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사무직 - 꼬여버린 마음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일을 구했다.
이번엔 실내 흡연은 절대 없을 것 같은 공공기관 사무직으로 골랐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결혼하고 왔을 때부터 궁금했던 기관이 있었다.
좀처럼 공고가 뜨지 않았는데, 마침 최근에 채용이 올라와 지원했다.
서류를 냈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떨어진 줄 알고 동네 학원에서 초등학생 채점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2주가 지나서야 연락이 왔고, 면접장에 가 보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보다 젊은 지원자도 많았고,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 편히 면접을 봤다. 다행히도 그 편안함이 좋게 보였는지 합격했다.
면접에서 들은 얘기로는, 공공기관이라 계약직임에도 서류전형 기간이 긴 편이라고 했다. 내가 그걸 물어봐서였을까, 결과는 의외로 금방 알려주었다.
이번에 맡은 일은 정말 생소했지만 재미있었다.
단어만 말해도 유추가 될 만해 언급은 할 수 없지만, 전 국민의 일상에 녹아 있는 마케팅 관련 업무였다.
내 일을 맡았던 선임은 급히 회사를 그만뒀고, 그전에 업무를 했던 사수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하나도 몰라서 사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공부할수록 뭔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자꾸 보였다. 업무 숙련도도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다른 일을 하다 시험을 통해 사무직으로 옮겨온 무기계약직 직원이었다. 비슷한 케이스는 많았다. 능력 있는 사람도 많았지만, 특히 엑셀을 거의 다루지 못하는 사수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하다 막히면 나에게 묻거나 챗GPT에 의지하곤 했다.
그래도 같이 맡은 이상 열심히 해 보려 했고, 두 달쯤 지나 업무가 익숙해질 무렵 사수가 돌연 난임 휴직을 쓰겠다고 했다.
사무실 사람들과 팀장님은 다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난데, 내가 계약직이라 알 필요가 없다는 건가?' 화가 치밀었다.
미리 말해주고 후임을 구하고 가는 게 순서 아닌가 싶어 따졌더니, 내게 미안해서 말을 못 했다고 했다. 더 이상 뭐라 하기도 어려웠다. 아기를 원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으니 그냥 넘기기로 했다.
공공기관의 특징인지, 이 회사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빨리 충원하는 게 어려웠다.
정해진 TO가 너무 확실히 있고, 부서 간 이동도 정해진 시기에 비자발적으로만 이뤄졌다.
나 같은 파견 계약직을 새로 뽑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해를 넘겨 다른 부서에서 능력 있는 사원이 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인력이 오지 않는다면 그만둘 생각이었다. 다행히 능력 있고 적극적인 직원이 부서 이동으로 합류했다.
손발도 잘 맞아 업무가 훨씬 수월해졌고, 한 달쯤 지나니 업무량도 줄었다.
초반에는 마음 복잡한 일이 많았지만, 새로 온 동료 덕분에 무사히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며 느낀 점은 명확했다.
이곳은 보고서의 세계라는 것.
여전히 한글 프로그램을 많이 쓰고, 모든 것이 문서로 기록에 남았다.
‘꼰대’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꽉 막힌 상하관계도 존재했다.
다만 서두르는 일이 적고 느긋한 분위기는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다녀본 회사 중, 바쁠 땐 바쁘지만 한가할 땐 가장 한가한 곳이었다.
아무튼 이곳이 내가 가장 최근에 다녔던 회사다.
지금은 잠시 쉬며,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머지않아 다시 심심함을 느끼고, 또 다른 일을 찾게 되겠지.
지난날을 글로 돌아보니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라 묘했다.
화가 났던 일도 시간이 지나니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고,
여전히 떠올리면 화가 나는 기억도, 웃음 나는 기억도 있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그 마음을 정리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