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정한 촌철살인

20대 후반 취준생 일기(4)

by 소나


그렇다. 나는 걱정이 많다.

불안 인형이라는 게 있다면 그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불안과 걱정을 먹어치워 줬으면 좋겠다.





나의 불안의 근원들은 다양하다.



유치하지만 친구들이랑 가기로 한 페스티벌 저만 티켓팅에 실패해서 혼자 못 가게 될까 봐 심하게 걱정했다. 하루 종일 불안해 중고거래사이트를 왔다 갔다 한다.

(다행히 매주 가는 정신과 주변에서 당근으로 거래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집념으로 공부를 했다면 ㅎㅎ)



나의 본업인 취준생으로써는 서류 합격 발표만 들어도 마음이 철렁하고 불안하다. 클릭하나에 내 운명이 달려 있다니.. 잔인하다.

본인의 역량은 훌륭하지만, 함께 할 수 없게 되다니.... 이렇게 다정한 촌철살인도 있을까?

아무튼, 앞으로 일정은 또 떨려서 어떻게 확인할지 김칫국부터 먼저 먹고 시작한다.


인적성은 어떻게 보구 면접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기쁨보단 불안이 앞서가며 더 먼저 와닿는다.

가끔은 내 감정이 처음부터 틀려먹었구나 생각한다.

기쁨을 즐길 줄 모르며, 감사할 줄 모르는 감정불능인이 된 거 같다. 이런 걸 심신 미약 상태라 봐도 좋을까?



한 번은 탈락메일을 받고 울기도 해 봤다.

계속되는 탈락 메일에 지쳐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탈락 멘트가 너무 와닿아서 반대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힘들때마다 들어가 읽어본다.

취업자체가 목적이고, 꿈이 되어버린 삭막한 취업환경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있다는 표현이

내 처지에 알맞았고, 공감받는 느낌이었다.



또, 병원 치료 중 주치의 선생님도 걱정된다.

상담하면서 치료의 방향성에 대해 맨날 똑같은 걸로 질문하고, 하라는 대로는 안 하고 같은 말로 거절하는 게 꼭 선생님께 칭얼거리고 보채는 거 같아서

꼭 반에 한 명씩 있는

말 안 듣는 뺀질이 학생 같아서 맘에 안 든다.


그런 내가 싫다.


선생님을 못 믿는 게 아닌데 그렇게 느끼실까 봐 걱정이 되면서도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날 피곤해하게 생각할까. 치료를 포기할까 봐 걱정된다.



또, 밤이 되면, 이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굴 만나오고는 길이 너무 외로워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기분이다. 아무랑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에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나의 애착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면 즐겁긴 하지만, 잠 깐뿐이다. 친구들이 들으면 서운해하겠지만, 나에겐 친구는 에너지를 쓰는 존재이며 또 다른 애착대상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하는 날 보면 가끔 따뜻한 사람은 못되구나 자책한다.



그나마 있는 애착대상들에게도 문제가 크다.

남들에겐 애착인형이 10개라면 나에겐 3개뿐.

그래서 그 3명이 사라진다면 내가 너무 힘들어할게 뻔하다. 애정을 분산시켜야 된다는 건 머리론 알지만, 저에겐 너무 어렵다.


이런 불안한 감정들이 너무 많다.

취업하면 이 모든 게 해결될까?


감정에도 퇴근이 있다면

퇴근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