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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를 향한 질투

ADHD와 양극성 장애에 대한 이야기(9)

by 소나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침에 일어나며, 나의 누군가 귓가에 속삭인다.



25.04.30

오랜만에 대학동기와 연락을 했다.

한때, 20대 초반 대학동기를 질투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사랑받고 사는 게 눈에 보여서.

이렇게 고백하는 날 보면 내가 참 철없어 보이지만 그 당시엔 그랬다. 엄마가 집에서 점심을 혼자 먹을까 봐 나와의 약속을 파토 내는 친구를 보고 엄마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이뻐 보이다가도 질투가 피어올랐다.


또, 엄마랑 쇼핑 가서 사 왔다는 명품지갑을 보여주는 친구를 보며, 박탈감을 느꼈다.

비싼 명품지갑을 부모님께 받았다는 박탈감보단 내가 이젠 받을 수 없는 애정에서 오는 박탈감이 부러움을 넘어 시기와 질투가 충돌하고 있었다. 친구의 고민도 나에겐 응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속엔 상처와 질투만이 남았었다.


이미 엄마가 사라진 지 꽤 되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냥 흘려버리면 될 이야기라는 거 정도는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럴 깜냥은 안되나 보다. 하루 종일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그렇게 하루를 날렸다.

남들은 큰일을 겪을수록 더욱 성숙해진다던데

나의 성장은 반대로 향했다. 삐뚤어진 자존심과 잔뜩 쪼그라든 자존감. 앞에선 애써 웃으며, 집에서 혼자 쭈그려 울뿐 감정을 풀어내는 법을 몰랐다.


가끔은 북적거리던 다섯 식구가 살던 동네가 떠오른다. 작고 오래된 집이었지만, 옥상에서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꽤나 낭만 있는 집이었다. 어릴 땐 꼭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애기~ 오늘은 뭐 먹고 싶어?” 물어보던 엄마가 그리웠다. 문자마다 마무리는 꼭 “사랑해~”로 끝나던 메시지가 그리웠다. 엄마 통화목소리가 있는 파일을 가지고 있지만, 잘 듣지 못한다. 너무 그리워져 무너질 거 같아서 요즘도 일부러 잊으려 노력한다.




24.05.02

나는 약 먹는 거에 학습되었다. 모르던 약의 이름을 하나 둘 알게 되고 복용하는 횟수가 늘고, 알약이 하나둘 채워진다. 내 마음이 공허한 만큼 약이 그 빈틈을 채워준다. 병원에 가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그 두려움은 한때일 뿐이다. 매주 가다 보면 내가 아파서 가는지 습관적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정신과는 일반 내과처럼 단기전이 아닌 장기 전이기에 이해는 한다. 내과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뒤에 봅시다” 하면 그냥 빈말 정도로 받아들이며 속으론 무시하는 것과 다르게 정신과는 꼬박 가며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그 과정도 꽤 막막해 우울증 환자처럼 끈기와 인내심이 좋은 이렇게 성격 좋은 사람도 있을까 싶다.


저번주는 주치의 선생님께 평소와 다르게 화 아닌 화를 내며 말했다. ”이렇게 나아지려고 노력한다고 누가 알아줘요. “ 그 말에 선생님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직도 공감은 안된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나마 가지고 있던 희망마저 타의로 뺏기는 기분이다.


저녁 11시 내 머릿속에 불청객이 찾아온다. 아 11시네.

충동이 든다. 머릿속에 누군가가 속삭인다.

이 어둠은 죽어야 끝난다고.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 자꾸 말을 걸어온다. 그 누군가에게 떠밀려 죽음이 긍정적으로 세뇌된다. 불안에서 날 구원해 줄 유일한 친구로 느껴진다.

가끔은 정신과보다 더 가까운 돌파구로 느껴진다. 정신과도 해결 못하는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 주는 거 아닌가? 이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해지고 싶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서서히 죽어간다. 일찍 생을 마감한다면 그저 내 수명이 짧았을 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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