우리는 이런 엄마를 응원하고 기운을 북돋워 주기 위해서 겸사겸사 모녀끼리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고민이 많이 됐다. 무리하지 않고 걸어 다니며 볼 수 있고, 또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을 고려해서 아담한 일본의 소도시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교토와 아리마 온천으로 4박 5일로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자주 다닌 편이지만, 고질적인 길치 방향치라서 길 찾고 구체적인 여정을 짜는 건 내 만년 여행 파트너인 남편에게 의지해왔는데, 이번엔 내가 우리 셋을 대표해서 여행 준비도 하고 또 여행 가서 가이드 역할까지 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언니는 우리끼리 또 별거 아닌 걸로 싸울까 봐 걱정이라고 했고, 엄마는 농담처럼 간호사랑 여행 베테랑 가이드랑 같이 가니까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특히 엄마는 일본으로 가는 첫 여행이라 설레 했다. 그렇게 세 모녀가 함께하는 첫 여행은 그렇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됐다.
오사카 공항으로 도착해서 첫날은 바로 열차를 타고 교토로 이동해서 교토역 근처의 숙소에 묵었다. 다음 날엔 다음 이틀을 지내게 될 에어비엔비 숙소로 이동했다. 오래된 가정집을 모던한 료칸처럼 개조한 곳으로 위치도 교토 시내 안의 한적하면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동네에 있는 집이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 예약한 참이었다. 이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일층에는 널찍한 거실과 일본식 정원이 있었다. 정원을 마주 보는 곳에 큰 창이 있는 욕실이 있어서 경치를 즐기며 욕조에서 목욕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큰 다다미방 두 개가 있었고, 그 방 가운데엔 가득한 벽면에 집주인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 책과 만화책으로 가득 찬 작은 라운지가 있었다. 숙소를 고를 때 엄마의 컨디션이 안 좋을 경우를 대비해서 혹시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더라도 답답하지 않도록 넓고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색채가 가득한 공간을 찾으려고 했는데 이 곳을 발견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엄마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안 곳곳에 있는 예쁜 공간과 소품들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숙소 운은 좋았는데 날씨 운은 따라주지 않아서, 도착한 첫날을 제외하고 남은 일정 모두를 비와 함께 했다. 여행하기에 더 불편하긴 했으니 아쉬운 맘은 컸지만, 그래도 엄마한텐 “일본이 연중 강수량이 세계에서 상위권에 든다는데, 이런 비 오는 일본도 그렇게 보면 정말 일본스러운 경험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라며 굳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도 했다. 교토에서는 몇 군데 절도 구경하고 점심으로 맛있는 텐동도 먹었는데, 제일 기억나는 건 동네 시장에서 반찬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군것질거리를 사 먹었던 기억이다. 걸어 다니면서 맛있어 보이는 게 보일 때마다 하나씩 다 사서 먹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타코야키를 사서는 가게 옆에 서서 먹는데, 너무 뜨거워서 셋 다 삼키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했던, 동시에 서로의 그런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눈물 나게 웃었던 그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엄마 진단을 받고 나서 늘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아팠던 우리가 이렇게 마냥 아이처럼 낄낄대며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던, 여행이 주는 뜻밖의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음 날은 아라시야마로 향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울창한 대나무 숲을 엄마와 함께 걷고 싶었다.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은 대나무 숲에 둘러 싸여 있으면 마음까지 다 정화되는 느낌일 것 같았다. 아침부터 내리던 가랑비가 막상 아라시야마에 도착해서 대나무 숲길 초입에 서있자니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다가 이젠 폭우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셋 모두 튼튼한 우산이 있었는데도 쏟아지는 비에 옷이 다 젖었다. 어딜 들어가서 기다릴까 고민하다가 곧 그치겠지 하는 희망으로 숲길을 향해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은 너무 안이한 것이었던 지, 걷기 시작해서부터 끝나는 지점까지의 30분가량의 산책로 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마음의 정화는커녕 경치를 음미할 여유도 없이 빨리 어디 실내로 들어가서 쉬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행군과도 같았던 조급했던 산책을 마치고 나니 배도 고프고 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스시를 먹기로 하고 가까이에 있는 스시집을 찾아갔다. 구글 평점은 좋았는데 막상 가보니 간이식당 같은 외관을 갖고 있어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이 됐다. 비도 오는데 다른 곳으로 또 이동하기도 번거롭고 해서 들어가서 별 기대 없이 주문을 했다. 그런데 이토록 평범하게 생긴 스시집에서 놀랍게도 우리는 인생 스시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 신선하고 담백하게 아주 맛있는 스시였다. 항암 부작용으로 메슥거림으로 고생하던 엄마도 너무 맛있다는 연발 하면서 한 세트를 거뜬히 비웠다. 