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adhd에 관한 이야기(5)
의사 선생님이 요즘 내가 여기저기 지원하고 있는 회사들을 물어보며 질문하셨다.
왜 지금 취업이 하고 싶어요?
소나씨한테 직업의 의미가 궁금해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 “정체성 이니까요”
부끄럽지만, 한때 취업을 못해서 남자친구에게 차이기까지 했었다. 그는 공대 출신에 졸업하자마자 바로 상위권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그의 동기들 또한 다양한 직종의 대기업을 다니며, 각자의 위치에서 좋은 조건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 시간이 중요하며,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본인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랑 헤어져있는 동안 소개팅을 받았다고 했다. 거기에서 조건과 외모 모두 적당한 사람을 만났다고 했었다. 하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고... 그 여자를 만날 거였다면, 나랑 안 헤어져있었을 거라 했다. 그런 애매한 자진고백(?)을 받으며, 화를 내기는 커녕 나는 그 사람이 좋은 감정이 더 커 만남을 이어갔다 최근에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그렇게 난 조건에 밀리게 되면서 허무맹랑한 나만의 가치가 생겼다.
바로, 직업에 집착하기..
직업이 없으면, 사랑을 못받는다란 허무맹랑한 나만의 가치가 생겼다. 나에게 직업은 정체성이자, 안정적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이다.
내가 거창한 직업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오로지 홀로 설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만한 직업. 거기에이왕이면 대기업이었으면 좋겠고... ㅎㅎ 하지만, 내 위치에서 그건 턱없이 사치인 목표인가 보다. 20대가 다 지나가도록 얻은 스펙 하나 없고, 남들은 쉽게만 하는 연애를 통해 차고 넘치는 사랑도 받아보지 못했다.
자존감이 낮아져 있던 터라 누구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허무맹랑한 인식이 박혀 정규직에 빨리 입사해야 된다는 강박만이 생겼다. 정규직이 아니라면 버려질 거라는 두려움이 생겼고, 사회적 집단에 집착하게 되었다. 나도 그런 거대한 집단에 속하고 싶어졌고, 또 그런 그들을 항상 동경해 왔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이러한 사고는 집에서도 통용됐다.
우리 집에서 누구하나 나에게 뭐라고 잔소리하는 사람 하나 없지만, 누구보다 내가 날 하찮게 대하게 된다.
우리집, 모질이
우리 집에는 아픈 손가락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나로 내가 지어준 내 별명이다.
우리 가족 소개를 하자면 아빠는 공기업에서 안정적으로 다니시다 정년퇴직하셨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둘이 있다. 한 명은 공무원, 한 명은 대기업 직장인 그리고, 20대 후반 백수인 “나”이다. 어릴 땐 몰랐지만, 서서히 나이가 드니 나는 이 집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란 생각까지 든다.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상위 대기업에 들어갔고, 안정적인 수입에 취미활동, 연애 등 완벽한 생활로 나와의 반대의 삶을 살고 있기에 거기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왜 같은 배에서 태어나서 나만 이렇게 모질이인가? 왜 나만 한 번에 되는 일이 없는가? 잘만 태어나게 해줬으면, 이렇게 편입을 하는 일도, 직장에 입사하는 것도, 이렇게 방황하는 일도 없었을텐데...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으로 내 인생이 끝났을 텐데...
내가 생각하는 20대 후반은 자기 커리어를 쌓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치를 쌓아가는 노련한 나이인데, 나만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보통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돌연변이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한없이 좌절시켰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요즘 나에게 새로운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직업이 없어 정체성을 잃은 나에게 사랑을 꾸준히 주는 존재. 나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딱히 존재하지 않다는 사고를 깨워준 유일한 사람들.
백수라 정체성이 없으면 어떤가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야”가 아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야”라고 그 공백을 채워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사고가 가족말고도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통용되면 좋을 텐데 그것까진 극복하지 못했다. ㅎㅎ
간극이 너무 크다..
모든 취준생들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