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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May 06. 2021

당나라 환관처럼 당당하게 군림하는 경리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15)

상가 입주자회의 대표자나 담당 관리소장은 계속 바뀌는데 경리는 바뀌지 않는 경우를 가끔 목격한다. 민 사장님이 입주한 건물도 그러했다. 상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바뀌면 당장 밖에 내걸린 푯말이라든지 청소업체라든지 조금씩 바뀌게 되어 세월이 흘러감을 인식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경리는 바뀌지 않는 것이다. 정확한 내막은 알기 어렵지만 다른 사례들을 살펴보면 조금 추측되는 바가 있다.     


편의상 오늘의 주인공을 김양이라고 해두자. 김양은 좀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부모가 학비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는데 자력으로 대학까지 마쳤다. 아등바등 힘들게 공부를 하다보니 돈에 대해 억하심정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인생에서 돈만이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 그 돈이라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이 되었고 도덕이나 가치관 같은 것은 그녀가 삶을 영위하는데 눈꼽만한 영향도 끼칠 것이 없었다.     


김양은 전산세무2급, 컴퓨터활용능력을 비롯해서 취업을 위한 자격을 다수 취득하면서 경리 쪽으로 일찌감치 발을 딛게 되었다. 경리는 회사일을 꼼꼼하게 챙기는데서 일단 능력을 인정받게 되어 있는데 그녀는 일을 확실히 잘 했다. 대표가 걱정하지 않도록 부가세 신고라든지 세무 관련된 것들은 알아서 일을 했고, 회사의 재무적인 상황을 대표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프리젠테이션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그런데 김양이 대표가 하는 일들을 너무 잘 알게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한다. 법인 통장에서 근거 없이 돈을 빼가는 것은 아무리 법인 대표라 해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법인과 개인은 틀림없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양은 대표의 명령에 따라 수시로 돈을 인출하게 되었다. 가지급이라는 명목으로 일단 빼먹었다가 나중에 명분을 만들어서 회계 장부를 정리해주면 되었다. 어라? 그러면 나도 그렇게 해도 되겠네. 김양은 대표의 행동에서 금방 배워버렸다. 일단 돈을 인출해서 쓰고 나중에 장부상 처리하든 현금으로 넣든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400만원을 인출해서 사용했다.     


약 한 달 후에 우연히 통장을 살펴보던 대표가 뒤늦게 문제를 지적했다. 김양아, 이거 어떻게 된 거니? 걱정 안하셔도 돼요. 대표님도 그렇게 자주 하시잖아요. 기가 막힌 대표가 김양을 잘랐다. 대표 본인이 마음대로 인출해서 쓰듯이 직원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황당해서 당장 고소라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김양은 적반하장, 대표도 가끔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 거 다 알고 있으며 400만원은 금방 메꿔 넣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나오니 겁이 나 빨리 돈이나 갚으라는 식으로 타협하고 일은 끝을 끝냈다.     


김양은 기존 회사 경력을 바탕으로 좀 더 큰 회사 K로 이직하는데 성공했다. K사 대표도 필요할 때마다 가지급을 받아서 편리하게 개인 생활을 하는 거였다. 대한민국 어디 가도 대표라는 사람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기존 다니던 회사에 갚아야 할 400만원을 뽑아서 썼다. 그러고도 2달 이상 회사를 다녔고 600만원을 더 인출해서 썼다. 총 1천만원을 해먹은 셈이다. 그러다 적발이 되어 김양은 K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K사 대표는 성실하게 근무하는 줄 알았던 김양에게 배신당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았으나 고소 같은 것은 좀 미루어 두려고 했다. 본인도 좀 찔리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김양은 더 큰 회사인 L사로 이직했다. 또 비슷한 방법으로 1천만원을 인출해서 K사 문제를 해결하고 추가로 9천만원을 인출해서 총 1억원을 해먹었다. L사 대표는 좀 무능했다. 김양이 1억원이나 해먹을 동안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성실하고 예쁜 김양에게 반해 허허 웃으면서 지냈던 바보 멍텅구리 같은 남자라고 스스로도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회계감사에서 걸려 1억원의 횡령 혐의가 제기되었을 때에나 그런 실상이 파악되었다. 워낙 피해액이 커서 당장 고소를 했지만 김양도 대범하게 대응했다. 모두 대표가 지시한 것이고 자기는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하니 경찰에서도 구속 없이 일단 조사를 하는 것으로 잠정 조치됐다.     


자 이제 마지막 종착점 M사에 도착한 김양. 여기에서 김양은 무려 5억원을 횡령하면서 TV에 까지 보도되었다. 이번에도 김양은 일방적인 가해자로 등장하지 않고 유명 로펌을 동원하여 M사와 쌍무적인 법정 싸움에 돌입했다. 수천만원의 법률 비용은 아마도 어떤 횡령 자금에서 나온 것 같은데 도대체 K, L, M 어디서 벗겨 먹은 것인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챙기면 이런 일 생기지 않는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 특히 대표이사이다. 간단한 장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지 못했거나 살펴볼 능력이 없어서 되겠는가? 그리고 개인통장처럼 마구 뽑아 쓰면 김양 같은 사람이 언제 나타나 목을 조를지 모른다. 임금이 아니라 환관이 주인이 되었던 당나라도 몇 백 년 지속되었다. 바보 천치가 되기 전에 본인 앞가림 잘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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