엄마가 좋아하는 고즈넉하면서도 예쁜 마을이라 아라시야마를 제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쏟아지는 비에 이래저래 꼬여버린 일정에 마음이 무거웠던 참에 이 스시집으로 오늘 하루 아주 헛되진 않았구나 하고 안도할 수 있었다. 함께 나온 따뜻한 미소국으로 몸을 데우고, 젠 채 하지 않는 가벼운 분위기의 이 곳에서 편한 마음으로 맛있는 한 끼를 먹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마음도 풀어져서 비에 젖은 행군에 대해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맞아. 여행이라는 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지’ 하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다음 날은 마지막 일정이 될 아리마 온천으로 가는 날이었다. 교토역에서 출발해서 아리마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하루에 버스가 몇 대 없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버스를 타는 장소도 명확하지가 않아서 시간에 맞춰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됐다. 특히 나는 교토역처럼 크고 복잡한 실내공간에서 길을 잃은 경우가 많아서 유독 아침부터 긴장이 됐다. 체크 아웃을 하고 택시를 타고 교토역에 도착했다. 코인로커에 짐을 넣어 두고 나니 버스 출발 시간까지 한두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미리 봐 두었던 식당으로 지금 바로 가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버스를 타면 되겠다는 계산이 서서, 엄마랑 언니에게 서둘러 가자고 재촉했다. 교토역을 몇 번 지나치긴 했지만 막상 주변을 제대로 둘러본 적은 없었기에 엄마는 구경을 해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역 앞에서 보이는 교토 타워를 보며 우리 저기 한번 둘러볼까 하셨다. 나는 아침부터 긴장됐던 마음에, 버스 시간이 애매하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무슨 소리냐고 짜증을 확 내고 말았다. 그때 바로 아차- 싶었고 후회됐지만 엄마는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해버렸다. 그렇게 식당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뒤돌아서 속상해서 눈물을 훔치는 걸보고, 마음이 철렁했다. 뭐가 그렇게 마음이 급했을까.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탔으면 됐을 텐데. 시간과 돈이 조금 더 드는 편이 엄마 마음 상하는 편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훨씬 나은데. 혼자서 조급한 마음으로 몰아갔던 속 좁은 나를 꾸짖고 또 꾸짖었다.
식당에 도착해서 냉랭하고 어색한 분위기로 식사를 했다. 엄마한테 사과할 타이밍을 못 찾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화장실을 가는 엄마를 뒤쫓아가서 “엄마 아까 짜증내서 미안해요"라고 사과했다. 말하는 나도 울고 괜찮다고 하는 엄마도 울었다. 많이 서운했던 엄마 마음이 너무 보여서 미안함에 심장이 콕콕 찌르듯이 아팠다. 좋은 여행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만 앞서고, 엄마 마음을 찬찬히 헤아리며 여행을 함께하는 마음 맞는 여행 파트너는 되지 못한 그런 나에게 속상했고 화가 났다. 여행 내내 가이드한답시고 혼자 스트레스받고 예민해서 다정하지 못했던 내가 참 못나보였다. 감정의 분출의 시간을 지나 우리 사이에는 한동안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다행히도 두 시간쯤 버스를 타고 일본 시골 풍경을 구경하다 아리마 온천에 도착해서는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조금 괜찮아졌다. 작고 예쁜 시골 마을이 주는 포근한 공기에 료칸이 주는 느긋한 안정감 더해져 체크인하고 나서는 새로운 곳에서의 마지막 하루에 대한 기대로 엄마의 마음이 조금 덮어졌던 것 같다. 마지막 밤은 다리상이 부러질 것 같았던 저녁 만찬과 여행의 피로를 다 날려버릴 수 있었던 온천과 저녁 먹고서 시골 밤하늘 보러 잠시 동네 마실을 갔던 그런 일정으로 끝이 났다.
돌아오고 나서 엄마에겐 이 여행이 어땠을까 문득문득 궁금했다. 같은 여행을 했지만, 엄마가 느낀 여행과 언니가 느낀 여행은 내 기억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 나는 작은 것에도 재밌어하고 좋아하던 엄마를 지켜보는 게, 그 시간을 언니와 우리 셋이서 함께했던 게 좋았다. 엄마는 편의점의 타마고 샌드를 좋아했고, 밤에 온천 후에 먹는 모찌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시간을 행복해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 냄새나는 정겨운 작은 골목을 걷는 걸 좋아했고,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일본 주부들의 장바구니를 힐끗 구경하는 걸 재밌어했다.
공식적으로 그렇게 이름 짓진 않았지만 엄마를 위한 여행이었던 만큼, 언니와 나의 수고하는 마음을 헤아린 엄마는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을 안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식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던 엄마가 이제는 우리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여행을 통해 느끼면서 엄마는 조금 슬펐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물론 내가 슬펐던 이유는, 그 많은 시간 한 번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우리의 버팀목이고 방패막이었던 엄마와 달리 4박 5일의 가이드라는 코스프레조차 티 나게 버거워한 작은 내가 한심해서 그리고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는 여행을 앞으로 얼마나 많이 함께 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어서. 이렇게 성격도 취향도 어느 하나 비슷하지 않은 우리 세 모녀의 첫 여행은 한 번의 눈물바람과 인생스시를 남기고 끝이 났다. 그거면 되었다 싶다. 울고 맘 상했던 시간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인생스시는 자주 만나는 게 아니니까. 그거라도 건졌으니까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